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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복복서가 x 김영하 소설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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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의미 없는 선정성에 기대었다고 느낀 작품이 꽤 섞여 있어 실망이 컸던 소설집.

 

*

 

예전 강의를 들으며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를 읽은 기억이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영하에 대한 감상은 나쁘지 않았다. 현대 사회의 부조리나 모순, 그 속에 끼인 개인이 느끼는 억울함과 당혹스러움 등의 감정들을 잘 풀어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집 전체를 읽어 보면서 몇몇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선정적 소재에 지나치게, 그것도 큰 의 없이 기대었다고 느껴 실망이 컸다. 심오하고 예술적으로 보이고 싶으면서도 대중들의 입맛에도 맞고 싶어, 이목을 끌 만하면서도 충격적인 씬들을 넣으려고 노력한 느낌. 심지어는 어떻게 끝을 내야 할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아 섹스신으로 마무리했다고 느껴졌던 작품들도 몇몇 있었다.

 

1. <흡혈귀>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 보편적인 서술처럼 줄줄이 서술한다기보다는 여자의 편지를 각색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흔히 괴물, 가해자로 생각하기 쉬운 흡혈귀가 도리어 이혼으로 버림을 받는 존재, ‘흡혈의 자유를 헌납당하고 생존의 굴욕만 남게 된 일종의 피해자로 그려진 보편적 구도의 전도도 좋았다. 소설집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손에 꼽히게 마음에 들었던 작품 중 하나.

 

2. <사진관 살인사건>

굳이 평을 따지자면 중간쯤이랄까. ‘사진이라는 소재와 살인이라는 자극적이면서도 어울리지 않는 사건을 섞어 이 작품만의 특이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고 생각한다. 모든 의문이 해소된 것은 아니면서도 짐작은 하도록 해 주는 엔딩도 마음에 들었다. 나의 직업이 형사가 아니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형사 주인공의 생각 프로세스도 설득력 있게 잘 그려낸 것 같다.

 

3.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위의 총평에 보다 자세히 썼다. 현대인이 살아가면서 느낄 법한 부조리함이나 모순을 정말 잘 그려냈다고 생각하는 작품. 읽는 내내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다 읽고 나서도 답답한 감정이 가시지 않은 것을 보면 정말 잘 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4. <당신의 나무>

이미지와 작품 특유의 분위기가 생생하게 살아 있어 정말 좋았다. 사원의 정경, 후덥지근한 공기, 나무의 모습 등 시각적이고 촉각적인 심상들을 적절히 잘 활용해서 정말 짧은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었던 것 같다. 조금 미적미적한 감이 있을지 몰라도, 작품의 결말도 작품에 잘 맞았고 말이다. ‘당신이라는 2인칭의 서술 방식 역시 흥미로웠는데, 명백히 나의 이야기가 아니면서도 나에게 말을 거는 느낌이 들어 재미있는 효과를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가까운 사람 중에 심리학자가 있는지라 작품을 읽으며 조금 걸리는 서술들이 꽤 있었지만- 주인공의 캐릭터성의 일부로 생각하고 넘기는 것이 옳은 듯.

 

5. <피뢰침>

용두사미의 인상이 강했던 소설. 처음 번개에 대한 내용이나 신비로운 동호회, 번개를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전부 강렬하고 좋았다. 그런데 맨 마지막에 주인공이 J와 키스를 나누었던 것이나, 주인공이 그림을 그리며 끝나는 결말, ‘멋진 그림이 될 것만 같다.’라는 마지막 대사는 클리셰적이랄까, 어떻게 끝맺어야 좋을지 몰라 적당히 완결감 있어 보이게 마무리해 놨다는 인상이 컸다. 소재는 좋았지만 결말이 아쉬웠던 소설.

 

6. <비상구>

최악, 최악, 최악. 저자가 의도한 것은 비행 청소년들의 우애나 최소한의 휴머니즘 정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정말이지 최악이라고 생각했다. 주인공들의 말투는 유치하기 짝이 없었고- 저자가 정말 그런 식의 생활을 겪어 보기는 한 걸까? 하는 의문이 들게 했다. 마치 올바르게 자라 온 교사가 비행 청소년들의 말투와 생활과 사고방식은 이럴 거야.’라고 생각해서 멋대로 써내려간 유치찬란한 캐리커처 같은 기분. 인물들은 시도 때도 없이 성행위에 관한 생각을 하거나 성행위를 하는데 소설 전체와 결부해 봤을 때 그 의미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자극적임을 위해 자극적임 같은 느낌. 인물들의 말투는 리얼하지도 않은 욕설과 은어로 가득하고 인물들의 사고 과정은 일차원적으로만 그려진다. 정말 가출 청소년들의 문제를 깊이 있게 파고들고 싶었다면 적어도 이것보다는 인물들의 생각 프로세스나 백스토리에 신경을 더 썼어야 옳고, 주인공들의 정신연령이 다섯 살쯤 되어 보이도록 이렇게 그려내서는 안 되었다.

 

7. <고압선>

생활인이 겪을 만한 고민들을 판타지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데서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느꼈다. ‘사랑을 하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의 원리 자체가 잘 이해가 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라진다는 소재가 소설 전체와 연관 지어 잘 사용되었다고 생각했고, 미적거리는 듯한 결말도 소설의 흐름과 잘 이어진다고 느꼈다. 특유의 성적인 표현들은 여전히 거부감이 좀 느껴지기는 했지만......

다만 그런 날들이 계속, 계속되었다. 바로 오늘까지.’의 마지막 문장은 차라리 없는 것이 결말의 완결성에 더 기여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것은 내 개인적인 취향 때문인 것 같기도.

 

8. <바람이 분다>

미적거리는 일상을 기록했다는 느낌이어서 좋았다. 불법 시디를 복제해서 파는 것이 소시민적 일상이라고 하기는 물론 어려운 감이 있지만,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가장 격정적인 순간은 주인공이 경찰에게 발각당해 연행되어 갈 때뿐이고, 소설 속의 많은 부분들은 기다림의 순간에 멈추어 있다. 주인공이 직접 여행을 떠나지는 못하지만, 킬라만자로나 세계여행이나 바람의 이미지들이 소설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바람이 분다.’의 구절과 잘 어우러졌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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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짧은 소설 3 : 괴담 (워터프루프북) 민음사 워터프루프북
김희선 외 지음 / 민음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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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를 쫓을 아이템으로 손색이 없는 책.

 

먼저 겁이 너무 많아서 공포물을 잘 읽지 않는 나로서는 새로운 경험이었던 것 같다. 심지어 너무 무서워서 읽다가 중간에 포기하기도 했는데- 일단 그 정도로 소름 돋게 쓴 것은 실력의 반증이 아닐까. 한여름에 으스스하니 읽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단편 모음집이라는 컨셉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인터넷에서 아마추어 글 애호가들이 앤설러지(Anthology)를 펴내는 것들은 본 적이 있었어도, 이렇게 한 가지 컨셉으로 단편 모음을 만든 책은 잘 본 기억이 없어 더 좋았던 것 같다. 게다가 저자들이 각자 나름대로의 호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해 주어서, 같은 주제를 어떻게 다르게 표현하는지 비교해 가며 볼 수 있어서 더더욱 재미있었던 것 같다.

가장 좋았던 단편과 가장 좋지 않았던 단편들을 간단히 소개해 보며 리뷰를 마치려고 한다. 사실 가장 강렬하게 읽었던 것은 이유리 작가의 <따개비>이지만 그건 개인적으로 너무 깊은 공포를 건드려 버려서 구체적으로 리뷰를 할 기력은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표제작 <이것은 괴담이 아니다>였다. 단순히 고어스러운 이미지나 공포적인 소재들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의 구조로 한 번 더 생각해 봤을 때 으스스-한 감성이 들도록 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귀신 이야기를 정말 무서워하는 나로서는 그나마 꺼림칙하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괴담이기도 했고.

가장 감흥 없게 읽었던 것은 <벚나무로 짠 5자 너비의 책상>이었다. 뭐랄까, 내가 이해력이 딸리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만 머리에 조금 남을 뿐 그래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던 거야?’ 하는 의문이 컸던 것 같다. 괴담은 괴담이 맞는데, 하나의 줄기로 이어진 괴담이라기보다는 뚝뚝 끊어진 엽서들을 보는 느낌이었달까. 그래도 어딘지 모르게 일본 공포 단편을 떠오르게 하는 분위기 형성은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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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까지 알까 - 2020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정지아 외 지음 / 강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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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에 맞았던 것도, 그렇지 않았던 것도 섞여 있었던 소설집. ‘사람 사는 모습을 그려내려고 노력한 작품들을 중심으로 선정했다고 느꼈던 것 같다.

 

2020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었다. 수상 작품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많았다고 들었는데, 일단 그러한 맥락을 배제하고 나에게 소설이 어떻게 다가왔는지를 중심으로 나름대로의 평을 해 보려고 한다. 작품의 순서는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은 순서이다.

 

그만두는 사람들

평소 그림엽서 모음집 같이, 이미지로 이어져 있는 소설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 소설도 이미지가 예쁘게 느껴져서 읽으면서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아주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고 불안한 심경을 전달해낸 점이 좋았고, 바다와 스웨덴, 고양이와 식물원의 이미지도 글의 내용과 잘 어우러졌던 것 같다. 구성상 충분히 치밀하지 못하다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나의 취향에는 아주 잘 맞았던 작품.

 

2. 가정 사정

요새 소설을 볼 때 이미지를 굉장히 중시하는구나, 라는 걸 새삼스레 느끼고 있는데 이 작품도 이미지가 좋았던 것 같다. 좁은 작업실 안에서 옷 수선을 하는 정미의 이미지와 잔뜩 쌓인 종이꽃 부스러기를 치우는 경비원 윤씨의 이미지. 그러면서도 인물의 생각이나 독백 같은 것들이 자연스러워서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정미와 윤씨의 일상의 단면을 바로 옆에서 엿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읽으면서는 몰랐는데 다 읽고 나니 먹먹한 기분이 들었던 소설.

 

3. 우리는 어디까지 알까

사투리를 잘못 사용하면 어색하다고 느끼기 쉬운데, 이 소설의 경우에는 오히려 소설의 맛을 더하는 요소로 작용했던 것 같다. 매운탕과 소주의 이미지가 뭔가 인물들의 고단한 삶을 대변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다 읽고 나서 칼칼한 매운탕 한 그릇이 먹고 싶어진. 다만 심사평에는 이것이 가부장제를 은근히 돌려 비판한다고 적혀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전혀 그렇게 읽지 않았어서 조금 의아한 기분이 든다. 고달프게 살아가는 어머니와 나, 기택이의 사람 사는 이야기같다는 생각이 훨씬 컸는데.

 

4. 연수

인물에 대한 개인적 비호감이 소설 전체에 영향을 끼친 케이스인 것 같다. 일단 평생 승승장구해 온 주인공이 유일한 실패 격인 운전에 대해 가지는 일종의 콤플렉스가 충분히 이해가 되었고, 성공에 대한 강박이나 스트레스를 운전에 투영하는 것 같아 안쓰럽기도 했다. 하지만 연수 강사의 캐릭터가 툭툭 내뱉는 결혼에 대한 말 같은 것들이 너무 신경 쓰였다. 저자는 엄마를 알 듯 모를 듯 닮은 강사를 통해 일종의 세대공감 서사를 만들려고 했던 것 같은데, 나의 경우에는 재미있게는 읽었으나 강사의 캐릭터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도 못해 오히려 반대의 방향으로 읽은 듯.

 

5. 3구역, 1구역

작은 디테일들을 통해 다른 세계의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거부감이나 미묘한 감정들을 잘 드러내 주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에 비해 로 표현되는 공인중개사에 대해 주어지는 정보가 적은 탓에 상대적으로 평면적이게 느껴졌던 것 같다. 특이한 2인칭의 시점으로 말을 건네듯 전개하는 방식은 인상 깊었으나, ‘라는 인칭 대명사가 읽는 내내 자꾸 눈에 걸렸다. 친밀하지 않은 사이에 라고 부르는 게 설득력이 없다고 느껴졌던 걸까. 그렇지만 그렇다고 당신도 어감이 좀 이상해서, 딱히 어떻게 바꾸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내놓기는 어려울 것 같다.

 

6. 영화를 보다가 극장을 사버림

의식의 흐름 기법과 비슷한 서술이라고 느꼈다. 일부러 명료한 문장을 피하고 주인공의 생각을 그대로 옮기려고 노력한 것 같은 기분? 그렇지만 그런 탓에 내용을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읽기에는 조금 불편했던 것 같다. 영화를 보다가 극장을 사버림이라는 제목이 특이해서 끌렸는데, 본문과의 연결 고리가 잘 보이지는 않았다. 꼼꼼히 다시 읽어 보다 보면 무언가 눈에 들어오는 게 있지 않을까.

 

7. 신세이다이 가옥

조금은 추리 소설식의 구성이라고 느꼈는데, 처음부터 모든 사건이 명료하게 드러난 것이 아니라 조금씩 밝혀져 나갔기 때문이다. 길지 않은 분량에 다섯 명도 훨씬 넘는 인물들이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인지 글의 내용이 뇌리에 잘 입력되지 않았던 것 같다. 문장 자체는 매끄러웠지만 감흥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느낌? 어찌 되었든 나에게 있어서는 그렇게 인상 깊게 다가오지 않은 작품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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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살인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0
최제훈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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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맥거핀(Macguffin) 효과를 노린 것일까? 그러나 반전에서 무릎을 치기보다는 그저 허탈함이 훨씬 컸던 소설.

 

일단은 좋은 점부터. 문장이 막힘없이 읽히는 것은 좋았다. 추리 소설을 평소에 잘 읽는 편은 아니지만, 이전에 읽었던 것들은 대부분 애거서 크리스티나 셜록 홈즈와 같은 비교적 예전에 쓰여진 것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읽을 때 조금 버겁다고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만약 <단지 살인마>를 추리소설로 볼 수 있다면) 이 책의 경우 훨씬 수월하게 읽혔던 것 같다. 실제로 급하게 읽어야겠다고 의도한 것이 아님에도 이 책을 끝까지 읽는 데는 이틀이 채 걸리지 않았다. 흡인력의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많았다. 가장 아쉬운 점은 역시 책을 끝까지 읽고 나서 그래서 저자가 뭘 하려고 했던 건데?’ 하는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재미와 스릴, 플롯을 강조하는 추리 장르물로 읽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저자가 독자들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썼다는 전제 하에 그 메시지를 찾아 가며 읽는 것이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재미 위주이냐 의미 위주이냐 하는 것인데, 내가 느끼기에 이 책은 둘 다 아니었다.

재미 위주로 평가하게 되면 이 책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 치명적인 단점을 가진다. 그것은 바로 단지 살인마라는 소재가 무언가 엄청난 것이라도 되는 양 등장했다가 후반부가 되어서는 완전히 흐지부지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심지어 언급도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주인공과 손동식 두 사람의 이야기가 소설을 채운다. 단지(丹地), 즉 손가락을 잘라 가며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마의 이미지는 자극적이고 강렬하다. 또 꽤나 흥미롭고 서스펜스를 돋울 수 있는 소재이기 때문에 한 번 등장했으면 유용하게 쓰여야 하는데, 이 책 속에서 단지 살인의 역할은 주인공의 모방 범죄의 계기가 되는 것, 그리고 소설 초반부에서 독자의 관심을 끄는 것 정도에서 그친다고 느꼈다. 추리물이라고 보기에는 주인공이 대단한 추리를 하는 것도 없고 단지 흥신소에 한두 번 정도 연락을 해 보는 게 전부다. 머리를 써 가며 범죄의 실마리를 풀어갈 필요도 없었고, 주인공의 위기라고 부를 수 있을 법한 장면들에서 손바닥에 땀이 맺히는 긴장감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소설의 맨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이 자식, 제법 하는데?’ 하는 듯한 어투로 손동식의 범죄에 대해 독백을 늘어놓는 것은 유치하다는 인상이 컸고, 흡인력 있던 소설의 첫 부분과 비교해 보았을 때 용두사미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개인적인 취향으로서는 너무나도 아쉬운 엔딩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의미 위주의 접근을 적용해 볼까? 책의 끝머리에 붙어 있는 작품해설을 보자. ‘...희생자의 우치에 놓일 수 있는 것은 특별한 소수가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현대인이라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분명하게 알아두어야 할 것은 <단지 살인마>의 서사는 피해자의 사연과 고통, 그들이 느끼는 공포에 맞춰져 가는 것이 아니라 연쇄살인의 흔적을 따라가며 자신들의 살인을 공모하고 실행하는 살인자들의 심리에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는 점이다.’(185) ‘모든 사람이 살인에 관련되어 있는 사회, 윤리나 정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적 이익과 원한을 해소하기 위해 타인을 살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회, 그것이 최제훈이 만든 진정한 미로이다. ... 인간에게 잘려질 것은 나무나도 많다. 우리들의 살의는 신이나 윤리와 암묵적인 타협을 본 지 오래되었다.’(191) 종합해 보면, 저자는 현대 사회에서 팽배하는 살의와 비윤리성을 은근히 비판함과 동시에 범죄자들의 심리를 파헤쳐 봄으로써 누구나 예비 살인자가 될 수 있는 사회를 드러내 보이고자 했다는 것 같다. 만약 내가 저자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다면, 나에게 있어 이 소설은 실패였다. 현대 사회를 비판하기에 이 소설은 장영민의 심리에 너무 많은 비중을 두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좀 소심하고 찌질하고 양심이 부족한 사람의 서사로 읽히는 측면이 더 강했던 것 같다. 그 점은 손동식의 캐릭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고. 장영민이 자신을 괴롭히던 학교 동창을 살해하는 장면은 만화영화인가 싶을 정도로 현실감이 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게다가 앞서 언급했듯 단지 살인이라는 소재의 힘이 너무 컸다. 솔직히 나는 단지 살인 사건에 대한 궁금증이 너무 커져 버린 탓에 장영민이나 손동식의 심리에는 그다지 주목하면서 읽지 못했다. 책 끝의 작품 해설을 읽어 보면 장영민이 단지 살인에서 발견해낸 십계명 패턴역시 일종의 맥거핀, 그러니까 중요한 것처럼 등장하기는 하나 실제로는 중요하지 않은 그런 트릭성 소재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맥거핀은 작중에서 너무 중요하게 등장한다. 장영민이라는 인물이 추론을 이어 나가는 과정은 언뜻 보기에 꽤나 논리적이기 때문에 독자마저 설득당해 버린다. 게다가 이러한 장치로 인해서 오히려 플롯에 더 눈길이 가고, 인물의 심리라거나 혹은 숨겨진 메시지 같은 것에는 더욱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는 인상이 커서 아쉬운 마음이 많이 남았던 소설. 다른 독자들은 이 소설을 어떻게 읽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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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김금희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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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은 작품과 그렇지 못한 것들이 섞여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단편이 가질 수 있는 묘미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해준 책.’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작품 자체뿐 아니라 작가노트와 리뷰까지 빠짐없이 읽었다. 단순히 작품만 읽었을 때보다 훨씬 잘 이해가 되는 기분이었고, 작가 노트의 경우에는 글을 쓸 때의 작가의 심정을 엿볼 수 있었던 것 같아 흥미로웠다. 수록 작품 들소의 리뷰에서 소설가 윤성희 씨는 단편이 누군가의 삶 혹은 인간관계를 살짝 들여다보는 눈길이라는 윌리엄 트레버의 말을 인용해 왔다. 두고두고 인상 깊게 남을 만큼 푹 빠져서 읽은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 많은 것을 생각해 보고, 단편이 가질 수 있는 묘미에 대해 느끼게 해 준 책이기 때문에 그 말이 인상 깊게 남았다.

 

김금희,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사실 대상을 수상한 작품임에도 나의 취향에는 별로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기오성과 의 이야기, 강선과 노교수, 돌아가신 어머니와 문경의 사촌 등 수많은 소재들이 등장하는데 그것들이 잠깐씩 등장했다가 휙 사라져 버리는 기분이었고 소재들 사이의 긴밀한 연관성도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삶의 일부를 보여 주는 일상 이야기인가, 싶어 보면 그것은 또 아니다. 나름의 플롯이 존재하는데 나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기분이었다. 마지막 부분의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가 꽤나 여운을 남기기는 했지만 무엇 때문에, , 어떻게 자신이 여운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 잘 알 수는 없었고, 뒷부분의 리뷰를 읽다가 심지어 내가 마지막 부분을 잘못 해석했음을 알게 되었다. 나로서는 조금 밋밋하고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인상이었지만, 어쩌면 그냥 내 취향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게 된 것일지도.

 

2. 은희경,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정말 좋았다. 사실 이 작품집을 읽으면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인 것 같다. 인생은 소설이나 동화가 아니야, 하고 자주 말하고는 하는데 (인생 속의 일들이 늘 소설이나 영화 속처럼 잘 풀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점을 잔잔하게, 그러면서도 씁쓸하게 정말 잘 포착해 냈다는 인상이 들었다. 오랜 친구를 만났는데 생각만큼 반갑기는커녕 어딘지 모르게 삐걱거리는 듯한 기분을 누구나 느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았다. 민영과 승아 둘 중 누구도 미워할 수 없다. 각자의 고민과 각자의 괴로움을 안고 있고, 서로에게 닿지 못하는 모습에 안타까우면서도 둘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특히 두 인물을 그려내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는데, 저자는 적나라하게 이 사람은 이러이러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고 나열하지 않으면서도 나에게 두 인물을 이해시켰다. 신파적이지 않고 담담한 문체도 이 글의 쓸쓸하면서도 잔잔한 분위기에 잘 맞았던 것 같다.

 

3. 권여선, 실버들 천만사

양가적인 감정이 들었다. 작품 자체는 그렇게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작품이 담고 있는 메시지 자체는 굉장히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소설의 끝부분에서 엄마가 딸에게 이제 맛있는 거 내가 다 먹고 건강해지려고.’ 하는 장면에서는 내가 다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모녀의 교류가 어딘지 모르게 너무 작위적이게 느껴져서 읽는 내내 조금 눈에 걸렸던 것 같다. 모녀가 중간에 서로를 ‘-라고 부르기로 합의한 것도 소설의 전개상 어쩔 수 없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영 익숙지 않았고 (적어도 내가 우리 어머니에게 ‘-라고 부르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대화의 대사들도 실제 대화라기보다는 드라마나 어린이 연극의 대본 같다는 인상을 주었다. 뇌를 젤리화한다는 물고기의 이야기도 내게는 조금 뜬금 없게 느껴졌고, 마지막에 어머니가 쩔어.’ 하고 나름대로 유행어를 사용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4. 정현아, 바다와 캥거루와 낙원의 밤

강렬하고 인상적이었다. 밑바닥까지 떨어진 한 인물의 모습을 정말 잘 그려낸 작품인 것 같다. 주인공은 모든 것을 잃고 마지막 남은 것은 딸이었는데, 딸은 주인공에게 냉랭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보인다. 나는 그래서 극적인 효과가 더 컸던 것 같다. 애초부터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은 인물보다, 모든 것을 잃고 마지막 한 가지에만 매달리다가 그것에게조차 버림 받은 것이 더 비참하고 쓸쓸하지 않은가. 보자마자 큰 충격을 받지만 집에 들이고 싶지는 않은 그림 같은 느낌이었다. 불길이 꺼져 가는 장작의 앞에 앉아 있는 주인공의 마지막 이미지도 굉장히 인상 깊었다. 오히려 무엇인가를 단정 짓는 엔딩보다는 훨씬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5. 최은미, 내게 내가 나일 그때

소설 자체를 읽으면서 그렇게 인상 깊다고 느끼지는 않았는데, 그럼에도 꽤나 애정이 갔던 작품이다. 오히려 책을 덮고 나서 더 생각나는 축인 것 같다. 평소 정신건강과 관련된 작품에도 관심이 있기 때문일까. 서사 자체보다도 유정의 캐릭터에 관심이 갔다. 유정만큼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무언가 글을 써서 남들에게 보여주고 나서 후회가 밀려올 때가 있는데, 그 딜레마와 유정의 내면 독백, 그러면서도 마냥 순하지만은 않은 겉으로 보이는 성격 같은 것들이 나에게 있어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왔다. 덧붙여서 유태와 유정의 대화도 마음에 들었다. 소설 같은 것을 볼 때 대화를 꽤나 유심히 보는 편인데 (물론 객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마음에 드는 대화가 있고, 비교적 그렇지 않은 대화가 있다) - 이 소설 속에 나오는 대화들은 대부분 꽤나 마음에 드는편이었던 것 같다.

 

6. 기준영, 들소

소설 속의 이미지 자체들에 대해서는 꽤 마음에 들었다. 특히 햇빛을 받으며 소설을 낭독하는 길우에 대한 묘사가 좋았다. 작은 디테일들을 통해 햇빛이 드는 교실에서 바람을 맞으며 무언가를 읽는 소년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잘 그려낸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제목에 따르면) 이 소설의 주역이어야 마땅한 들소에 대해서는 마지막까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저자의 묘사에 따르면 들소는 무언가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역동성과 필연성, 그리고 약간의 불길함을 지닌 강한 이미지. 하지만 이것이 소설의 나머지 내용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 잘 이해가 가지 않아서, 소설 자체에 대한 평가도 그만큼 하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저자의 문장들은 마음에 드는 것들이 꽤 많았다. 예를 들어 하루가 저무는 속도로 하루를 잃는 보통의 어른’.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을 표현하는 데 재능이 있으신 분 같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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