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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사냥개 ㅣ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77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정성희 옮김 / 해문출판사 / 1989년 10월
평점 :
크리스티 다시 읽기 스물네 번째 책.
❝- 어둠에서 헤매는 아들을
운명의 여신은 무슨 등불로 이끌어주시는가?
- 이심전심의 등불이다, 하고 하늘에서 대답했다.
알겠니? 제프리에게는 그것이 있는 거야. 이신전심의 등불 말이야. 아이들은 모두 가지고 있지. 어른이 되어가면서 점점 그것이 없어져 버리지. 아니, 그것을 없애고 있을 뿐이지. 아주 나이가 들어버리면 희미하게 빛이 돌아오는 수도 있지만, 뭐니뭐니 해도 이 등불은 아이 때가 가장 밝은 빛을 내지. (<등불>, 65쪽)❞
전형적인 ‘귀신들린 집’ 이야기이면서 어른이 되면서 사라지는 동심과 순수함의 흔적을 좇는 <등불>은 작가의 단편 중 내가 자주 꺼내 읽는 작품 중 하나이다. 으스스한 분위기에 완벽한 구성, 각 캐릭터들의 효과적인 역할 분담과 ‘어른 되기’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 메시지까지. ‘좋은 단편소설’이 갖추어야 할 미덕을 짧은 분량 안에 빼곡하게 담아낸다.
이 작품집은 크리스티의 여러 단편집 중 여기저기서 추려 편집한 책이다. 원래 영미권에서 출판된 책은 이런 모양새는 아니었으나 출판사(‘해문’) 임의로 저지른(?) 결과물이다. 그런데 오히려 더 좋다. 결과적으로 다양한 맛과 색깔을 갖춘,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 같은 모양새를 갖췄으니까. ‘황금가지’의 판본은 아마도 다르리라 추측된다.
초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두드러진다. 보통 애거서 크리스티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후던잇(Whodunit)’에 특화된 작가지만, 사실 여러 장르를 넘나든 전천후였다. 열한 편의 작품이 실린 이 책에서만도 호러, 정통 미스터리, 로맨스 등, 그 맛이 다양하다.
<죽음의 사냥개>에서 작가는 초현실적인 요소들을 자신의 특기인 범죄와 교묘하게 연결 짓는다. 그런 특징은 고양이와 인간의 영혼이 뒤바뀌는, 다소 허무맹랑한 이야기인 <아서 카마이클 경의 기묘한 사건>에서도 보인다.
미래를 예견하는 인물의 비극을 그린 <집시>, 귀신 들린 인형을 중심으로 한 소동극인 <의상 디자이너의 인형>도 호러 소설 범주에 속한다. 특히 <의상 디자이너의 인형>는 독자의 인간적인 면에 호소하는 결말로 독특한 여운을 남긴다.
로맨스 소설로 읽히는 <목련꽃>은 불륜 상황을 중심으로 인간의 존엄과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진지하게 조명한다. 작가 자신이 불륜의 피해자였으므로 그 상황과 관계를 탁월하게 잘 설득해냈다.
<개 다음에>는 이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몇 십 년이 지나서도 눈물짓게 만든, 매우 좋아하는 단편이다. 절망과 희망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순간을 잘 잡아내어 진정한 위로란 무엇인지에 곱씹게 만든다. 애절하고 사랑스럽고 낭만적인 작품이다.
나머지 작품들은 이 책의 작가가 누구인지 잊지 않게 만들어준다. ‘포와로’가 도난 사건을 멋지게 해결하는 <이중 범죄>와 <이중 단서>는 범죄와 트릭이 강조된 작품이며, 포와로가 앞으로 일어날 살인을 미리 막는 <말벌 둥지>와 ‘미스 마플’이 이방인의 죽음을 조사하는 <성역>은 범죄보다 인물의 드라마가 전면에 드러난다.
읽을 때마다 이런 작가가 또 있을까, 감탄하곤 한다. 올해(2026년)가 크리스티 사망 50주년이라고 해서 고향인 영국에선 여러 축제가 열리거나 열릴 예정이라고 하니 부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