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말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9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신영희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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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다시 읽기 스물세 번째 책.

 

 

고등학교 때에 읽은 책인데, 최근에 읽은 죽이는 화학에 언급되었길래 다시 읽게 됐다.

 

크리스티의 비교적 말년(66)에 발표된 이 작품은 작가의 저작 목록에서도 이질적인 작품군에 속한다. 범죄 자체는 작가의 특기에서 크게 안 벗어나지만, 이야기 저변에 흐르는 초현실적인 분위기, 우리 드라마 방법을 연상하게 하는 저주를 통한 원격 살인같은 소재가 작품 전반을 지배한다. 물론 이런 호러의 요소들이 두드러지긴 하지만 특별히 무섭거나 하는 건 아닌데, 이는 인물들 간에 아기자기한 드라마를 만들고 효과적으로 펼쳐 보이는 작가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된 덕이라고 하겠다. 긴장감과 수수께끼가 최대치에 이른 순간에 드러나는 사건의 진상은 독자들의 허를 찌르기에 충분하나, 작가의 팬들에게는 이미 익숙할 것이다. 작가가 45년에 발표한 마지막으로 죽음이 온다(Death Comes As The End)에서도 같은 살해 방법이 나온다.


범죄의 동기가 특이한데, 무척 내면적이다. ‘마슬로의 욕구 이론에 의하면 맨 위, 상단의 욕구에 의한 범죄라고나 할까. 자아 실현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자존 욕구,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범죄라는 게 으스스하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심리를 극적으로 과장되게, 그렇지만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범죄를 통해 인간 심리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건 크리스티의 특기 중의 하나다. 단순히 유산을 노리거나 질투로 살인을 하는 범죄자도 등장하긴 하지만, 작가의 후기작, 50년대 후반부터 발표된 작품들에서 두드러진다.

 

이 소설을 읽은 어느 간호사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에게서 독살을 의심하고 중독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도록 방지할 수 있었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Teacup Poisoner’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영국의 유명한 연쇄살인범도 이 소설로 인해 덜미가 잡혔다. 이런 사실이 위에 언급한 죽이는 화학에도 나오고 영문 위키에도 나온다. 문학의 순기능이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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