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6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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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쉰다섯 번째 책.

 

★★★

 

<당신의 손끝>; 무모하고 얼마간 자초한 불행을 지금껏 겪은 모든 악몽(36)’이라 말하는 효원의 행동에 공감이나 동정이 가질 않는다. 효원은 수강생을 약탈하고 경험도 없는 학원 운영에 무작정 달려든다. 학원 강사로서의 경력과 학원장의 업무는 별개의 문제다. 심지어 말미엔 본인의 허락도 없이 주영의 그림을 이용한다. 이런 얌체짓에 담긴 작가의 의도가 무엇일까. 하는 짓은 얄밉지만 연민을 가져 주세요, 일까. 아니면 이 뻔뻔한 여자 좀 보세요, 일까. 효원에게 나쁜 의도가 없었다는 말이 면죄부가 되어줄까.

 

<태양 아래 반짝이는>; 거의 헐벗기 쉬운 한여름 바닷가라는 공간 배경은 화자의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 적절한 무대로 보인다. 동료, ‘시현과의 일탈적 행동으로 탄력받은 화자는 내면의 파괴 본능을 서서히 불러일으킨다.

화자는 직업 윤리를 저버림으로서 자신의 틀, 자신을 옭아매는 사회적 의무를 파괴하고 고의적인 불륜 관계로 타인을 파괴하고자 하며, 동시에 그녀가 속했다고 믿는 계급의 벽을 파괴하려 한다. 이런 파괴적 행동은 여인의 진짜 정체, 본질을 알고 난 후 형태를 바꾼다. 화자가 여자의 이용 가치를 얼마간 셈하고 있지 않았을까.

 

<피아노>; ‘버린 것이지만 아직도 내 소유라고 주장하는 인물의 이야기다. ‘혜심이 집착하고 있는 건 피아노 자체보다 피아노 의자다. 더 정확히 말하면 피아노 의자에 보관된 아이들의 편지를 되찾으려 한다. 그 편지들엔 자신의 역사에 얽힌 기억과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준용이의 편지가 소중한 주인공이 정작 당사자인 준용에 대해서는 냉정한 아이러니를 통해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는 인간의 본성을 보여준 이야기로 읽힌다.

 

<그 아이><마스크는 통행증>; 짧은 분량이지만 당대의 현실이 잘 반영된 르포타주이다. 훗날 시대를 연구하는 통속 자료나 사료로서의 의미도 보였다.

오늘날 비틀린 소비 문화를 보여준 <그 아이>는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이런 혼란과 공포의 시간들조차 추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통행증은 마스크>는 짜증과 불안의 정서가 잘 보였다.

 

<익명의 마왕으로부터><유령의 집>; 소품으로 읽히는 두 작품은 공허한 작품들이다. 아이디어를 제외하고는 달리 보이는 게 거의 없다.

<익명의 마왕으로부터> 진짜 악인(성격)이 아니라 악당(역할)일 뿐인 마왕의 하소연이 재치있고 위트 있게 들려진다. 이런 낭창낭창한 톤이 작가에게 더 잘 어울리는 듯하다.

<유령의 집>귀신들린 집이야기를 하나 써야겠다는 욕구와 끔찍한 이미지 하나로 밀고나간 작품이다. 실패한 자영업자 이야기로 읽기엔 부족하다. 이야기에 나오는 공간은 정확히 이 아니다.

 

<모자이크> 과연 무엇이, 어디까지기 진짜 나일까, 에 관한 이야기로 읽었다. 가까이서 보면 색의 조각일 뿐이지만 거리를 두고 보아야 형체와 명암 등이 비로소 보이는 모자이크 화()처럼 여러 모습의 나, 여러 가면을 쓴 나, 결국 그 총체적 합으로서의 가 실제로 존재하는 임을 말하는 듯하다.

한편으로는 화자는 모자이크(blur)라는 익명뒤에 숨어 은밀하면서 집요한 폭력을 휘둘러 한 이난을 파멸로 이끈다. 모자이크(익명)는 화자를 보호하고 숨겨준다. 그 뒤에서는 안전이 보장된다. 그러므로 일탈이 가능하고 비난과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자아 탐색과 폭력의 이야기가 잘 안 붙어 산만하게 읽힌다. 전시된(보이는) 모습과 실재하는 모습 사이의 간극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고루하다. 소재 뿐만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작가의 솜씨도 그렇다. 작가의 고유한 시선이나 새로운 목소리가 없어 보여 지루하고 식상한, 개성 없는 작품으로 읽었다. 어디선가 빌려온 문장도 한몫한다. 여러 모습들을 연출하는 화자의 모습은 부캐페르소나보다 정신분열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한 듯 보인다.

 

<조망> ‘수하라는 인물이 가장 눈에 띈다. ‘그들만큼 내가 행복해지는 게 어려우니, 그들이 자신만큼 비참해져야 한다고(165)’ 생각하는 수하는 똑같이 불행해지길 바라는, 물에 잠기자 모든 것이 공평해졌다고 생각하는 수하는 평균의 기준을 행복이 아닌 불행에 두는 사람이고, 너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라는 쌤통의 심리(schadenfreud)를 자명히 드러낸다.

이야기 속에서 이라는 소재는 과거의 소거, 천지개벽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갖는다. 이는 삶에 reset이 가능하다면, 다음의 (다시 시작한) 삶은 괜찮을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지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라면 좀 장황하다. ‘수하의 과거 경험과 현재를 중첩시키는 건 보기에 그럴싸하지만 큰 의미는 없는 것 같아 그저 기교에 불과해 보인다. 아이의 등장도 뜬금없고 세상에 대해 거의 악의에 가까운 열패감을 갖고 있는 수하가 건네는 위로도 공감이 어렵다. 작품 자체도 공산품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 모호하다.

여러 면에서 김애란의 단편 <물속 골리앗>괴 비슷한 점이 많은데, 다른 작가와 비교하는 건 예의가 아닌 건 알지만 두 작품을 비교하게 되면 이 작품의 허점이 여실하게 드러난다. 작가가 말하는 조망이 眺望인지 -’인지, 제목에 부연도 필요해 보인다.

 

<딸과 깍 사이> 이 책 안에서 가장 모양새가 잘 나온, 가장 만족한 작품이었다. 직장에서 사형선고같은 업무를 담당하는 여자가 짝사랑하는 마음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오히려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다는 이야기다.

단순하고 지루한 업무에 시달리는 직장인의 고뇌와 실제적인 경제력을 해결해 주지만 전혀 즐길 수 없을뿐더러 혐오할 수밖에 없는 성격의 업무에 대한 애증이 로맨틱한 감정과 잘못 보낸 전체 메일 같은 사건 등으로 잘 포장됐다. 직장인으로서의 번민이라는 외부적인 면과 짝사랑이라는 내면적인 면을 양립시키면서도 서로 부딪힘 없이 잘 조화시킨 구성이 인상적이며, 유연하게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솜씨도 좋아 보인다. 원한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뜨개질이란 소재도 실수나 실패에 얽매이지 않는 관대함, 또 다른 기회와 가능성을 위한 것 같아 유용하고 적절해 보인다. 이야기의 온도도 10도 정도 올려주는 데 기여한다.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좋았고 인물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좋았다.

 

전체적으로 현실적인 노동, 삶의 고단함, 노동 현장의 인물들과 그 주변의 이야기가 많다. 좀 더 현실에 밀착한, 현실 지향의 이야기들이라는 점에서 부희령의 작품집 을 생각나게 하는데, 부희령의 이야기들보다 피상적이고 얄팍하지만, 작가가 지향하는 바를 고려한다면 심각하게 거슬리는 점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작품들마다 관통하는 일관적인 core가 있어, 표제를 의식하게 된다. 행동의 의도, 선의와 악의, 그리고 그것이 오해되고 곡해되는 양상들이 읽히는데, 작가의 실제 지향점이 이곳에 있지 않을까 싶다. 작품집 전체를 아우르는 이런 통일된 감각은 작품들의 완성도를 떠나 모종의 미적인 균형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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