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복복서가 x 김영하 소설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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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의미 없는 선정성에 기대었다고 느낀 작품이 꽤 섞여 있어 실망이 컸던 소설집.

 

*

 

예전 강의를 들으며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를 읽은 기억이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영하에 대한 감상은 나쁘지 않았다. 현대 사회의 부조리나 모순, 그 속에 끼인 개인이 느끼는 억울함과 당혹스러움 등의 감정들을 잘 풀어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집 전체를 읽어 보면서 몇몇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선정적 소재에 지나치게, 그것도 큰 의 없이 기대었다고 느껴 실망이 컸다. 심오하고 예술적으로 보이고 싶으면서도 대중들의 입맛에도 맞고 싶어, 이목을 끌 만하면서도 충격적인 씬들을 넣으려고 노력한 느낌. 심지어는 어떻게 끝을 내야 할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아 섹스신으로 마무리했다고 느껴졌던 작품들도 몇몇 있었다.

 

1. <흡혈귀>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 보편적인 서술처럼 줄줄이 서술한다기보다는 여자의 편지를 각색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흔히 괴물, 가해자로 생각하기 쉬운 흡혈귀가 도리어 이혼으로 버림을 받는 존재, ‘흡혈의 자유를 헌납당하고 생존의 굴욕만 남게 된 일종의 피해자로 그려진 보편적 구도의 전도도 좋았다. 소설집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손에 꼽히게 마음에 들었던 작품 중 하나.

 

2. <사진관 살인사건>

굳이 평을 따지자면 중간쯤이랄까. ‘사진이라는 소재와 살인이라는 자극적이면서도 어울리지 않는 사건을 섞어 이 작품만의 특이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고 생각한다. 모든 의문이 해소된 것은 아니면서도 짐작은 하도록 해 주는 엔딩도 마음에 들었다. 나의 직업이 형사가 아니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형사 주인공의 생각 프로세스도 설득력 있게 잘 그려낸 것 같다.

 

3.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위의 총평에 보다 자세히 썼다. 현대인이 살아가면서 느낄 법한 부조리함이나 모순을 정말 잘 그려냈다고 생각하는 작품. 읽는 내내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다 읽고 나서도 답답한 감정이 가시지 않은 것을 보면 정말 잘 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4. <당신의 나무>

이미지와 작품 특유의 분위기가 생생하게 살아 있어 정말 좋았다. 사원의 정경, 후덥지근한 공기, 나무의 모습 등 시각적이고 촉각적인 심상들을 적절히 잘 활용해서 정말 짧은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었던 것 같다. 조금 미적미적한 감이 있을지 몰라도, 작품의 결말도 작품에 잘 맞았고 말이다. ‘당신이라는 2인칭의 서술 방식 역시 흥미로웠는데, 명백히 나의 이야기가 아니면서도 나에게 말을 거는 느낌이 들어 재미있는 효과를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가까운 사람 중에 심리학자가 있는지라 작품을 읽으며 조금 걸리는 서술들이 꽤 있었지만- 주인공의 캐릭터성의 일부로 생각하고 넘기는 것이 옳은 듯.

 

5. <피뢰침>

용두사미의 인상이 강했던 소설. 처음 번개에 대한 내용이나 신비로운 동호회, 번개를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전부 강렬하고 좋았다. 그런데 맨 마지막에 주인공이 J와 키스를 나누었던 것이나, 주인공이 그림을 그리며 끝나는 결말, ‘멋진 그림이 될 것만 같다.’라는 마지막 대사는 클리셰적이랄까, 어떻게 끝맺어야 좋을지 몰라 적당히 완결감 있어 보이게 마무리해 놨다는 인상이 컸다. 소재는 좋았지만 결말이 아쉬웠던 소설.

 

6. <비상구>

최악, 최악, 최악. 저자가 의도한 것은 비행 청소년들의 우애나 최소한의 휴머니즘 정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정말이지 최악이라고 생각했다. 주인공들의 말투는 유치하기 짝이 없었고- 저자가 정말 그런 식의 생활을 겪어 보기는 한 걸까? 하는 의문이 들게 했다. 마치 올바르게 자라 온 교사가 비행 청소년들의 말투와 생활과 사고방식은 이럴 거야.’라고 생각해서 멋대로 써내려간 유치찬란한 캐리커처 같은 기분. 인물들은 시도 때도 없이 성행위에 관한 생각을 하거나 성행위를 하는데 소설 전체와 결부해 봤을 때 그 의미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자극적임을 위해 자극적임 같은 느낌. 인물들의 말투는 리얼하지도 않은 욕설과 은어로 가득하고 인물들의 사고 과정은 일차원적으로만 그려진다. 정말 가출 청소년들의 문제를 깊이 있게 파고들고 싶었다면 적어도 이것보다는 인물들의 생각 프로세스나 백스토리에 신경을 더 썼어야 옳고, 주인공들의 정신연령이 다섯 살쯤 되어 보이도록 이렇게 그려내서는 안 되었다.

 

7. <고압선>

생활인이 겪을 만한 고민들을 판타지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데서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느꼈다. ‘사랑을 하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의 원리 자체가 잘 이해가 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라진다는 소재가 소설 전체와 연관 지어 잘 사용되었다고 생각했고, 미적거리는 듯한 결말도 소설의 흐름과 잘 이어진다고 느꼈다. 특유의 성적인 표현들은 여전히 거부감이 좀 느껴지기는 했지만......

다만 그런 날들이 계속, 계속되었다. 바로 오늘까지.’의 마지막 문장은 차라리 없는 것이 결말의 완결성에 더 기여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것은 내 개인적인 취향 때문인 것 같기도.

 

8. <바람이 분다>

미적거리는 일상을 기록했다는 느낌이어서 좋았다. 불법 시디를 복제해서 파는 것이 소시민적 일상이라고 하기는 물론 어려운 감이 있지만,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가장 격정적인 순간은 주인공이 경찰에게 발각당해 연행되어 갈 때뿐이고, 소설 속의 많은 부분들은 기다림의 순간에 멈추어 있다. 주인공이 직접 여행을 떠나지는 못하지만, 킬라만자로나 세계여행이나 바람의 이미지들이 소설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바람이 분다.’의 구절과 잘 어우러졌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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