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초록은 즐겁다 - 테마파크 식물 총감독의 정원 이야기
이준규 지음 / 시공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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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1 ‘텃밭은 아름답지 못하다’, ‘아름다운 정원은 환경친화적이지 못하다같은 편견을 깨는 혁신적 정원이 테마파크 안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두고두고 회자된다면 서서히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지 않을까?

 

꽃과 풀을 보려면 길거리를 거니는 대신 어딘가를 찾아가야하는 대도시에 살면서, 드물게 정원을 볼 수 있는 곳 중 하나가 바로 테마파크. 에버랜드나 롯데월드 등 대형 놀이공원에서는 벚꽃축제나 튤립축제처럼 계절에 맞춰 꽃을 테마로 하는 페스티벌이 열린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놀이공원 안에 그렇게나 많은 꽃이 자연적으로 색을 맞춰 필 리가 없으니 누군가가 그 화단을 인위적으로 조성한 게 당연한데도, 세상 모든 초록은 즐겁다를 읽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구체적으로 해 본 적이 없는 기분이다. 아파트처럼 마당이 없는 집이 보편적인 주거 형태가 되고 정원과는 거리가 멀어진 삶을 살면서 어쩌면 우리는 정원이라는 것을 품을 들여 가꾸고 피부로 느끼며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대상이라기보다 어딘가에서 타인에 의해 뚝 떨어진 보기 좋은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지 않나, 싶은 마음을 안고 책을 폈다.

 

세상 모든 초록은 즐겁다는 정말로 제목처럼 즐겁게 정원 이야기를 볼 수 있는 책이었다. 전체적으로 상냥하고 쉽게 쓰여 있어서 조경학이나 식물학에 전혀 아는 바가 없는 독자들도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다. 책의 도입부에서 저자는 조경과 정원의 차이점을 묻는 교수의 질문에 조경은 소설이고 정원은 ’”라고 대답한 경험을 풀어낸다. 몇 페이지 되지 않는 프롤로그에서부터 독자는 공공의 것이면서 맥락과 촘촘한 서사가 있는 조경개인의 것이면서 자유롭고 현란한 정원에 대해 깊게 생각하며 테마파크의 튤립 정원, 동네의 대형 공원, 아파트 단지의 화단 등이 조경에 속할지 정원에 속할지 고민해보게 된다.



 

p.247 첫 번째로 정원은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살아 있는 역사라 할 만큼 많은 역사의 켜를 가진 것이 정원이다. 다양한 시대와 다채로운 스타일, 여러 철학, 수많은 이야기가 정원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많은 사람들이 테마파크에서 계절의 한 순간만을 소비한다. 꽃이 가장 예쁘게 피어 있는 시기, 날씨가 좋은 휴일에 만개한 꽃이 가득한 정원을 사진으로 가지고 떠난다. 저자는 그런 꽃과 사람 사이의 거리감을 줄이기 위해 정원의 울타리를 걷어낸다는 큰 결심을 한다. 화단의 훼손을 걱정하는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울타리를 없앤 결과 놀랍게도 오히려 화단의 훼손은 줄었고, 소비 대상이자 피사체에 불과했던 꽃은 사람들에게로 다가가 함께 어울리고 숨쉬는 자연이 되었다. 곧이어 고객이 없는 시간에만 가꿔지던 정원에 항상 정원사들이 함께하게 되면서 정원은 더더욱 자연스러워졌다. 사람들은 정원의 한 철 한 컷만을 보는 게 아니라 꽃이 피고 지는 모습, 날씨에 따라 잎을 떨구고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순환과 생명에 대해 직접 느끼게 되었다.

 

조경과 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서서 삶과 자연, 성장과 본질에 대한 저자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아름다운 정원 사진이 이따금 시선을 환기해주기 때문에 순식간에 읽어나갔다. 이 책을 읽고 난 모든 독자들은 정원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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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 헌터스
폴 윤 지음, 황은덕 옮김 / 산지니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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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0 어떤 기억이 남겨지는 데 어떤 선택이 있었을지 그는 궁금했다. 그리고 어떤 기억이 잊히는지도.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그들 모두가 그럴 수 있다고 여겼던 순간들이 있었다.

 

모든 작가가 자신이 경험한 바를 토대로만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경험했다고 해서 반드시 더 잘 쓰는 것도 아니고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무조건 볼품없는 글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전쟁과 디아스포라 두 가지 주제만큼은 반드시 경험한 작가들이 더 잘 쓴다는 생각이 있다. 스노우 헌터스는 한국전쟁 북한군 포로 요한이 브라질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으로, 한국계 미국인인 폴 윤의 장편소설이다. 전쟁고아를 위해 보육원을 설립했던 조부의 자료에서부터 시작된 스노우 헌터스는 디아스포라 문학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익숙하더라도 영미권에 국한되어 있는 한국 독자들에게 브라질로 이주한 북한 포로라는 신선한 전개를 통해 큰 울림을 던져냄으로써 독자의 마음속에 파동을 만든다.

 

역자 해설에서도 이미 언급되었지만 요한이 송환을 거부하고 브라질로 떠나는 장면에서 한국의 많은 독자들이 최인훈의 광장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어나가고 있으면 스노우 헌터스에서는 광장과 같은 고통이나 갈등보다는, 요한의 새로운 삶에 대한 서정적 서술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작가 특유의 다정하고 수려한 문체가 마치 서정시처럼 그려내는 브라질에서의 삶은 많은 독자들이 요한이 전쟁의 트라우마와 이민자로서의 디아스포라를 견뎌내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게 만든다.

 

p.171 그가 놓쳐 버린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한 번 더 뒤져 보고 찾는다면 무언가를 되찾을 가능성이 있었는지.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었는지.

 

그러나 분명히 전쟁의 슬픔은 존재한다. 요한과 펭이 눈 속에서 구조되는 장면은 물론이고 군화를 얻기 위해 전사를 기다려야 하는 펭의 모습에서 우리는 전쟁의 처참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전장을 생생하게 묘사하거나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브라질이라는 낯선 나라에서 동양인으로 살아가는 기요시와 요한의 존재 자체가 한국전쟁 생존자에 대한 증명이자 찬사가 된다. 요한은 브라질에서 많은 사람들을 새롭게 만나고 있는데도 그의 독백에는 때로 외로움이 묻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고독은 결코 비참하거나 서글프지 않다. 태양이 강렬한 브라질에서 그를 받아들여 준 이들의 환대는 전쟁 포로 요한이 한 명의 재단사로서 또 하나의 삶을 살아가게 만든다.

 

스노우 헌터스에서는 사실 거대하고 충격적인 사건은 발생하지 않는다. 요한에게 다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지도, 그가 이민자로서 받아들여지지 못해 고뇌하고 슬퍼하고 쫓겨 도망치는 일이 벌어지지도 않는다. 요한은 그저 그곳에서 기요시와 페이쉬, 비아, 산티… … 사실상 그가 북한에 있었을 때는 발음할 일조차 적었을 이름들과 함께 살아갈 뿐이다. 그럼에도 그런 일상적인 삶을 통해 사회가 무너트린 개인을 다시 다른 사회가 재건하는 모습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전쟁의 아픔과 전쟁, 내전, 빈곤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난민을 마냥 꺼려하고 불편해하는 사회에 큰 경종을 울린다. 많은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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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가 모두와 함께 - 레오 14세 교황의 가르침
레오 14세 교황 지음, 가톨릭출판사 편집부 옮김, 한영만 감수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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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6 그러나 하느님의 성령께서는 우리가 삶을 바라보고 걸어가는 전혀 다른 새 길을 찾아내게 하십니다. 우리가 세상 앞에서 쓰고 다니는 온갖 가면들 뒤편에서 진정한 나 자신과 마주하도록 눈을 뜨게 해 주십니다. 


평화가 당신과 함께-또한 당신의 영과 함께(Peace with you - And with your Spirit)는 가톨릭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도이자 인사말이다. 이 말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이 모인 자리에 나타나 가장 먼저 건네신 말로(루카 24:36), 267대 교황 레오 14세가 첫 강복의 운을 뗀 문장이기도 하다. 종교와 평화는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다. 어느 종교든 옳게 된 종교라면 평화를 지향한다. 예수님께서는 어느 집에 들어가거든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라고 가르치셨으며(마태 10:12), 성령이 올 것을 약속하시며 당신 평화를 우리에게 주셨다(요한 14:27). 새 교황께서 이러한 평화에 대한 인사로 강복을 시작하신 것은 아마도 가톨릭교회가 앞으로 나아갈 길이 평화에 있음을 명확히 선포한 것처럼 느껴진다.

 

평화가 모두와 함께는 그런 평화를 추구하는 레오 14세 교황의 강론과 연설을 번역해 모아둔 책으로, 강론 영상이나 연설문을 접했으나 언어의 한계로 이해하기 어려웠던 독자들이나 통역 방송을 챙겨보지만 내용을 제대로 곱씹으며 읽어 보고 싶었던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교회의 지향점을 더 깊게 알고 다가가고 싶은 독실한 신자는 물론이고 가톨릭에 대해서는 잘 몰랐으나 이번 콘클라베를 접하며 새 교황과 가톨릭교회의 가치관이 궁금해진 예비 신자들에게도 반갑게 다가올 책이라고 생각된다. 세계 평화의 촉구나 청년들을 위한 위로로 빼곡한 연설문을 읽어나가고 있으면 평화란 종교와 신앙의 테두리를 넘어 전인류적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p.65 이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너무 많은 분열을 목격하고 있으며, 증오, 폭력, 편견, 다르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지구의 자원을 착취하고 가장 가난한 이들을 배척하는 경제적 사고방식으로 인한 심각한 상처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새 교황님에 대한 책을 읽을 때마다 쓰는 말이지만, 콘클라베 직후에는 역시 최초의 미국인 교황이라는 점이 제법 걱정스러웠다. 모든 언론과 신자들, 심지어 비신자들까지도 그가 제 1세계 미국인이라는 자아를 가지고 평화와 사랑을 말하는 종교 수장으로서의 역할을 잘 해나갈 수 있을지 입을 모아 염려했다. 그러나 평화가 모두와 함께를 통해 그의 연설을 꼼꼼히 읽어 보면 괜한 기우였음을 알게 된다. 레오 14세는 인류를 위한 화합의 누룩이 되는 선교적 교회를 지향하고자 하며(250518 베드로 직무 개시 미사 강론 ) 성령이 평화가 다스리는 세상을 일구어 가려는 우리를 든든히 받쳐 주시기를 기도하신다(250608 성령강림대축일 미사 강론 ). 특히 교회 및 타 종교 대표단을 향한 연설에서 전쟁에는 아니오.”, 평화에는 .” 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언급하신 부분을 읽을 때에는 세계 각지에서 여전히 진행 중인 크고 작은 전쟁들이 끝나고 평화를 찾기를 함께 기도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점은, 지도자를 향한 담론에서는 세상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하는지, 공동선과 인간 존엄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언급하며 정치의 책임을 촉구하지만 신학생들과 청년을 향한 말씀에서는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기를, 자신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고 희망을 갖기를 권하며 마음을 격려하신다는 점이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낮은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야말로 종교와 종교인의 본질이라고 생각된다. 평화를 추구하는 가톨릭교회가 레오 14세 교황과 함께 앞으로 나아갈 길을 더 기대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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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2026.상반기 - 제52권 1호
한국문학사 편집부 지음 / 한국문학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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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3 종종 궁금해진다. 집으로 돌아와 가방에 달려 있던 키링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의 마음 같은 것을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죽음은 사라졌다는 감각에 가깝다. 영영 사라졌음,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안미옥, 겨울의 일들)


낱개의 작품으로 존재하던 글들이 비슷한 문화와 비슷한 시대를 타고 묶이며 하나의 커다란 흐름이 되면 그것이 비로소 사조가 된다. 문예지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런 흐름을 볼 수 있어서인데, 물론 개별적으로 마주쳐도 충분히 좋은 글들이지만 하나의 문예지에 묶여 있으면 어쩐지 그 사이의 긴밀한 관계성이라거나 공유하는 가치관이 느껴지는 기분이 든다. 스쳐 지나갔던 작가의 글을 새롭게 만나게 되거나, 익숙한 작가의 글에 대해 제시된 새로운 평론을 보게 되기도 한다. 물론 일반적인 가십 잡지마저 읽는 이들이 많이 줄어든 작금에 문예지라고 해서 마땅히 독자를 마구 끌어 모으는 기적같은 현상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만, 오히려 그런 점에서 질 좋은 문예지야말로 작가들에게는 지면을, 독자들에게는 흐름을 보는 눈을 제공함으로서 소위 팔리는것보다 더 고맥락의 가치를 생산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한강 작가의 수상 언급을 통해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말하며 시작되는 한국문학 2026 상반기호에는 백 년」 「보물찾기등의 단편소설은 물론이고 이기리, 이소호 등 여러 시인의 시도 실려 있다. 개인적으로는 시 부문에 실린 다섯 명의 시인이 모두 굉장히 젊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오랫동안 문단에 계신 선생님들의 글에서도 정제된 문체와 관록을 응당 느끼게 되지만, 젊은 시인의 글에는 젊을 때에만 쓸 수 있는 날것의 매력이 드러난다. 좋게 말하면 신선하고 조금 속되게 말하면 객기가 느껴지는 글들이다. 젊은 작가들에게 기꺼이 지면을 내어 주는 것 또한 권위 있는 문예지의 역할이라고 생각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이소호 시인의 캣콜링을 굉장히 좋아했기 때문에 시 부문의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글 한 줄 한 줄이 꽤나 반가웠다.

 

p.155 시의 효용에 대해 생각해본다는 말이 새삼 부끄러워지는 까닭은 시에 의무를 위임해놓고 삶을 안전한 세계에 보관해둔 채 종말에 가까워진 현실을 애써 새로운 미래로 치환하고자 하는 나(우리)의 태도에서 비롯하는 듯하다. (김웅기, 삶의 전시-불완전이라는 완전)


김웅기 평론가의 평론 삶의 전시는 진은영의 신작시 다섯 편에 대하여 쓰였지만, 해당 평론의 마지막 문단은 특정 시인의 특정 시에 국한되지만은 않는다고 느껴진다. 문학은 단지 수려한 문장의 나열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때로는 약자의 목소리를 싣는 역할을 하고 때로는 잊혀지지 않아야 할 사건을 지면에 남기는 일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문학과 삶을 분리하지 못한다. 그의 말대로 글에 의무를 위임해두고 삶은 안전한 곳에 남겨둘 것이 아니라 문학이 우리를 이끌어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우리도 따라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문학계를 얘기할 때 작가와 독자는 쉽게 언급하지만 번역가는 놓치기 쉽다. 특집 좌담에서 이러한 번역가의 처우와 번역가 양성에 대한 전문가들의 현실적 의견이 상세히 실려 있어, 평소 번역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극히 사견이지만, 해외 독자들이 페미니즘이나 장르 문학만을 중심으로 한국문학을 소비한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큰 공감을 남기지는 못했다. 국가를 막론하고 문단이 갖는 고질적 문제는 오랫동안 교육과 문학을 남성의 전유물로 보며 남성 중심의 문학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점이고, 이제야 그 틀을 깨고서 페미니즘적 목소리를 실은 글들이 세상에서 주목받게 되었다. 오히려 서양권에 비하면 한국은 많이 뒤처져 있는 편이라고 느껴진다. 소영현 평론가의 말처럼 그런 트렌디한 글들이 물살을 타고 더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터줄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이렇게 다양한 의견이 모여 새로운 물꼬를 틀 수 있는 것이 좌담의 역할이기에 흥미롭게 읽었다.

 

새해가 밝았고, 또 새로운 글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올해도 글 바깥으로는 무탈하고 글 내에서는 소란스러운 한 해가 되기를 바라며, 한국문학의 건승을 기원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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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그렇게 바뀌었다
류쭝쿤 지음, 강초아 옮김 / 들녘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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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70 문제는 사회적으로 강력한 집단은 종종 상향 평등을 제로섬 게임으로 여기며, 취약계층이 그들이 누리던 특권을 빼앗는다고 생각해 변화를 거부한다는 데 있다. (중략) 법원의 판결이란 법률과 기존 판례에 얽매여 있어서 평등권이 판결에 반영되는 방식은 종종 매우 굴곡진 형태가 된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의 1항은 다음과 같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그것은 마치 당연한 말처럼 여겨지지만 우리는 살면서 종종 의문을 품게 된다. 정말로 모두가 평등한가? 그렇다면 차금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빈정거리듯 서평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모 주가조작 사건이 무죄로 판결났다는 속보를 보고 와서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법은 시대적 맥락을 반영한다. 세상이 진화와 발전을 거치는 동안 법도 수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 틈새를 들여다보면 현대의 시선으로는 이런 차별을 법이 보호했다고?’ 싶을 정도로 황당하게 읽히는 구석들이 많다.

 

법은 그렇게 바뀌었다150년간 쌓여 온 미국의 판례를 통해, 변호사 류쭝쿤이 그러한 법의 변화를 상세히 파헤쳐 기록한 책이다. 책을 펼치기 전에는 단순히 판례를 정리한 책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은 수없이 분노하고 수없이 울었고, 책을 다 덮은 후에는 반쯤 우스갯소리로 출판사를 걱정했다(이 책을 어떻게 파시려는 거예요...? 그렇지만 이런 책을 내 주는 들녘이 있어서 오늘도 세상이 살만합니다...). 책의 1장은 <스콧 사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연방대법원의 수석 판사는 노예는 노예 주인의 합법적 재산이라는 판결을 내렸고, 노예제를 두고 미국의 남부와 북부가 부딪히면서 자유와 평등의 국가 미국은 반으로 나뉘게 된다. 150여년 전의 미국 법은 모든 인간이 아니라 백인만을 수호했던 것이다.

 

p.397 평등과 공정을 추구하는 일은 당연하게도 법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사회를 구성하는 각각의 인종과 민족, 계층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법률의 영향력이 미치는 경계선은 분명히 존재하며, 시대마다 그 한계가 있다.

 

열두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책은 쉼없이 달린다. 다른 인종 간의 결혼 금지법과 관련된 러빙 대 버지니아 사건, 미등록 이민자 아동의 교육권과 관련된 파일러 사건을 거쳐 말미에는 미국 명문대 입시가 성적이나 평등한 기회보다는 기부금과 인맥, 재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꼬집은 블럼의 소송들을 제시한다. 눈물과 피로 쓰인 수많은 판례를 보면서 우리는 법이 결코 스스로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속에는 언제나 투쟁이 있고 사람이 있다. 류쭝쿤이 책에서 평등과 공정을 추구하는 일은 사회를 구성하는 이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썼듯이, 우리는 법이 우리를 위협하는 대신 우리를 보호하는 울타리가 되도록 지켜보고 매질하고 가꾸고 고쳐나가야만 한다.

 

사실 책을 펴 보고 조금 놀랐다. 위아래 여백이 20mm도 안 되어 보이는데 끝없는 주석을 빼고도 400페이지가 넘는, 그야말로 글자로 꽉 찬 책이다. 빽빽한 텍스트 속 수많은 판례와 그 속에 살아 숨쉬었던 인물들이 책 바깥의 독자에게 묻는다. 정말로 법은 평등한가? 우리가 1857년의 노예제 판결을 보며 차별적이라고 혀를 차듯이 22세기, 23세기, 더 미래의 사람들이 2026년의 판결을 보며 비난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는가? 개인적으로는 전혀 확신이 없다. 이 책에 고스란히 담긴 투쟁과 법의 역사를 보라. 법은 언제나 투쟁 위에 쓰여왔다. 언젠가 당신이 당신 자신을, 당신의 가족을, 당신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을 차별하는 법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할 때, 이 책이 다시금 떠오를 것이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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