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화를 위한 소설 사고 - 모호한 아이디어를 독자에게 전달되는 말로 바꾸는 힘
오가와 사토시 지음, 박대겸 옮김 / 황금가지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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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일흔일곱 번째 책.

 

★★★☆

 

❝소설을 읽는다는 건,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얼굴도 모르는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비일상적인 행위다. (69쪽)❞

 

❝소설은 작가가 무엇을 표현했는지가 아니라 독자가 무엇을 받아들였는지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 (160쪽)❞

 

저자가 소설에 방점을 두는 건 ‘재미’다. 저자는 소설의 ‘보편적 승리’는 독자들로 하여금 ‘재미있게’ 읽게 만드는 거라고 주장한다. 독서는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작가와 독자의 관계성이 깊을수록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작가와 독자의 관계성은 뭘까?

 

‘저자는 독자를 향해 무언가를 말하고, 독자는 말해진 내용을 읽고 저자가 전하려는 바를 이해하려 한다.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화자가 청자에게 적절한 정보를 전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명료할수록 좋다. (75쪽)’

 

소설은 항상 독자(타자)를 향해 있어야 한다. 소설을 평가하는 기준은 항상 독자가 재미있다고 느끼는지 어떤지(107쪽)이다. 이런 면에서 소설가는 예술가로서의 태도와 상업 작가로서의 태도, 두 가지 면이 요구된다(162쪽)고 말한다.

 

소설에 정답이 있을 수 없다(150쪽)는 말에 공감했다. 소설이란 작가가 자신의 언어를 자신의 방식으로 탐구해 가는 과정에서만 존재(150쪽)한다고 하니, 독자들마다 독법이 다르듯, 작가들도 소설을 쓰는 방식이 모두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겠다. 저자는 ‘소설법(15쪽)’이란 표현을 사용했는데, 단순히 취향이나 선호도 같은 의미를 포함하면서 넘어서는 것으로 이해된다. 소설의 행간에 흐르는 어떤 흐름, 구조적인 조건들, 형태에서의 불문율 같은 것일 테다.

간혹 읽기 곤혹스러운 소설을 만날 때마다 작가 탓을 하거나 나의 수준을 저주해왔던 나로서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였다. 저자에 의하면 작가와 독자의 ‘소설법’이 다를 뿐이다. 그러면서 ‘독자의 고집대로 소설을 읽는 게 바로 재미(19쪽)’라고 조언한다. 소설법이 맞지 않는 저자의 작품을 읽으면 대부분의 경우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19쪽)는 말은 위안이 된다.

 

우리가 (소설을 포함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메커니즘은 압축된 작품을 해제하여 그 근본에 존재하는 ‘어떤 사람(작가)의 인지’를 발견하고 수용하여 ‘그 너머’의 세계로 넓혀가는 과정(148~149쪽)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오독’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관점이 상당히 재미있다.

저자는 독자의 오독을 ‘작가의 머리에서 나온 이야기가 독자의 경험에 접속하고 정보를 전달한다는 커뮤니케이션 본래의 역할을 이탈하여, 거기에 존재할 리 없는 의미를 불러일으키는 일(80쪽)’, ‘각각의 해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이, 작가가 제시한 작품이 작가가 의도한 것과 서로 다른 것을 환기하는 것(150쪽)’이라 보며,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받는 작품일수록 오독을 유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150쪽)’고 말한다.

작가의 손을 떠나 시장에 나온 작품은 이미 작가의 것이 아니다. 독자가 그 작품을 읽고 이해하는 과정엔 독자 자신의 삶과 체험에 영향을 받으므로 작품이 독자들에게 스며드는 정도와 양상은 천차만별일 테니, 저자는 그것을 당연한 감상,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로 보는 것 같다. 내게는 있어야만 하는 일로도 보이는데, 감상이 다양해질수록 작품이 생명력을 얻으리란 믿음 때문이다. 이는 곧 독서가 작가와 독자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저자의 말, 고집대로 읽으라는 조언과도 상통한다.

 

독법을 제시하고 일종의 방향을 제시하는 비평이나 리뷰의 역할에 대해서도 저자는 첨언하는데, 저자에 의하면 그것들이 독자들에게 색다른 결의 소설을 보여주어 감상을 확장시키는 긍정적인 역할을 강조했는데, 그 부분에 있어서 난 약간 회의적이다.

오늘날 소설 비평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 가장 원초적인 솔직함이 미덕인 독자 리뷰조차 도서를 협찬 받는 형식에 의해 훼손되고 있지는 않은지, 내 불신이 탄력을 받는다.

 

저자인 ‘오가와 사토시’는 문단 데뷔 11년차인 일본의 중견 소설가로 장르를 넘나드는 전천후 작가다. 소설을 두 권 갖고 있으나 읽기를 미루고 미루다가, 어찌 먼저 읽은 게 이 책이다.

이 책은 소설을 쓰는 사람이 쓴 소설에 관한 에세이 성격이 강하다. 저자 스스로는 작법책이 아니라고 말을 하는데, 소설가가 소설에 관한 에세이를 쓰면서 작법에 대해 쓰지 않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작정하고 쓴, 교과서적인 작법책은 아니더라도 작가 자신의 집필 습관이라거나, 소소하게 터득한 know-how 같은 것이 심심찮게 나온다. 추상화와 개별화, 문체, 복선, 아이디어, 작풍 등은 작법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데, ‘(이미) 써버린 것에서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고 아이디어도 발견(113쪽)’한다거나 ‘소설의 재미는 집필 과정에서 발생(97쪽)’한다는 걸 보면 ‘일단 쓰고 본다’는 작가의 평소 지침이 엿보인다.

 

짧은 분량에 그리 어렵지 않은 것들을 저자가 수다 떨 듯 하고 있어 쉽게 읽히지만, 번역의 장벽에 자주 걸려 넘어졌다. 번역이 그리 잘 된 것 같지 않다. 일본어 특유의 표현이나 일본 문장을 한글로 옮겼을 때의 특이한 어색함 등이 난무한다. 도대체 ‘탈법소설(22쪽)’은 무엇이며, ‘열화판(158쪽)’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단어들이 더러 눈에 띈다. 앞뒤 문맥으로 의미는 대강 ‘통밥’으로 때린다 쳐도, 어쩔 수 없이 일본 단어 그대로 풀었으면, 각주를 달던가, 한자라도 남겨 놓던가. 독자와의 소통을 이야기하는 책을 번역하면서 번역자야 말로 독자와의 소통은 아랑곳 않는 것처럼 보이니, 정말 어이없다.

 

에필로그로, 독자와 원활한 소통을 원하는 편집자와 고집을 부리면서도 독자 곁으로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기 위한 작가의 티격태격, 고군분투, 아웅다웅을 보여주는, 짧은 소설이 실렸다. 이 책을 위해 따로 쓴 소설처럼 보이는데, 책을 마무리, 총정리해주는 느낌이랄까.

본문 어딘가에 나온 문장을 인용하자면, 이런 거다.

 

❝작품이 닿기를 원하는 상대에게 부족함 없이 전해지도록(가급적 정확하게), 쓸데없는 시간을 뺏지 않도록(가급적 단도직입적으로), 그리고 가능하다면 상대가 나에게 일절 관심이 없다는 전제로(가급적 상대를 생각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151~152쪽)❞

 

‘상대가 나에게 일절 관심이 없다는 전제로’. 전율이 흐른다. 맞는 말이다. 나는 소설가에겐 관심 없다. 내가 관심 있는 건 그들이 쓴, 지어낸 이야기, 즉 소설 작품이다.

 

사족.

 

위의 인용된 문장에서도 번역에 실수가 있다. ‘쓸데없는 시간을 뺏지 않도록’이 아니고 ‘쓸데없이 시간을 뺏지 않도록’이 맞는 문장이다. (어으. 증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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