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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공경희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7월
평점 :
26년 예순아홉 번째 책.
★★★☆
❝문학의 악덕에는 치료제가 없는 것 같다. 감염된 이들은 거기서 더 이상 쾌락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버릇을 고치지 않는다. - W. G. 제발트 (70쪽)❞
글도 쓰고 문학 강의도 하는 ‘나’는 최근에 선배이면서 스승이기도, 멘토이면서 연인이기도 했던 남자의 자살을 겪고 충격에 빠졌다. 와중에 그의 세 번째 부인으로부터 그가 키우던 개, ‘아폴로’를 맡게 된다. 늙은 개는 화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그’의 기억을 곱씹게 만든다. 고인이 된 연인의 개를 보살피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상실과 애도, 위로, 사랑과 이별, 삶과 죽음, 젊음과 노화, 죽어감, 예술과 문학에 대한 사유가 다양하게 펼쳐진다.
애초에 상상했던, 인간과 개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난 오히려 이게 더 좋았다. 제목의 ‘친구’는 화자와 아폴로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화자와 고인의 관계이기도 한데, 화자의 애도 방식은 약간 특이한 구석이 있다.
지난주에 읽었던 작가의 다른 작품, ≪그해 봄의 불확실성≫과 공통점이 많다. 소설과 에세이의 모호한 경계, 작가인 화자, 1인칭 시점, 동물(앵무새가 나오더니 여기는 그레이트 데인 종의 초대형견)을 중심으로 한 기둥 이야기, 자유로이 흘러가는 의식, 다양한 이슈의 사유, 특히 문학과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생각.
가장 최근작(2023년 출판)인 ≪그해 봄의 불확실성≫을 먼저 읽은 나로서는 이 책에 대한 (처음의 호기심과는 달리) 만족도는 그리 크지 않다. 비슷한 형식에 거의 흡사한 구성은 식상하기까지 하다. ≪그해 봄의 불확실성≫에서 들렸던 작가의 목소리가 ‘조곤조곤 읊조리는’ 것에 가까웠다면, 이 책에서의 작가는 거의 ‘주절거리는’ 것으로 들린다. 이 책을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활동 기간 동안 내내 ‘자기 복제’를 일삼는 예술가(창작자)가 적지 않으니, 작가에게도 그럴 권리가 있다면, 같은 작가의 책을 거의 연달아 두 권이나 읽은 나에게 문제가 있지 않을까. 아마 이 책을 먼저 읽었더라면 감상은 또 달랐을 터.
이 책만 가지고 이야기 하자면, 이 작품은 문제가 없다. 작품 안에서 작가는 더 깊이 있는 사유를 펼친다. ≪그해 봄의 불확실성≫에서 작가의 생각이 여기서 저기로 널을 뛴다는 점이 없지 않았다면, 이 작품에서 작가는 소수의 이슈에 집중한다. 바로 삶(죽음)과 글쓰기.
작품의 포문을 여는 사건이 ‘자살’이므로 작품 전반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와 그 대척점에 놓인 삶에 대한 사유는 어쩔 수 없다. 화자는 그 슬픔에 내내 짓눌린다.
❝일정한 나이가 된 사람에게는 그것(자살)이 합리적인 결정일 수 있다고. 완벽한 선택이, 심지어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고, 젊은 사람이 자살하면 실수일 수밖에 없지만 그 경우와는 다르다고. (12쪽)❞
화자는 고인의 선택과 결정을 존중하면서도 슬픔과 충격에서 헤어 나오고 있지 못하는 자신을 이렇게 항변하기도 한다.
❝자살은 이기심과 자기 연민으로 꽉 찬 괴물이죠. 고귀한 선물인 생명을 그렇게 배은망덕하게 내치다니. 또 자살자들은 자신을 증오했겠지만, 자살이 망친 것은 자신만이 아니라 남은 친지들이었죠. (180쪽)❞
자살을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자살자들의 상황과 심리는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덮어놓고 무조건 ‘자살은 자신을 향한 범죄’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사회에서 자살(죽음)에 대한 자유롭고 솔직한 논의는 불가능해 보인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솔직하고 열린 마음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문학과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사유는 작가들은 물론이고 독자라는 존재들에게 더 할 나위가 없는 좋은 충고처럼 들린다. 작가와 독자의 관계(난 작가에게서 작품을 구원하는 것은 독자 리뷰, 140쪽), 오해와 오독(내가 사람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해 근사한 쇠고기 스튜를 대접하자 다들 맛있게 먹고 이렇게 말합니다. 와, 맛있네요. 먹어 본 중 최고의 양고기 스튜인 걸요! 그게 어때서요? 손님들이 잘 먹은 게 핵심 아닌가요?, 140쪽), 작가의 특권과 저술(글쓰기)라는 소명(저술이 엘리트 위주의 자기중심적 행위라는 점은 부인 못 해요. 관심을 받고 출세하려고 글을 쓰니까요. 세상을 더 정의로운 곳으로 만들려고 글을 쓰는 게 아니고요. 물론 거기에는 약간의 수치심이 수반되겠지만, 223쪽), 등의 질문을 통해 오늘날 한 권의 책, 출판시장, 작가(저술가)의 현실을 되짚고 비판한다.
≪그해 봄의 불확실성≫에서와 마찬가지로 작가는 ‘다큐멘터리 픽션’이란 이름으로, 허구가 아닌 픽션(아이러니하게 들린다)의 필요성을 강조하는데, 거듭 듣고 있으니, 내겐 마치 작가의 변명처럼 들리기도 한다.
❝평범한 개인의 삶에서 추려 낸 이야기들이 필요해요. 지어내지 않은 이야기. 필자의 관점이 개입되지 않은 이야기. (222쪽)❞
같은 맥락은 아니지만, ‘실제로 고초 속에서 사는 이들이 제대로 말하는 게 목적이고, 작가의 역할은 그들이 말할 수 있게 하는 데 국한된다(222쪽)’는 말은 현재의 퀴어 문학이나 페미니즘 문학이 귀 기울여야 할 충고 같다.
작가의 작품 중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그야말로 대표작이고 출세작(2018년 전미도서상 수상작)이다. 번역도 무려, 영문학 번역계의 대모라고 할 수 있는 ‘공경희’. 작가를 처음 접한다면 (내가 읽은 두 권 중에) 이 책을 가장 먼저 읽기를 권하고 싶다.
책꽂이에 작가의 다른 책(‘줄리앤 무어’ 주연으로 영화화된 책)이 보인다. 한동안 잊고 있다가 나중에 읽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