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살인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0
최제훈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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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맥거핀(Macguffin) 효과를 노린 것일까? 그러나 반전에서 무릎을 치기보다는 그저 허탈함이 훨씬 컸던 소설.

 

일단은 좋은 점부터. 문장이 막힘없이 읽히는 것은 좋았다. 추리 소설을 평소에 잘 읽는 편은 아니지만, 이전에 읽었던 것들은 대부분 애거서 크리스티나 셜록 홈즈와 같은 비교적 예전에 쓰여진 것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읽을 때 조금 버겁다고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만약 <단지 살인마>를 추리소설로 볼 수 있다면) 이 책의 경우 훨씬 수월하게 읽혔던 것 같다. 실제로 급하게 읽어야겠다고 의도한 것이 아님에도 이 책을 끝까지 읽는 데는 이틀이 채 걸리지 않았다. 흡인력의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많았다. 가장 아쉬운 점은 역시 책을 끝까지 읽고 나서 그래서 저자가 뭘 하려고 했던 건데?’ 하는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재미와 스릴, 플롯을 강조하는 추리 장르물로 읽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저자가 독자들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썼다는 전제 하에 그 메시지를 찾아 가며 읽는 것이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재미 위주이냐 의미 위주이냐 하는 것인데, 내가 느끼기에 이 책은 둘 다 아니었다.

재미 위주로 평가하게 되면 이 책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 치명적인 단점을 가진다. 그것은 바로 단지 살인마라는 소재가 무언가 엄청난 것이라도 되는 양 등장했다가 후반부가 되어서는 완전히 흐지부지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심지어 언급도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주인공과 손동식 두 사람의 이야기가 소설을 채운다. 단지(丹地), 즉 손가락을 잘라 가며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마의 이미지는 자극적이고 강렬하다. 또 꽤나 흥미롭고 서스펜스를 돋울 수 있는 소재이기 때문에 한 번 등장했으면 유용하게 쓰여야 하는데, 이 책 속에서 단지 살인의 역할은 주인공의 모방 범죄의 계기가 되는 것, 그리고 소설 초반부에서 독자의 관심을 끄는 것 정도에서 그친다고 느꼈다. 추리물이라고 보기에는 주인공이 대단한 추리를 하는 것도 없고 단지 흥신소에 한두 번 정도 연락을 해 보는 게 전부다. 머리를 써 가며 범죄의 실마리를 풀어갈 필요도 없었고, 주인공의 위기라고 부를 수 있을 법한 장면들에서 손바닥에 땀이 맺히는 긴장감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소설의 맨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이 자식, 제법 하는데?’ 하는 듯한 어투로 손동식의 범죄에 대해 독백을 늘어놓는 것은 유치하다는 인상이 컸고, 흡인력 있던 소설의 첫 부분과 비교해 보았을 때 용두사미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개인적인 취향으로서는 너무나도 아쉬운 엔딩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의미 위주의 접근을 적용해 볼까? 책의 끝머리에 붙어 있는 작품해설을 보자. ‘...희생자의 우치에 놓일 수 있는 것은 특별한 소수가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현대인이라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분명하게 알아두어야 할 것은 <단지 살인마>의 서사는 피해자의 사연과 고통, 그들이 느끼는 공포에 맞춰져 가는 것이 아니라 연쇄살인의 흔적을 따라가며 자신들의 살인을 공모하고 실행하는 살인자들의 심리에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는 점이다.’(185) ‘모든 사람이 살인에 관련되어 있는 사회, 윤리나 정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적 이익과 원한을 해소하기 위해 타인을 살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회, 그것이 최제훈이 만든 진정한 미로이다. ... 인간에게 잘려질 것은 나무나도 많다. 우리들의 살의는 신이나 윤리와 암묵적인 타협을 본 지 오래되었다.’(191) 종합해 보면, 저자는 현대 사회에서 팽배하는 살의와 비윤리성을 은근히 비판함과 동시에 범죄자들의 심리를 파헤쳐 봄으로써 누구나 예비 살인자가 될 수 있는 사회를 드러내 보이고자 했다는 것 같다. 만약 내가 저자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다면, 나에게 있어 이 소설은 실패였다. 현대 사회를 비판하기에 이 소설은 장영민의 심리에 너무 많은 비중을 두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좀 소심하고 찌질하고 양심이 부족한 사람의 서사로 읽히는 측면이 더 강했던 것 같다. 그 점은 손동식의 캐릭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고. 장영민이 자신을 괴롭히던 학교 동창을 살해하는 장면은 만화영화인가 싶을 정도로 현실감이 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게다가 앞서 언급했듯 단지 살인이라는 소재의 힘이 너무 컸다. 솔직히 나는 단지 살인 사건에 대한 궁금증이 너무 커져 버린 탓에 장영민이나 손동식의 심리에는 그다지 주목하면서 읽지 못했다. 책 끝의 작품 해설을 읽어 보면 장영민이 단지 살인에서 발견해낸 십계명 패턴역시 일종의 맥거핀, 그러니까 중요한 것처럼 등장하기는 하나 실제로는 중요하지 않은 그런 트릭성 소재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맥거핀은 작중에서 너무 중요하게 등장한다. 장영민이라는 인물이 추론을 이어 나가는 과정은 언뜻 보기에 꽤나 논리적이기 때문에 독자마저 설득당해 버린다. 게다가 이러한 장치로 인해서 오히려 플롯에 더 눈길이 가고, 인물의 심리라거나 혹은 숨겨진 메시지 같은 것에는 더욱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는 인상이 커서 아쉬운 마음이 많이 남았던 소설. 다른 독자들은 이 소설을 어떻게 읽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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