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밖 감정
성해나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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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 서울 집값은 마치 손을 힘껏 흔들어도 멈추지 않는 버스와 같아 궁핍한 사회 초년생 곁을 빠르게 지나갔다. 여기 살아도 돼요? 물으면 서울이 감히? 하며 눈을 부릅뜨는 듯했다. 의식주 중 가장 주主가 되는 것이 주住일 텐데, 서울에서는 그조차 어려웠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었다. 원래는 워낙 서울의 학군지가 대단하다 보니 서울에서 공부를 하면 잘 살게 된다는 말이었지만, 인터넷 강의나 지방의 쟁쟁한 브랜드 학원들이 많아진 요즘에도 서울 과밀화 현상은 여전하다. 사람은 자꾸 서울로 빠져나가고, 그러면 청년들이 빠져나간 지방은 껍데기만 남아 일자리도 편의시설도 줄어들고, 거기에 지친 사람들이 또 서울로 빠져나간다. 그렇게 서울은 점점 커지고 지방은 점점 쪼그라든다. 『서울 밖 감정』은 그런 서울에 대해, 익히 독자들에게 알려진 여섯 명의 작가가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내어놓는다.

 

최근의 한국 현대문학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들이 여러 가지 시선으로 서울을 조명한 책이다 보니 작품 개별적인 볼륨은 작으면서도 글을 관통하는 주제부는 확실히 느껴진다. 짧은 글 속에서 서울은 더 이상 단순한 ‘도시’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서울은 어떤 관념이다. 선망이나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나를 불러들이거나 매몰차게 내쫓기도 한다. 이 글들 속에는 불법 증축된 곰팡이 집에서 살았던 날것의 경험부터 서울에서 느꼈던 동경이나 열망까지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지방에서 상경했든 서울에서 살아 왔든, 서울의 기묘한 공기를 경험해 본 많은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이다.

 

p.43 당시만 해도 나는 어렸고, 서울 사람들한테 이상하리만큼 주눅이 들어 있었다. 서울에 살고 있지만 늘 서울에 세 들어 사는 기분. 서울 사람들이 모두 집주인 같은 느낌. 집주인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말 것. 그게 내가 서울에서 10년 넘게 살면서 배운 것이었다.

 

서울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면서도 제목은 서울 ‘밖’ 감정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면서도, 서울 밖에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서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진다. 서울에서 사는 것은 그저 서울에서 사는 것일 뿐이다. 아무도 왜 서울에서 사느냐고 묻지 않는다. 그러나 성해나의 「탑승 시 손을 흔드시오」에서 볼 수 있듯 서울 밖에 사는 이들은 끊임없이 왜 서울에 살지 않느냐는 질문에 시달린다. 특히 이 책의 저자들이 서울의 각종 행사나 미팅에 참여해야 하는 현직 작가라는 점에서 서울 바깥의 삶의 불편함이 더 고스란히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게 가벼운 플롯으로 이토록 강렬하고 내밀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작가들의 역량이 대단하다.



 

『서울 밖 감정』은 서울에서 사는 것이 무조건 좋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서울이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차가운 XXX들의 도시, 라는 별명이 생겨 버린 서울, 미워하기에는 죄가 없고 좋아하기에는 다정도 없는 기묘한 도시에서 살아온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아주 비밀스러운 일기장을 엿본 기분마저 들게 된다. 사실상 한반도의 면적을 생각하면 그리 크지도 않은 서울, 그런데도 손쉽게 ‘서울’과 ‘서울 밖’으로 묶이는 사회에서, 서울이라는 도시의 특이성이 개인에게 주는 기묘한 감각을 정제된 언어로 펴낸 근사한 글이었다.

 

 

* 출판사 서포터즈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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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청소
노청엽 지음 / 반타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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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5 남편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말. 쓰러진 남편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말. 죄책감이 하루하루 자신을 옥죈다는 말. 모두 거짓이었다. 그리고 남편을 사랑했다는 마지막 말이야말로, 끝내 그녀의 속을 뒤집어 놓은 가장 큰 거짓말이었다.

 

파격적이다. 강렬하고, 의외의 반전이 있다. 노청엽의 장편 소설 『완벽한 청소』는 주인공 채영숙의 시점에서 시작된다. 영숙은 현대 장편 소설의 주인공으로는 다소 특이한 구석이 있는 인물이다. 50대의 중년 여성이라는 점, 의뢰인들의 ‘가짜 가족’을 연기해 일종의 사기에 가담하며 돈을 번다는 점이 그렇다. 돈에 허덕이는 탓에 아주 도덕적이지도 않지만 끝까지 비도덕적이지도 않은, 상당히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다. 사실 채영숙뿐만 아니라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꽤 특이하게 느껴진다. 이 사람 중요해 보여, 생각하면 어느새 죽어버리기도 하고 이 인물이 범인일 듯, 하고 생각하면 의외의 선역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돈과 도덕 사이에서 덜컥 돈을 선택해버린 영숙이 그 선택으로 인해 어떤 일들에 휘말리는지 따라가다 보면 300페이지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전개가 빠르고 상당히 속도감이 있어 마치 한 편의 영화나 드라마 시리즈를 보는 듯 금세 읽었다. 시체가 등장하거나 폭력이 오가는 장면들이 꽤 생생하면서도, 독자를 괴롭히기 위한 억지스러운 텍스트고어나 과한 묘사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촘촘하게 짜인 초반부에서 쌓여 올라간 빌드업이 의외의 반전 몇 개를 거쳐 한 번에 탁 터진다. 오래된 스릴러의 정석 같은 기승전결을 갖고 있으면서도 몇몇 소재는 꽤나 현대적이다. 몰아칠 때는 확실히 몰아치고 덜어낼 때는 담담하게 덜어내는 필력이 대단하다. 작가가 01년생이라는 젊은 나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독자를 사로잡는 힘이 훌륭했다.

 

p.255 하지만 그 짧은 시간의 밀도는 56년간 꾸역꾸역 살아온 그녀의 삶 전체를 거대한 압착기에 넣고 짓이겨도 다 담아내지 못할 만큼 빽빽했다. (중략) 그 얄팍한 생애가 이 끔찍한 나을 안에 응축되어 있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바쁘게 시점이 변하던 전반에 비해 진상이 밝혀지는 결말부의 하이라이트는 의외로 대화 위주로 진행되는데, 이 구간이 조금 더 길고 탄탄했으면 어땠을까 싶으면서도 가족이라는 주제부를 놓고 확연히 대비되는 두 인물을 정면으로 부딪혀 보여주는 연출이 흥미롭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스릴러라는 장르의 재미에 충실하면서도 인물 간의 연대나 서사가 세밀해 은근한 여운이 남는다.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이 서로를 힘들게 하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를 구해주는 것을 보며 독자는 가족의 의미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책을 덮은 후에는 살아남은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게 된다. 영숙의 말대로, 살아 있는 사람은 돌아갈 수 있으니까.

 

읽는 동안 이것저것 추측해볼 구석이 많고 자잘한 반전들이 등장할 때마다 흥미로웠다. 다른 독자들도 그렇게 읽기를 바라는 마음에 스포일러를 최대한 덜어내다 보니 좋다, 이래서 좋다, 저래서 좋다는 말만 가득한 리뷰가 되었지만, 정말로 꽤 괜찮은 페이지터너다. 차기작이 굉장히 기대되는 작가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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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애론 - 베르나르도가 말하는 '하느님을 사랑할 의무'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지음, 암브로지오 M. 피아조니 엮음, 방종우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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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3 그러므로 사랑은 하느님이면서 동시에 하느님의 무상의 선물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사랑을 창조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본질적인 사랑은 우연적인 인간의 사랑을 낳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인간 안에 사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일찍이 예수님께서 모든 계명 가운데 첫째 가는 계명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는(마태 22:37)’ 것이라고 하신 적이 있다. 얼핏 들으면 신자로서 당연한 말이라고 느껴지지만, 막상 이 계명을 실천하려고 하면 많은 의문이 생긴다. 하느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 연인이나 배우자를 사랑하듯이? 부모님, 선생님을 공경하듯이? 아니면 나 자신을 아끼듯이? 『신애론』은 이런 의문에 부딪힌 독자들에게 해답을 주는 책이다. 베르나르도의 저서 『하느님을 사랑할 의무』를 책의 1부로 두고 그에 대한 암브로지오 M. 피아조니의 해제를 2부로 두어, 베르나르도의 삶이나 가치관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들도 쉽게 그의 신앙과 사랑을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인간이 사랑에 이르는 여정을 ‘인간이 자신을 위해 자신을 사랑할 때’, ‘자신을 위해 하느님을 사랑할 때’,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을 사랑할 때’, ‘하느님을 위해 자신을 사랑할 때’의 네 단계로 구분한다. 인간은 유약하기 때문에 우선 자기 자신을 돌보고, 하느님의 도움을 받은 다음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느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사랑과 다정을 느끼면 필요에 따라서가 아니라 그저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여기까지 읽은 후에는 네 번째 단계가 결국 다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점이 조금 의아해지는 독자가 많을 듯하다. 필요나 조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게 왜 최고 단계의 사랑이 아닌 것일까? 저자는 마지막 단계의 사랑에 대해 ‘우리 자신이 오직 하느님의 뜻을 위해서만 존재하기를 원하는’ 상태라고 이야기한다. 이 부분이 베르나르도가 말하는 사랑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된다. 궁극적으로 주님과 결합해 한 영혼이 된다는 말은 보통의 평신도로서는 조금 어렵게 다가오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가 주님을 향한 사랑을 통해 얻고자 하는 평화와 자비, 영원한 생명에 가장 가까운 말이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p.157 인간이 하느님과 일치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희망의 원천이며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인간에게는 낙관적인 이유가 존재한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모상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해제를 보면 ‘사랑’이라는 가장 기본적이고 낭만적인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베르나르도는 의외로 십자군 원정이나 수도원 개혁 운동 등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던, 꽤 불안정한 시대의 성인이었다고 한다. 보통 성인들의 저서를 읽을 때 시대적 배경이나 그분의 사상적 뿌리를 알지 못해 어렵게 다가올 때가 많은데, 『신애론』에는 그의 유년 시절이나 영성생활을 엿볼 수 있는 해제가 함께 실려 있어 본서 부분인 1부만큼이나 해제인 2부를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2부를 읽은 후 1부를 다시 읽으면 조금 의아하거나 어렵게 다가온 부분들도 더 잘 이해되는 것 같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계명으로 여겨지는 사랑에 대한 베르나르도의 깊은 사유를 엿보는 것과 동시에 우리가 가진 사랑이 나아갈 방향을 깨달을 수 있는 책이었다.

 

*캐스리더스 활동으로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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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원의 삽목
마쓰시타 류노스케 지음, 마미영 옮김 / 반타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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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4 그날 밤 나누었던 그 약속이 훗날 내 인생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고, 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갉아먹게 될지 그때는 알 도리가 없었다. 그날부터 그 방은 시하루와 나만의 새로운 피난처가 되었다.

 

‘200년’ 전의 유골이 실종된 내 여동생과 DNA가 일치한다. 캐치프라이즈로 내세워진 이 사건과 함께 시작되는 소설은 결말에 다다를 때까지 강렬하고 속도감 있게 휘몰아친다. 그 와중에도 인물들 간의 관계는 촘촘히 얽혀 있고 약간은 불온한 분위기를 풍긴다. 게다가 사이비 종교나 각종 연구윤리 등 사회적으로 다소 민감한 주제까지 세련되게 녹여낸다. 작가가 91년생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일본 미스터리의 정석 같은 책이다. 하루카와 여동생 시하루, 조력자 유이, 그리고 아군인지 적군인지 알 수 없는 아버지와 수상한 거구의 남자 우시오, 이 일을 파헤치는 기자들. 마치 드라마처럼 많은 인물들이 세밀하게 엮이며 스토리를 만들어나간다.

 

최근 들어, 장편에 불가피하게 따라오는 루즈함을 없애기 위해 짧은 챕터마다 여러 인물의 시점을 오가는 기믹을 사용하는 작품을 많이 마주치게 된다. 수시로 독자의 주의를 환기시켜 주고 복선을 섬세하게 장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되지만 이 방법의 가장 큰 문제는 독자가 모든 시점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나 『1차원의 삽목』은 챕터의 소제목으로 서술되는 시점과 인물을 표기하는 것으로 이 단점을 시원하게 타파한다. 7장에 걸쳐 여러 인물의 시점으로 과거와 현재가 교차될 때마다 복선이 차곡차곡 쌓였다가 풀려나가기를 반복한다. 스포일러를 줄이기 위해 직접 언급할 수는 없지만, 어느 순간에는 반전에 깜짝 놀라 책을 덮고 도로 표지를 들여다본 적도 있었다.

 

p.324 사람을 만드는 건 유전이냐, 환경이냐. 오래전부터 인류가 품어온 명제지. 난 유전이 전부라고 생각해. 유전자가 그 사람의 모든 운명을 결정한다고.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지를.

 

DNA 연구의 많은 부분을 소재로 사용하고 있지만 관련 상식이 없어도 이해하는 데에 큰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허겁지겁 페이지를 넘기기 바빴다. 미노타우루스의 미궁 개념을 접목시킨 스토리도 좋았고, 의외의 인물이 조력자가 되거나 서사가 생각지 못한 부분으로 흘러가 사람을 놀라게 하는 반전도 꽤 있었다. 앞서 말했듯 정말로 일본 미스터리, 하면 떠오르는 종류의 정석적인 책이면서도 현대적으로 잘 정제된 스토리였다. 사실 가장 일본 소설이라고 느껴지는 설정은 약간 불안정하고 잘생긴 남자 주인공에게 많은 여성들이 이성적 호감을 내비친다는 부분이기는 하지만...단기간에 조력자를 얻기에는 가장 쉬운 방법인 만큼 적재적소에 과하지 않게 잘 사용되었다고 생각한다.

 

인물들이 각자 다채롭게 입체감이 느껴져 독자의 몰입을 유도한다. 사이비 종교의 행태에 소름이 돋기도 하고, 센바나 교이치의 언행을 보며 유전자 연구 윤리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기도 했다. 장을 가르는 간지마다 뼈와 꽃이 어우러진 X선 분위기의 사진이 들어가 있는데, 본문과 굉장히 잘 어울린다고 느껴진다. 여러모로 파격적이고 대단한 미스터리였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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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일의 만화 그리스로마 신화 2 - 헤라클레스
이우일 지음, 이준석 감수 / 비채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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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4 신의 의지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지. 고대 희랍인들은 고통을 통해 배움을 얻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어. 최악의 시련을 극복할 때 진정한 영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비채에서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가 나온다는 소식에 가장 먼저 든 생각 : 제발 저요...)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미리 말씀드리자면, 오늘의 서평은 진지하게 쓰던 평소의 서평과는 많이 다르지 않을까 싶다. 왜냐면 나는 독자의 마음이 아닌 오타쿠의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



 

그리스 로마 신화는 원래도 끝없이 인용되는 세계적 스케일의 대-메이저 장르였기는 하지만, 나를 포함한 그로신 덕후들은 각종 방송에서 영화 《오디세이》가 언급되고 출판사마다 관련 도서가 쏟아져 나오는 요즘 매일이 즐거울 수밖에 없다(홍은영 선생님 보고 계시나요 당신이 키운 세대가 오디세이를 10탕씩 뛰는 어른으로 컸습니다). 그래서 『이우일의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 출간 소식도 너무너무 반가웠다. 《노빈손 시리즈》로 일찍이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만화가의 작품인 만큼, 그리고 일리아드와 오뒷세이아 번역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저명한 고전학자 이준석 교수가 감수를 맡은 만큼 기대도 굉장히 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우일의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는 정말로 대단했다. 제2권 <헤라클레스> 편을 읽으며 그의 열두 과업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자연스럽게 신화 속으로 빠져든다. 주인공 헤라클레스는 다소 투박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그려져 흥미를 끌고, 지하 세계의 케르베로스나 디오메데스의 식인 암말들 등 작중에 등장하는 동물이나 크리처들은 굉장히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감탄을 자아낸다. 말이 이렇게 잘생겨 보여도 되는 건가요.


책은 제우스가 암피트리온으로 변해 알크메네와 함께하는 것부터 시작해 기간토마키아 이전, 헤라클레스가 올림포스에 입성하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만화라고 해서 중요한 부분들을 생략하지도 않는다. 방랑 음유시인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을 취해 서사시라는 원전의 형태를 존중하고 있으며, 오랫동안 전승된 신화의 특성상 사건의 시간 순서가 맞지 않는 오류나 여러 판본이 존재하는 부분들도 놓치지 않고 알려준다(p.217 시간이라, 누군가 그러더군. 그것만이 인간의 유일한 주제라고. 신들의 시간은 인간의 그것과 다르게 심술궂게 흐르지.). 그러나 고리타분하게 설명만 늘어놓는 학습 만화는 아니다. 원전에 충실하되 유머와 재미를 모두 챙긴, 이우일이라는 대중 만화가의 관록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끊임없는 헤라의 방해 속에서도 제우스의 비호를 받으며 과업을 완수해 나가는 헤라클레스를 보고 있으면 영웅 서사에서 이 끔찍한 고난들이 왜 필요한지 자연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열두 개의 과업과 고난을 거쳐 헤라클레스는 21세기에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힘’과 ‘영웅’의 대명사가 되었다.

 

1권 신들의 우화, 3권 오뒷세이아도 탐날 만큼 사랑스러운 책이다. 흔히 그리스 로마 신화라고 하면 대중적으로 알려진 트로이 전쟁을 주로 내세우는데 어째서 이런 순서가 되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비코가 인간 역사를 나눌 때 신들의 시대, 영웅들의 시대, 인간들의 시대로 구분한 것에 따라 세 편이 나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2권 <헤라클레스>를 통해 반인반신 헤라클레스가 괴물을 물리치고 신들의 시대, 즉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전반부를 닫으며 후반부 트로이 전쟁으로 이어지는 인간의 시대를 열었던, 과도기 역할인 ‘영웅의 시대’를 즐겁게 엿볼 수 있었다.



 



그리스 신화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포근한 수채화 그림과 도입부의 인물 설명, 상세한 스토리 표현으로 쉽게 입문할 수 있을 것이고, 이미 그로신 덕후인 사람이라면 매 페이지에서 이걸 이렇게 표현한다니! 하는 감탄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ai가 모든 것을 요약하고 그려내주는 세상에 너무나도 귀한 도서다. 즐거운 리뷰 이벤트를 열어 주신 출판사에 감사드린다.

 

p.s. 독서계 여러분의 그로신 최애는 누구인가요? 저는 오디세우스입니다...두뇌캐 순애남 절대 지켜...♡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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