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봄의 불확실성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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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예순일곱 번째 책.


★★★☆

 

몇 년 전, 전 세계를 얼어붙게 만든 코로나 팬데믹시기를 무대로 한다. ‘얼어붙게 만든이라는 표현은 (돌이켜 보면) 전혀 과장이 아니다. 말 그대로였다는 걸 모두가 안다.

 

작품은 그 시기를 지나는 한 개인(아마도 작가 자신)의 사적인 기록이다. 친구의 지인 집에 머물며 홀로 남은 앵무새를 돌보게 된 이야기를 기둥으로 남성과 여성, 문학과 예술, 글쓰기, 삶과 죽음, 유머의 힘, 선과 악, 타 생명체에 대한 예의와 책임감, 환경 문제 등에 대한 작가의 사유가 다양하게 흘러나온다.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에 대한 윤리 의식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 깊이 공감했다. 이슈는 곧바로 환경 문제로 이어지고, 환경 운동이 어떻게 좌파의 이데올로기가 되었는지 설파한 데릭 젠슨의 저서 거짓된 진실 (아고라, 2008을 생각나게 해서 흥미로웠다. 또한 작가는 제인 구달을 인용하기도 하는데, 팬데믹 시절에 본,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의 출현에 대해 야생 동물 학대’, ‘지구촌 빈곤을 줄이기 위한 노력의 부재에 원인을 둔 제인 구달의 인터뷰 영상도 생각났다.

환경에 대한 인간의 이기적 행동과 태도를 악()으로 규정지으려는 노력은 의외로 드문 것 같다. 선함과 악함, 둘 모두 인간 본성의 속성이라면, 대개 선함보다 악함이 더 쉽게 드러나는 것 같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몰인정함보다 예측하기 쉬운 게 있을까? 그게 얼마나 이른 나이에 시작되는지 목격하는 것보다 섬뜩한 일이 있을까? (151~152)

 

나는 세상에 악한 사람들보다 선한 사람들이 더 많다고 믿는다. 하지만 수적으로 우세하다고 해서 반드시 선이 승리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가 반드시 고려에 넣어야 할 점은, 특정 상황에서는 악이 선으로 하여금 악을 행하게 만들 수 있으며 더 나아가 특정 목적-이를 테면 전쟁에서의 승리-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것이 꼭 필요한 일이 된다는 것이다. (219~220)

 

이 소설엔 (굳이 첨언한다면) 플롯이 없다. 에세이와 소설의 경계를 허문다는, 혹은 두 장르를 혼용한다는 점에서 박완서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현기영지상의 숟가락 하나, 멀리 아니 에르노의 작품들이 떠오른다.

소위 에세이 소설들 대해 적어도 독자로서의 나의 인식은 부정적이다. 소설은 지어낸 이야기’, 즉 거짓의 이야기(하지만 진실을 말하는)여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한다. 그런 내게 작가는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전통적인 소설은 우리 시대에 주요 장르로서의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 아직 죽지 않았을 수는 있어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중략) 여전히 인물의 성격과 체험을 그려 내는 강력한 도구로 남아 있지만, 허구의 이야기는 점차 핵심에서 벗어난 인상을 줄 것이다. 점차 작가들은 당신은 왜 지어낸 이야기를 하죠?’라고 묻는 목소리를 잠재우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288)

 

작가의 말대로 이 주장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질까. 작가의 주장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인의 역사와 성찰을 담은 문학(289)’일까.

작가는 이란의 영화감독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말을 인용하기도 한다.

 

셰에라자드와 왕의 시대-이야기의 시대-는 끝났다. (289)

 

소설이 어떤 모습이든, 혹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든 분명한 게 있고 이건 내게 위로와 힘이 된다. 작가는 플래너리 오코너의 말을 인용한다.

 

희망이 없는 사람들은 소설을 쓰지 않는다. (220)

 

매력적인 인물이 등장하고 그, 혹은 그녀에게 일어나는 드라마틱한 사건과 클라이맥스, 반전의 결말 등을 이 작품에 기대하는 건 무리이다. 그리고 문학, 특히 소설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작가의 주장엔 아직까지 동의하기 힘들다. 하지만 잔잔히 물 흐르듯 작가의 의식을 쫓으며 조곤조곤 읊조리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건 분명 편안하고 좋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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