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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와 증거
비그디스 요르트 지음, 유소영 옮김 / 구픽 / 2021년 8월
평점 :
절판
중년의 ‘베르기요트’는 부모의 유산 분배 문제를 계기로 오랫동안 연락을 끊고 살았던 가족들과 재회한다. 반갑기는커녕 껄끄러운 만남은 갈수록 ‘진짜 유산이 문제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만드는데,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폭력의 긴 그림자에 여전히 갇혀 사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다. 작품은 폭력의 피해자뿐만 아니라 그것을 부정하고 외면하거나 침묵한, 그로 인해 또 다른 가해를 하는 ‘가족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다른 가족들에게 베르기요트는 폭력의 피해자이기 이전에 가정의 화목과 평안을 깨뜨린 장본인이다. 내부고발자를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까. 베르기요트가 어렸을 때 ‘당한 일’은 거의 막바지에 드러나는데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고 작가에게 그것보다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는 듯하다. 이야기의 가장 아픈 부분은 (큰오빠를 제외한) 가족들 중 누구도 피해자 편에 서주질 않는다는 사실. 오히려 피해자를 탓하고 의심하며 ‘공공의 적’으로 몰고 간다.
들쑥날쑥한 시간 구성과 오락가락하는 주인공의 기억은 마치 시퀀스를 잘게 쪼개 마구 섞은 것 같은 영화, 혹은 악몽처럼 보인다. 이는 오히려 알코올의존증세까지 보이는 주인공을 의심하고 믿지 못하게 만들어버림으로서 독자로 하여금 ‘이차 가해’를 직접 경험하게 만든다. 이야기는 독자들이 피해자가 아니라 이차 가해자들에게 이입하도록 설계된 듯 보인다.
작가의 고향인 노르웨이에서는 일대 파란을 일으킨 작품이라고 한다. 자전적인 소설로 알려진 이 작품에 반목하는 소설이 뒤이어 출판됐는데, 작가의 동생이 썼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