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이야기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0
윌리엄 트레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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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쉰여덟 번째 책.

 

★★★☆

 

<피아노 선생님의 제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제자에게 도벽이 있다면? 작은 의심은 도화선이 되어 과거의 불행까지 소환해 미스 나이팅게일의 마음을 소란스러운 지옥으로 만들지만, 제자의 완벽한 연주는 그것으로 충분(17)’하게 만든다. 현실이 주는 작은 위안에 안주하고 삶과 타협하는 결말은 독자들에게 위로가 될까. 현재의 만족은 인생의 부정적인 요소들에 맞서게 해주는 치료제일까, 아니면 곳곳에 도사린 위험을 보지 못하게 눈을 가리는 마약 같은 것일까.

 

<장애인>; 타인의 삶에 거리를 두려는 것은 비겁한 외면일까, 사생활의 존중일까. 영어가 서툰 폴란드 형제는 장애인에게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타인에 대한 이런 무지와 굳이 파고들려 하지 않는 태도는, 제자에게 도난에 대한 책임이 있는지 캐지 않으려는 (위 작품의) 미스 나이팅게일과 닮았다. 이 작품집 안에 타인을 모티프로 한 이야기 중, 가장 강력한 여운을 남긴다.

 

<다리아 카페에서>; 남편과 절친의 불륜으로 이중의 배반을 경험하고 이중의 상처를 지니고 살아오다가 남편을 빼앗은 친구 역시 (자신과 비슷한 이유로) 불행했음을 알게 된 애니타는 과연 클레어에게 용서(연대)의 손을 내밀 수 있을 것인가. 암시로 가득한 결말이 인상적이다.

 

<레이븐스우드 씨 붙잡기>; 범죄를 목적으로 접근했던 자산가에게서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고 머뭇거리게 되는 로잰의 이야기. 타인을 미지의 영역에 남겨두는 이야기들과는 달리, 타인을 좀 더 알게 됨으로서 스스로의 행동에 변화(혹은 발전)를 경험하는 주인공으로, 위의 <다리아 카페에서>와 같은 맥락의 작품으로 읽힌다.

 

<크레스소프 부인>; ‘추근거림에 가까울 정도로 자신을 유혹하려는 여자에 대한 에서리지의 거부감은 미지(未知)는 곧 두려움임을 상징하는 장치로 보인다. 이야기는 크레스소프 부인의 사적이고 인간적인 면을 비교적 드러내는데, 에서리지는 그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끝까지 모른다. 엔딩에 이르러 주인공이 갖는 감정은 연민보다 동정에 가까워 보인다.

 

<모르는 여자>; 모든 것을 지워버리는 죽음 앞의 무력함과 더불어 타인이라는 영역은 우리에게 영원히 알 수 없는 존재이지 않을까.

 

한 아이가 두려움 때문에 도망쳤다. 아버지가 약속했다. 순종적인 어머니도 약속했다. 그래도 아이는 자신을 숨기는 데서 힘을 찾기 위해 도망쳤고, 영원히 돌아가지 않았으며, 영원히 발견되지 않았다. (127)

 

본문 안에서 의미 파악이 어려웠던 위의 문장은 결코 가닿을 수 없는 타인의 진실에 대한 경구처럼 읽힌다.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어긋나고 되돌아오지 않는 감정은 상처가 될까. 오늘날 스토킹 범죄의 요소가 보이는 이야기로, 이 역시 타인의 진심을 모름으로 생긴 공백을 제멋대로 해석해 채운 결과로 생길 수 있는 소동을 다소 코믹하게 풀어낸다. 현재와 과거를 병치시켜 단순한 친절을 거듭된 오해로 문제를 키우고 긴장을 쌓아가는 구성이 돋보인다.

 

<조토의 천사들>; 상대의 약점을 이용해 도둑질을 한 인물이 판화 작품 속 천사의 모습에 각성 받아 훔친 돈을 되돌려주려 하지만 생각에 그친다. 옳은 일을 하기가 결코 쉽지 않음에 대한 이야기로 인간 본성에 대한 작가의 고찰이 잘 드러난다.

 

<겨울의 목가>; 절절한 사랑 이야기. 그런데 불륜이다. 결말은 당연하고 인물들의 죄책감 역시 마땅하다. 감정의 흐름과 서술, 배경 묘사가 아름답다. 주인공의 어린 시절에서 성인이 된 시기를 짧은 분량에 효과적으로 담아낸다.

 

상처받은 사람들은 점잖게 사라지지 않고 악마들을 풀어놓는다. (202)

 

위 문장에서 불륜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준 메리 벨라의 죄책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여자들>; 출생의 비밀이 소재이지만 그 여자가 네 엄마라는 결말은 없다. 비밀의 열쇠를 쥔 인물의 말은 모호하고 의심을 하는 인물은 함구한다. 인물들을 오리무중 속에 남겨두어 독자들 역시 갈피를 못 잡게 만드는 결말은 <장애인>의 엔딩과 비슷하다. 이야기 속 인물들 간의 거리, 타인이어서 어쩔 수 없는 무지(無知)를 독자들 역시 똑같이 경험한다. 엔딩까지 유지되는 호기심과 긴장감이 매우 좋다.

 

명성은 익히 들어 책 몇 권을 무작정 사놓은 게 오래전인데, 막상 읽은 건 최근이다. 작가 사후 출판된 유고 소설집이라고 하니, 가장 마지막의 작품으로 스타트를 끊은 셈이다. 더 읽고 싶어졌다.

작가가 관찰자를 고집했던 만큼 그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설명하기보다 보여주기. 결말이 명확하지 않은 것도 여러 갈래의 생각에 단초를 제공하기 위함으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질문하게 된다. 이거일까, 저거일까. 이야기가 끝나도 그 세계 안에 좀 더 머물게 된다. ‘여운이라고 해도 좋고 독자를 작품 안에 끌어들이고 경험하게 만드는 무엇이 있는 것 같다.

 

단편소설의 거장이라는 별명은 얼핏 레이먼드 카버를 연상케 하지만 두 작가의 개성이 좀 달라 보인다. 이렇게 말하려니 좀 우스운 게, 카버는 두 권, 트레버는 겨우 한 권 읽었을 뿐이다. 그래도 카버의 소설들보다는 읽기 편하다고 분명하게 말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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