8월에 만나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24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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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여든두 번째 책.

 

★★★☆

 

‘아나 막달레나’는 일 년 중 8월, 중남미의 어떤 섬으로 여행을 간다. 그 행사의 목적은 죽은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서. 중년의 딸은 매년 어머니의 기일에 묘지에 들러 한 다발의 글라디올러스를 바친다.

하지만 문제의 ‘그 날’은 예년과 다르다. 어머니의 묘소를 방문한 후 익명의 남성과 섹스를 한 것. 다음날 아침에 깨어 보니 남자가 돈을 남겼다. 직업적인 매춘부로 취급당한 아나 막달레나는 이름도 모르는 남자에게 극심한 분노를 느낀다.

이후로 매년 8월, 그 일이 반복된다.

섬으로의 여행, 글라디올러스, 어머니의 무덤, 익명의 남자, 유혹, 그리고 섹스.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단순한 구성에 지루하게 들리지만 그렇지 않다. 이야기가 진행할수록 주인공의 복잡다단한 심리가 서서히 드러난다.

첫 번째 남자와 주인공은 감정적으로 굉장히 강력하게 얽힌다. 자신을 저급 매물처럼 매도한 데 복수를 하고 싶어 그를 찾고 기다리다가 결국 원하고 그리워한다. 이 과정에서 만난 다른 남자들과도 육체적인 관계에 빠지며, 이 ‘섹스 여행’은 하나의 루틴이 된다. 주인공은 매년 8월이 기다려진다. 그러면서 주인공은 남편 역시 바람이 났을 거라 믿으며 자신을 투사한다. 하지만 남편의 불륜엔 마땅한 근거가 없다.

주인공의 경험을 불륜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그렇다고 그저 물리적일 충돌, 일탈로 보기엔 뒤에 남기는 감정의 찌꺼기들이 너무 녹진하다.

 

이야기의 추진력은 주인공의 욕망과 갈등 같은 내면적인 것에서 나온다. 섹스 이야기가 줄줄이 나오지만 그것보다 행위와 행위 사이의 감정이 더욱 두드러진다. 끓어오르는 욕망과 나약한 결심,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자기 환멸과 자기애. 관계는 있지만 감정은 없는, 혹은 감정을 고려하지 않았지만 거기에 서서히 함몰되는 아이러니. 누군가를 갈망하면서 괴롭히고 싶고, 누군가를 외면하면서 원하는 모순.

 

결말에 이르러 생각지도 못한 곳에 묻히고 싶어 한 어머니의 욕망을 이해하면서 주인공은 어머니로부터 이어지는 유대감, 연결고리를 발견하고 자신을 직시하게 된다. 결혼 제도의 한계 속에서 두 여자는 동변상련의 고통을 감내해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작가가 원했던 결말이 이런 것일까. 이 부분에서 고개가 살짝 갸우뚱해진다)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는 깨달음에 주인공의 불안, 그리고 불만은 조금 사그라졌을까.

 

짧은 이야기지만 널을 뛰는 주인공의 내면을 그리는 문장의 밀도가 높다. 그리고 무척 감각적이다. 술술 읽히지만 상상하고 유추하느라 중간에서 읽기를 멈추어야 할 때가 많았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사후에 출간된, 작가의 유작이다. 유작이라고 하기에 조금 민망한 게 작가는 이 작품의 출판을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작가의 두 아들(놈)과 편집자가 일을 저지르고 말았으니.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이런 배은망덕한…)

 

아마도 작가의 팬들은 열광했을 것이다. 나는 팬도 아니고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말에 두드러기가 돋지만, 일단 책이 너무 예뻐서 샀고 문득 생각 나 읽게 됐다. 짧은 이야기이니 이 정도면 도전해도 되겠다는 욕구가 샘 솟기도 했고.

 

사족.

 

1. 작가가 의도했던 건 ‘아나 막달레나’가 등장하는 시리즈 물이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그 기획의 첫 책이었고. 이 작품을 쓸 당시 작가는 치매를 앓고 있었는데, 책 말미에 부록으로 수록된 네 쪽의 영인본에서 맑지 않은 정신으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며 최선을 다 했던 작가를 만날 수 있다. 기획대로 다섯 권의 작품이 모두 완성되어 독자들을 만났더라면…. 아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작가의 머릿속에, 마음속에 있었던 이야기들, 많은 문장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2. 짧은 이야기라고 해도 책 두께가 얇은 건 아니다. 본문은 약 100여 쪽밖에 되지 않는다. 거기에 두 아들(놈)이 쓴 서문과 편집자 후기, 영인본 네 페이지, 한국 번역가의 후기까지. 그것도 모자라 무슨 종이를 썼는지 종이 두께가 장난이 아니고 활자도 큰 편이다. 챕터마다 종이 한 장씩 끼워놓아 두께 불리기에 최선을 다했으니, 책값(₩16,000)의 가치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보면 된다. 출판 시장의 현실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참 처절해 보인다. (수고했어요.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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