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곳에
도로시 B. 휴스 지음, 이은선 옮김 / 검은숲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게으른데다 의지도 없는데 눈만 있는 대로 높아진 한량의 범죄 이야기다.

이렇게 적으면 단순하고 뻔한 이야기 같은데, 주인공의 심리를 들여다보면 그 양상이 좀 복잡하다.

 

일단 주인공인 딕스는 과거의 참전 용사였다. 군인의 신분으로서는 최고의 대접을 받았지만 전쟁이 끝나고 군대로부터 방출을 당하자 어쩔 줄 모른다.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현실에 적응하기에 실패한다. 우왕좌왕하던 시기에 사랑하던 여자한테서 배반을 당하고 여성 혐오까지 생겼다. 딕스의 장점은 얼굴 반반한 것밖에는 없다. 몸을 움직여 돈을 벌고 싶지는 않고, 부자 삼촌에게 경제력을 의지한다. 부자 행세도 점점 어려워진데다 가난하고 야심이 큰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딕스의 가장 큰 동기는 부자가 되고 싶은 열망이다. 남들 보기에 그럴싸한 생활을 계속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부자 삼촌도 조카의 거짓을 꿰뚫어보고 돈줄을 틀어쥔다.

더 나쁜 건 이 남자가 뿌리 깊은 여성 혐오를 지닌 연쇄살인범이라는 사실이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묻지마 범행식의 살인을 저지르고 다닌다.

 

딕스가 살인범이라는 사실은 초반에 드러난다. 그래서 범죄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단서를 수집하고 범인을 좇는 일반 미스터리의 플롯 대신 작가는 범죄자의 심리에 집중한다. 살인범이면서도 열렬한 구애자인, 아이러니로 가득한 남자의 심리를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읽고 있으면 딕스에 대해 연민과 혐오가 동시에 일어난다. 주인공을 미워하면서 안타까워하는 감정은 이 작품의 묘미이다.

서스펜스를 다루는 작가의 솜씨가 인상적인데, 살인 장면을 전혀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한다. 시커멓기 짝이 없는 내면의 심연을 냉정하고 무심한 듯 묘사하는 것으로 충분해 보인다.

 

미국의 하드보일드(Hard-boiled)’ 장르에 여성 작가들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도로시 B. 휴즈의 존재는 독보적이라고 한다. 10년가량의 집필 기간 동안 굵직굵직한 걸작들을 많이 써냈다(고 하는데, 우리말로 번역된 작품은 이 책이 유일하다).

이 작품이 출판된 시기가 1947년임을 감안하면, 이 작품이 얼마나 선구적인 작품이었는지 추측이 가능하다. 딕스란 인물 자체도 그렇지만 특히 그의 범죄는 오늘날, 여성을 대상으로 한 수많은 혐오 범죄들을 연상시킨다. 8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의 악행은 시대를 불문하는 것처럼 보인다. 타인의 피(살인)에 대한 욕구는 근대에 이르러 느닷없이 생긴 게 아니라, 고대인들의 사냥 본능, 자기 보호 본능에서 진화한 것 따름이라는 진화학자, 범죄심리학자들의 주장에 신뢰가 간다.

 

앞서 발표된 ‘F. 스캇 피츠제럴드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를 연상하게 하는 부분이 많다. 살짝 비튼 범죄 버전이랄까. 그리고 이후에 나온 다른 작가의 소설들에 끼친 영향력도 보인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딕스 스틸은 죽음 전의 키스(Kiss before Dying, by Ira Levin, 53버드’, <리플리 시리즈, by Patricia Highsmith>톰 리플리’, 끝없는 밤(Endless Night, by Agatha Christie, 67)마이클등의 전신이다.

 

니콜라스 레이감독이 만든 동명의 영화(50)도 있는데, ‘험프리 보가트가 연기한 딕스는 전혀 다른 인물이라고. 이 영화 또한 느와르의 걸작이라고 하는데, 별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생기질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