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창작과 비평 189호 - 2020.가을
창작과비평 편집부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평점 :
품절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아무래도 심리 묘사가 아닐까 싶다. 저자는 좋은 것도 아니고 싫은 것도 아닌 회색빛의 미묘한 감정을 잘 포착해낸다. 주로 의 독백과 회상으로 이루어진 소설의 전개 방식도 여기에 한 몫 한 것 같다. 저자가 작품 속에서 풀어낸 감정은 정말이지 제목 그대로 이름 없는 마음이다. 이렇게 리뷰를 쓰려고 하는 나도 그것을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그다지 즐기면서 읽지 못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너무나도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장르 문학에 너무 길들여져 버린 탓일까,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지도, 인물들의 심리를 이해하지도 못한 것 같다.

이 소설은 의 동생 현권이 를 방문했다가 떠나가는 하나의 큰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다 할 만 한 큰 갈등은 딱히 없고, 회상과 심리 묘사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가 나열되듯 쭉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서일까, 저자는 현권이 를 찾아오게 된 이유, 그리고 현권과 가까운 사이인 듯 보이는 가희 씨의 정체를 감추며 소설 속에서 점차 풀어나간다. 하지만 나는 뒷이야기가 궁금하다기보다는 정신없는 느낌이 더 컸다. 나중에 해답이 밝혀지는 장면에서, ‘, 이게 뭐였지?’ 하며 이전 장면으로 돌아가 다시 찾아보고 넘어가야만 했던 곳들도 있었다. 이 사건이 저 사건 같고 이 인물이 저 인물 같아 영 헷갈렸다.

이 소설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한 또 다른 이유는 등장인물들에게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설프고 자꾸 돈만 탕진하는데다 사회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현권, 어딘지 모르게 치졸하고 얄미워 보이는 남편, 영 우유부단한 ’, 그리고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의 커다란 골칫거리 중 하나인 가희 씨. 작가는 인물들에게 공평하다. 한 인물이 다른 인물보다 큰 잘못을 저질렀다든지 일방적으로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인상은 크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인물 각각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라, 모든 인물이 똑같이 싫게 느껴졌다. ‘에게도 현권에게도 공감이 가지 않았다. 물론 저자가 그것을 의도한 것이었다면 의도를 훌륭히 잘 살린 것이겠지만, 나로서는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 중 하나로 작용했던 것 같다. 호감을 가지지는 못하더라도 , 이 사람이 이래서 이렇게 행동했구나.’를 이해할 수 있는 편이 아무래도 더 좋지 않을까.

지나치게 이름이 없었던 마음도 나에게는 좀 어려웠던 것 같다. 앞서 말했듯 저자는 미묘한 감정을 잘 포착해내는데, 그게 지나친 탓에 읽고 나서 , 그래서 어떤 심정을 표현하려고 한 거지?’하고 어리둥절해지는 면이 조금 있었다. 또 짧은 글 속에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가 있어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점도 있었던 것 같다. 혹시 현재의 자잘한 디테일이나 사건들에 대한 묘사보다는 제목에 표현된 이름 없는 마음을 좀 더 깊이 있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더라면 어땠을까. (물론 내가 순문학을 읽는 데 서툰 탓도 크겠지만 말이다.)


-------------------

문학을 사랑하는 우리는 선뜻입니다.

선뜻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sunddeut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년세세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 소설.’

 

 

#첫인상

이 책에 대한 첫인상은 와, 예쁘다, 하는 것이었다. 깔끔한 단색의 표지에 로즈골드 색으로 반짝이는 제목과 글씨들. 현란한 그림이나 광고 문구 같은 것이 없어서 거부감이 들지 않고 굉장히 좋다고 느꼈는데, 책을 다 읽고 보니 글의 성격과도 잘 맞는 디자인이었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에 수록된 첫 작품인 파묘를 읽고 나서 에이, 재미없어, 하고 생각했다. 큰 사건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인물과 어머니 사이의 미묘한 관계 (심지어 어머니라는 것도 한참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나 인물의 독백, 자잘한 묘사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 나도 모르게 책의 중턱까지 와버린 것을 발견했다. 순문학에 익숙하지 않은 편이지만, 그럼에도 상당한 흡인력이 있는 글이었던 것 같다.

 

#한국의 이야기,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외국 소설은 외국 나름대로의 맛이 있지만 우리나라 장르 문학계에서 너무 외국 것만을 따라가는 것 같아 아쉬운 적이 많았던 것 같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서양 문화에 익숙한 나로서도 칼을 휘두르는 기사 이야기나 하이틴 섬머 로맨스 같은 것이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나라 문학은 우리 고유의 것을 지켜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소설은 그것을 잘 해낸 것 같다. 6.25전쟁, 파묘 등 소재도 한국적인 것들이 많았고, 소설 속 내용도 한국에서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았다. 겉으로만 보아서는 알 수 없는 이웃, 주변 사람들의 내면 같은 것들을 창호지 틈으로 몰래 엿본 기분이었다. 이들의 고민은 어떻게 보면 한없이 일상적인것들이다. 어딘지 모르게 서글프기는 한데 또 눈물을 터뜨릴 정도는 아닌. 이 소설 나름의 매력인 것 같다.

 

#담담함

사실 이 소설은 파고들어 보면, 슬픈 이야기를 참 많이 다루고 있는 것 같다. 등장인물들은 크든 작든 저마다의 고민을 가지고 살아간다. 특히 이순일의 이야기 같은 것은 우리 민족의 비극을 다루고 있는 만큼 원한다면 얼마든지 신파조로 끌고 갈 수 있었을 텐데, 저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끔직한 상황을 묘사하면서도 서술은 꽤나 담담한 편이다. 나는 그 점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이순일의 삶을 가지고 그것이 얼마나 비극적이며 얼마나 비통해해 마땅한지에 대해 장황하게 서술되어 있었다면, 오히려 슬프다기보다는 거부감부터 느꼈을 것 같다. 또한 출생의 비밀이라든지 살인 사건 같은, 일일 연속극 같은 과장된 연출이 없었던 점도 좋았다. 그래서 오히려 더 여운이 길게 남았던 것 같다.

 

#조금은 어렵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장르문학에 훨씬 익숙한 나에게, 이 글은 그다지 읽기 쉬운 글은 아니었다. 하고 싶은 말까지는 이해하기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지만, 이순일의 이야기를 다룬 무명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순자는 누구지? 그래서 이순일이 어떻게 되었다는 말인가? 이것은 회상인가, 상상인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사실 책을 완전히 이해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자신이 없다. 내가 무명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은 어쩌면 순자씨의 이야기가... 목적어가 자주 사라졌고 시간과 공간이 뒤섞였으며 다섯마디 이상으로 말이 이어진 적이 거의 없었다. ... 이 소설을 순자씨가 말하는 방식으로 써야 한다고 ... 그 노력의 일부를 소설에 남겨두었다.’ 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저자가 순자씨가 말하는 방식으로 소설을 쓰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주 조금만 더 쉽게 써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던 부분이다.

그렇지만 모든 문학이 장르 문학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독자를 완전히 미궁에 빠뜨려버리지 않는 선에서 순문학도 순문학 나름의 길을 지켜가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나름의 가치를 지닌 좋은 글이었다고 생각한다.

 

#총평

한국이라는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잘 그려낸 서사.

순문학이 다 이런 것이라면 앞으로 가끔 순문학을 읽어볼 법도 하다. (여전히 조금 어렵긴 하지만.)

 

#여담

사실 나는 책 앞표지 바로 뒤에 쓰인 작가의 한마디가 아주, 아주 많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여기서.’ 무언가 굉장히 멋있지 않은가. 책을 덮고 정확히 말로는 할 수 없어도 어떤 감동을 받은 기분이었는데, 이 말이 그것을 잘 캐치해 준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비록 책의 일부가 아니라 작가 사인 위에 딸린 작은 메모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문학을 사랑하는 우리는 선뜻입니다.

선뜻 인스타그램주소 https://www.instagram.com/sunddeut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모킹 오레오 새소설 7
김홍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뻔뻔한 치밀함의 진수를 보여주는 소설.

 

내 취향이 아닌 것은 확실한데, 그럼에도 잘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은 바로 그런 글들 중 하나다. 평소 <반지의 제왕>같은 판타지 대서사시에 빠져 살던 나지만, 이 소설은 그런 의미에서 신선한 충격이었다.

 

김홍 작가의 <스모킹 오레오>를 읽으면 어딘지 모르게 꿈을 꾸는 기분이다. 사건들은 엄밀히 시간의 순서에 맞추어 전개되는 것도 아니고, 한 인물의 시각에서만 전개되는 것도 아니며, 이따금씩 등장하는 의식의 흐름 같은 서술들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몽롱한 느낌을 들게 한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하서 마냥 솜사탕 같은 소설은 아니다. 책 속에서 누군가는 폭발하는 총에 맞아 죽어가고, 누군가는 기억을 잃으며, 누군가는 식음을 전폐하고 천천히 시들어 간다.

책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처음에는 랜덤한 퍼즐 조각처럼 느껴졌던 것들이 한 조각 한 조각 맞추어져 간다. 결국 그렇게 완성된 큰 그림을 보면 아, 그런 거였구나, 하고 무릎을 치게 된다. 심지의 책의 마지막 장에서까지도. , 그때 그 부분이 이렇게 쓰려던 거였구나.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의 줄거리는 기묘하기 짝이 없다. 급기야 이번 소설에선 오레오를 담배처럼 말이 피우는 인간이 세상의 총을 잠깐이나마 멈추게 만드는, 전미총기협회가 읽으면 어떻게 굿즈라도 하나 보내 말리고 싶은 이야기를 완성하고 말았다.’ 황당한가? 책의 뒷표지에 나온 소설가 이기호의 추천글 중 일부다. 이런 말이 안 되는 스토리를 성립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작가의 뻔뻔함과 천연덕스러움, 그리고 치밀함이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이야기는 맛깔나기 짝이 없다. 왜인지 다 읽고 나서도 한 번 더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소설.

 

-------------------

문학을 사랑하는 우리는 선뜻입니다.

선뜻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sunddeut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