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자리에 태워줘
애덤 마스-존스 지음, 최리외 옮김 / 에이유앤씨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6년 쉰일곱 번째 책.

 

★★★☆

 

조그맣고 뚱뚱해서, 왕따 당하는 게 지겨워서(45)’ 학교를 그만둔 콜린은 우연히 만난 레이에게 한눈에 반한다. ‘레이야 말로 킹카 중의 킹카. 바이크 족들의 비공식적인 리더이자 카리스마 넘치는 외모로 여러모로 비밀에 싸인 인물이다.

바야흐로 부모님 곁을 떠나 레이와 동거를 시작하는 콜린. 동시에 그의 게이 라이프도 문이 열린다. 이 두 사람은 서로 사랑했을까.

 

시종일관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콜린은 비교적 투명하다. 콜린의 진짜 삶이 레이를 만남과 더불어 비로소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레이와 함께 하는 색다른경험들도 전혀 이질적인 게 아니다. 바이커 그룹 안에서의 주종관계는 콜린의 성적 판타지(‘나를 무시하는 남자만이 진짜 남자인 것처럼, 129’)에 적잖이 부합한다.

 

그런 이유로 레이에 대한 콜린의 감정이 거짓이나 자기기만처럼 보이기도 한다. 상대의 외모와 행위가 주는 자극에 콜린이 반응한 거라면, 그걸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중에 스스로 깨닫듯이(혹은 고백하듯이) 콜린은 레이에 대해 알고 있는 게 거의 없다. ‘전혀 모른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게 가능할까.

그렇다면 레이는? 레이는 철벽에 철벽을 두른 모습으로만 묘사된다. 그 묘사조차 콜린의 눈과 의식을 거친다. 그 모습만으로 레이라는 인물을 독자들이 파악하기란 완전히 불가능하다.

콜린을 가까이 두고 섹스라는 친밀한 행동을 하고 친구들과 더불어 어울리지만, 일반적인 연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좀 있다. 가끔 보이는 친절과 배려 역시 사랑이라고 단언하기엔 부족하다.

이 두 사람의 진짜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이는 작가의 의도처럼 보인다. 이 사람은 안개 속에, 불명확한 모습으로, 이런저런 암시만 흘릴 뿐인 미스터리로 존재했어야 했다’. 실제로 우리는 잘 모르는 상대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그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게 아닌 경우가 많다.

기술적으로, 이 작품은 일반적인 퀴어 로맨스서사의 영역 밖에 있다. 이게 바로 사랑이야, 혹은 이건 사랑이 아니야, 라고 하기보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겹겹의 층위를 다양한 측면에서 보도록 독자들을 유도한다.

작가는 아름다운러브스토리라기보다 진실한러브스토리를 쓰고 싶었다고 하는데, 과연 진실이 무엇일까. 우리가 누군가에게 끌릴 때 상대의 무엇이 우리를 자극하는가. 가장 원초적인 어떤 것이 가장 인간적인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드물지 않게 보이는 성행위 장면이 거슬리지 않는 건 작가가 그 행동을 가장 인간적인 것으로 그렸기 때문이 아닐까.

전체 분량의 삼분의 일 정도가 레이가 퇴장한 후의 이야기인데, 작가는 이 부분을 콜린의 애도로 채운다. 콜린에게 애도란 기억하기다. 그런데 레이에 대해서 기억할 것이 별로 없다. 뒤늦게 찾아오는 호기심에 후회가 들지만 레이와 함께 한 육 년이란 세월동안 콜린은 그것을 의식하면서도 애써 잠재웠다. ? 두 사람 사이에 맺어진 암묵적인 약속, 혹은 동의 때문이었다. 레이의 곁에서는 그게 최선이었고 콜린은 최선을 다했다. 콜린은 레이도 자신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믿는다. 모호한 감정의 공백을 채우고 있는 건 인간의, 인간적인, 인간을 향한 무엇으로 보인다. 그 무엇이 무엇일지는 독자들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게 사랑이거나 아니거나, 아무래도 좋지만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먼저 논의되어야 하지 않을까.

두 사람 사이에 버티고 있는 적나라한 계급의식이, 가스라이팅과 착취, 학대를 전제로 했다며 이들의 관계가 불편한 독자들도 분명 있을 테지만, 그리고 그 감정이 사랑일 수도 있다는 말에 터무니없다고 분명 동의하지 않을 테지만, ‘BDSM(Bondage/Discipline, Dominance/Submission, Sadism/Masochism)’이라는 소재는 인물들의 관계와 소통의 방식일 뿐 이야기를 이끄는 주동적인 장치도 아닐뿐더러 두 사람의 관계 안에 혐오의 시선과 의견이 개입될 여지는 전혀 없어 보인다.

 

어쩔 수 없이 영화와 비교하게 된다. 원작을 읽으며 영화를 위한 각색 작업이 참 힘들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기본 설정은 그대로인데 디테일에 변화가 있다. 유머와 드라마가 첨가되었고 레이라는 인물이 (설명되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지만) 비교적 드러난다. 관객들로 하여금 상상과 추측으로나마 채울 수 있는 틈을 보여주었던 것 같다. 덕분에 그들의 감정 읽기가 다소 쉽다. 영화가 로맨스+드라마의 외형을 갖췄다면, 소설은 콜린의 자신감 회복과 내적 성장을 그린 드라마, 인간의 본능에 천착한 심리드라마로 읽혔다. 작품 어딘가에 언급되듯, ‘푸른 수염에게 잠긴 방문들이 없었다면 여자들이 끔찍한 살인자에게 매혹되었을까.

 

작품을 돌이켜보면, 가장 두드러졌던 감정은 로맨틱함이나 에로틱함보다 긴장감이었다. 두 사람 사이의 내밀하면서도 끊임없는 긴장감은 주로 콜린이 주도하지만 그 역시 베일에 싸인레이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효과적으로 드러나지 못했을 것이다.

 

작가의 문체가 의외로 수다스럽다. 삼천포로 빠지는 문장들이 더러 있는데 곤란할 정도는 아니지만 가끔 이해가 안 되는 문장이나 잘 그려지지 않는 장면들이 있기는 했다. 영국의 문화를 잘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내 문해력 문제일 수도, 혹은 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다.

 

소설 원제는 뒷자리에 태워줘도 아니고 영화의 원제인 ‘Pillion’도 아닌, Box Hill; a Story of Low Self-Esteem이다. box hill회양목(boxtree) 언덕쯤으로 해석될 수 있겠는데, 두 인물의 운명적인 첫 조우가 이뤄진 장소이다. 이곳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끝난다. 어리광 가득한 번역 제목은 아무리 생각해도 시트콤에나 어울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