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온 소년
개럿 카 지음, 이은선 옮김 / 북파머스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6년 쉰네 번째 책.

 

★★★☆

 

아일랜드의 바닷가 작은 마을에 아이가 한 명 발견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가정적이고 성실한 어부 앰브로즈가 입양을 결정한다. 옛날 표현대로라면 옆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빤히 알 정도로 워낙 작은 공동체라 앰브로즈의 섣부른 행동이 스캔들을 부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앰브로즈 부부는 아이에게 브렌던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마을 사람들은 아이에게 바다에서 온 소년이란 별명을 붙여준다.

 

브렌던이 이끄는 뭔가 신비롭고 영적인 이야기가 예상되지만 이야기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드라마틱한 오프닝에 비해 아이는 평범하게 자라고 이야기의 중심도 아니다. 앰브로즈와 크리스틴부부는 투철한 공동체 의식에 가족애까지 겸비한 모범적인 사람들이다. 부부의 아들 데클란이 브렌던에게 질투를 느끼지만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다. 배경으로 서로 아끼고 존중할 줄 아는 이웃들이 등장한다. 소위 빌런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 착한 소설이다.

이다지도 착해 빠진 소설이라니. 드라마틱한 사건도 없고 독자를 조바심 내게 만드는 국면도 거의 없다. 이런 느슨한 소설이 과연 재미있을까.

 

충분히 재미있다. 시작하자마자 이야기에 푹 빠져서 읽었다. 초반 원고만 보고 출판사들이 경쟁했다는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닌 듯하다. 이 작품의 매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인물들이 생생하다는 말은 식상하지만 그 표현 외에는 생각나지 않는다. 가족에 헌신하면서도 빠르게 변하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앰브로즈는 현재의 아재세대의 특징들을 답습한다. 친정아버지와의 애증과 갈등을 억눌러야 하는 크리스틴이나 아버지를 두고 입양된 형제와 경쟁하는 데클란도 저러지 말았으면 하면서도 이해가 간다. 혼기를 놓쳐 병든 아버지와 함께 집에 남은, 크리스틴의 언니 필리스는 또 어떤가. 자매의 고집불통 아버지 유넌또한 충분히 동정이 간다.

 

이야기는 이들 가족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20년 가까운 세월을 아우르고 데클란도, 브렌던도 성장하지만 이 작품은 가족 소설에 더 가깝게 읽힌다. 여기에 브렌던을 둘러싼 마을의 소문, 형제 간의 질투와 경쟁, 장래에 대한 고민과 방황, 부양과 간병의 문제, 가장의 실직과 죽음 등의 사건들이 미묘한 균열과 파장을 가져온다. 하지만 이들은 당황하거나 갈등하고 싸우기보다 타협하고 현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쪽을 택한다. 이들에게 과거는 있으나 그것에 얽매이지 않는다. 개인적인, 혹은 가족을 둘러싼 걱정이 있으나 그건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이다. 그들은 현재에, 그리고 그들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한다.

 

반목이나 갈등보다 삶 자체에 주안점을 둔 이야기는 문득 의심이나 회의가 들거나 난데없는 궁지에 몰렸을 때, 우리가 그 위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묻는다. 이 착해 빠진 이야기는 위기 자체는 심각하지만 인물들이 그것을 대하는 태도는 차라리 경쾌하다. 삶의 허들을 쉽게 넘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의 태도는 안일하기보다는 현명해 보인다. 어마어마한 태산 앞에서 좌절하느냐, 한 걸음이라도 산을 향해 다가가느냐는 우리의 결정이고 이는 곧 용기의 문제로 귀결된다.

 

대도시가 배경이었다면 생각할 수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폐쇄적인, 다소 고립된 느낌의 바닷가 마을은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처럼 보인다. 풍광 묘사도 생생하지만, 작가는 바다 위에서의 조업 현장을 매우 박진감 넘치게 그려낸다. 번역 과정에서 난관이 있었을 법도 한데, 매끄러운 우리말 문장으로 옮겨온 역자의 능력과 수고 또한 언급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