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 헌터스
폴 윤 지음, 황은덕 옮김 / 산지니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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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에서 포로로 살아남은 북한 청년 요한이 송환을 거부하고 브라질에 가서 정착하고 삶을 일구는 과정에 관한 작품이다.

 

인물의 지독한 고립감과 외로움, 조용하고 차분하며 나른한 분위기와 서정적인 문체, 함축적이고 시적인 문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전쟁 이후의 세계를 다루고 있는데, 보다 주목하고 있는 건 일그러진 세계사나 한국 역사의 비극이 아닌 그 파장의 영향 아래 놓인 개인의 삶, 기억으로서의 개인의 역사이다. 바로 지금, 여기의 내 모습이 가끔 새롭고 생소한, 낯선 순간들이 있는데, 그런 느낌이 타국의 이방인인 요한을 통해 드러난다. 여기까지 어떻게 이르게 되었을까 여정을 톺아보지만 아찔하면서도 남은 기억이 별로 없다는 사실에 놀라는 요한은 현재에 집중한다. 요한이 보기에 타인의 삶 역시 미지의 우주이다. 그런 개인들이 모인 브라질 바닷가 동네는 기억들이 쌓인 과거의 공간이자 현재 삶의 현장이다. 요한의 삶은 지속된다. 낯선 사람들에게서 친절과 호의를 받으며, 그 자신도 타인을 향해 손을 내미는 요한의 이야기는 작가가 나중에 발표한 단편 작품 <보선>과 많이 겹친다.

 

이 작품에 대한 긍정적인 리뷰나 칭찬에도 불구하고 내겐 다소 불편한 지점이 있었다.

일단 번역.

 

당시 북한의 평범한 민가(民家)정원이란 단어가 흔했을까. 작가가 ‘garden’이란 단어를 썼어도 번역자는 마당이라고 옮기는 게 옳지 않을까.

칼날의 반사(178)’란 빛이 반사되는 건지, 아니면 어떤 상()이 반사되는 걸 의미하는지 명확해야 하지 않을까.

그저 한둘의 예에 지나지 않는다.

작가의 문체가 번역하기 힘들었다는 건 쉽게 상상이 간다. 역자 후기를 보면 이 작품에 대한 번역자의 애정이 오롯이 드러나는데, 그것과 번역은 전혀 다른 문제다. 애정과 열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있다. 시적인 리듬과 겹겹의 의미는 번역을 거치며 뻣뻣하고 건조하고 얄팍해졌다. 단지 해석에 지나지 않는 문장들이 많이 보인다. 번역자가 무려 소설가다. 소설을 쓰는 일과 해외 문학을 우리말로 옮기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최근에 나온 작가의 다른 책 벌집과 꿀을 보면 쉽게 비교가 된다.

 

작가에게도 한계가 보이는 듯하다.

요한이나 이라는 이름을 가진 북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그런 이름들이 북한에서 보편적일까? 이름은 그렇다 치자.

작가가 당시의 한국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게 아닐까 강한 의심이 드는 지점이 왕왕 있었다. 혈통만 한국계일 뿐인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 많은 상상력을 동원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독자들, 특히 한국의 독자들은 상상이 아닌 정확한 정보나 사료(史料)를 기대하며 이 책을 펼친다. 이 소설은 본격적인 역사 소설과는 거리가 있지만 역사적 사실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작품은 과거의 요한과 현재의 요한이 교대로 등장하는 열여덟 개의 챕터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과거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마치 지구 상, 미지의 다른 나라를 무대로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아래의 문장은 183쪽에 나오는 것을 옮긴 것이다.

 

- 그해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이 도착했다. 그러다가 한국이 분단되었고 몸통 한가운데를 따라서 영토가 나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일본의 항복은 1945년의 일이고, 휴전선으로 한반도가 절단 난 건 1953년의 일이다. 두 사건 사이에 무려 8년의 세월이 있다. 그런데도 마치 연이어 생긴 일처럼 다루고 있으니, 한국의 독자들은 이상하다 생각해도 맥락을 이해할 수 있겠지만 한국의 역사에 생소한 해외 독자들의 눈에는 과연 이 문장이 어떻게 읽힐 것인가.

이어지는 이야기에 관련한 역사적 사실에 작가가 부연하고는 있지만 이 문장만으로는 오독과 오해의 소지가 충분하지 않을까.

 

한 술 더 떠, 요한의 과거 고향의 기억을 더듬는 부분에 오렌지 과수원이 등장하고 있다(200). 당시에 오렌지 농장이 가능한 일인가. 그것도 한반도 북쪽에서.

 

벌집과 꿀의 느낌이 좋아서 펼친 책이다. 그 때의 감상에 비교하면 이 책은 썩 만족스럽지는 않다. 형식과 내용이 임팩트 있게 할 말만 하고 빠지는 압축된 형식의 단편에 더 어울리는 듯하다. 예상과 기대와는 많이 달랐다.

작가에 편에서 핑계를 만들자면 작가가 한국계이긴 하지만 한국인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소설은 미국인 소설가가 한국에 대해 쓴 소설이다. 그렇다고 오류를 가능한 실수로 덮어버릴 수 있는가. 작품을 쓰기 위해 작가가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가의 질문은, ‘디아스포라 문학의 확장이란 칭찬 일색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답을 궁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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