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맨발
한승원 지음 / 문학동네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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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깨달음이란 무엇일까.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만종의 책이 쏟아지고 수많은 이론들이 그 기세가 무서울 정도로 성행한다. 그러나 현대인의 의식은 점점 혼란스러워지고 가치 판단의 기준조차 제대로 갖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불교는 오직 '깨달음'이라는 하나의 화두만으로 인생의 희노애락, 생과 사까지 모두 끌어안는 큰 가르침이다. 싯타르타에서 시작하여 현재까지 면면히 내려져 오고 있는 스님의 이야기들은 깨달음을 위한 구도가 얼마나 험난하면서도 거룩한 대장정인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해준다.

'스님의 맨발'은 재미있는 일화와 그림, 사진으로 잘 알 기회가 없었던 스님들을 생생하게 현실에 재현한다. 최초의 스님에서부터 시작하여 중국에서, 한국의 여러 시대 속에서 이처럼 큰스님들이 많았다는 것이 색다른 즐거움으로 우리를 책 속으로 이끈다. 때로는 유쾌한 장난으로, 엄한 꾸중으로 또 때로는 직접적인 행동으로 제자들을 이끌었던 스님들. 참다운 삶과 마음의 탐구를 가르치셨던 그 스님들은 바로 우리 시대의 살아 있는 스승이다. 가난한 육체로 태어나 가난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내어주던 스님들은 실은 가장 풍요로운 우주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이 아니었을까.

제일 사랑하던 제자 가섭이 오자 입적하신 석가모니의 맨발이 갑자기 관에서 뛰쳐나왔다고 한다. 스님의 맨발이야말로 한 평생 걷고 걸어 온 구도의 증거였다. 스님의 깨달음은 육체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살리는 것이며, 삶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스님의 맨발은 바로 삶을 사랑하는 진정한 구도자의 표상이다.

또한 이 작품에 등장하는 많은 스님들은 그 가르침과 활동이 조금씩은 틀리다. 그러나 세상에는 한 길이 아니라 중첩된 수많은 길이 있지 않은가. 깨달음 또한 그에 이르는 궁극점은 같더라도 살아 있는 생명 수만큼의 길이 나 있을 것이다. 모처럼 열린 마음으로 내 안의 화두를 들여다보게 해주는 '스님의 맨발'. 문득 일상에서 벗어나 스님들의 자취가 묻어 있는 산사로 달려가고 싶은 건 비단 혼자만의 생각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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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
한승원 지음 / 작가정신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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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새록새록하다. 계절마다 속도가 제각기 다르다면 가장 빠른 것은 봄이 될 것이고, 가장 느린 것은 겨울이 될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그만큼 봄은 더디게 와서 빠르게 지나간다. 지척에 당도한 것인가 싶으면 그새 앞지른다. 바람이 실어 나른 대륙의 먼지만 뒤집어 쓴채 저기 앞서가는 봄을 목도할 뿐, 계절은 여름인 것이다.

한승원의『화사』는 불길도 같고 물줄기도 같은 마음의 상태를 서툴지않게 그린 작품이다. 화사,사전을 찾아보니 산무애뱀이라는 어여쁜 우리 이름으로 불리운다. 어린시절 같은 학년의 덩치 큰 아이들은 산에 올라 알록달록 아름다운 뱀을 잡으면 그 껍질을 손수 벗겨,자신에게 휘둘러질 가능성이 농후한 회초리에 곱게 입혀서는 선생께 진상하고는 했다.그 때의 마음 상태가 소설처럼 홧홧했을려나. 하지만 갈색 바탕에 네 개의 검은 줄무늬가 있는 뱀이 화사, 또는 산무애뱀이라고 하니 우리네 어린 시절의 그 뱀이 화사는 아닌가보다.

한승원의『화사』는 매우 역동적이다. 사건의 전개나 인물의 움직임이 역동적인 것은 아니다. 그저 주인공 송해란의 가슴앓이,앓이가 역동적이다. 인물들 스스로가 시간의 은혜를 입고, 제 태생으로부터 성격을 부여받아 역동적이다. 소설가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저자거리에 나와 길잃은 모양으로 우왕좌왕하는 역동이 아니라, 나름의 역할을 하고 마중나온 독자에게는 아랑곳하지 않는, 꿋꿋하게 제 집을 찾는 폼이 역동적이다.

송천억의 딸이자 송방울의 손녀인 송해란이 주인공. 커다랗게 양돈업을 하는 부모를 만난 덕에 잘 먹고 잘 입고 잘 마시며 사는 그녀인데 알 수 없는 가슴의 응어리로 처녀를 버리지 못한 채 끙끙 앓고 있다. 그런 그녀는 실은 어머니 오혜숙의 여동생과 종돈장 관리사인 임종훈의 남동생 사이의(실은 조금 헷갈린다, 누구와 누구의 자식이며 그들 부모의 혈연관계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자식이다. 그들 형제 자매의 애증의 다각 관계를 제 태생의 연원으로 삼는 그녀는 시쓰는 교수 기현을 사모하고, 그 기현은 옛 스승 성미희를 사모한다.송해란은 유한마담인 이혼녀 장이 부를 거간꾼으로 하여 사람잡는 또는 사람살리는 선무당을 알게 되고,그 선무당은 해란의 처녀 상실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등장인물이 무어 대수랴 싶다. 그저 봄밤 가슴 헛헛한 상태,그 사방에서 들려오는 수런거림,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꽃잎마냥 한 마리 화사로 승화하는 온전치 못한 마음의 상태만 전달받을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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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
임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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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임철우의 작품은 다 좋아한다. 그의 암울하며 자조적인 문체를 좋아하는것 같다. 이 작품은 한 소년의 성장과 성숙은 그렸다. 그의 문체는 여전히 암울하지만 결국엔 꿈을 잃지 않아야 희망도 있는것이라는 대명제에 충실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책을 읽는 동안 '왜 이 책의 제목이 등대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건 소설 속 인물들의 갈등을 해소하는 정점에 등대가 등장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주인공은 그 시대 별다르지 않은 유년시절을 보냈을 수도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 시절 그리 부유하게 산 사람들이 아니면 모양새가 달라도 그 정도의 갈등쯤은 어깨에 지고 살아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들이 모두 그 갈등을 해소하지는 못했으리라. 거친 파도 속에서 방황하는 배에게 있어 등대는 마음이 안식이 될 수 있듯이 지친 인생살이에 어느 순간에는 자신이 간직한 꿈으로 마음에 안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뭔가 안 풀리는 사람들, 이세상에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 좌절의 문턱에서 주저앉아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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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가고 싶다
임철우 지음 / 살림 / 199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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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읽은건 대학때이다. 그러니까 90년대 초반이었던것 같다. 그때는 책을 무작위로 머리에 쑤셔 집어넣던 시기라 도무지 지금은 책제목만 보고는 어떤내용이었는지 도저히 감을 잡지 못할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이책은 낡은 책장속에서 낡은 기억속에서 꺼내온 소중한 선물과 같은 존재이다. 몇번을 다시 읽어봐야지 하면서 이핑계 저핑계로 손을 대지 못하다가 회사를 쉬게되면서 이책을 다시 읽게 되었다. 거의 10년전에 읽었던 책인데 그땐 이책을 어떤 느낌으로 읽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읽고 기분이 묘하게 따스해졌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나, 아홉살인생처럼 아련히 지나가버린 어린시절 추억거리를 남다른 글솜씨로 써내려가 이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나에게도 이런 어린시절이 있었나... 태어나서 갑자기 훌쩍 어른이 되어버린 느낌.. 그사이는 모두 공백상태로 휑하게 지냈는데 이책을 읽으면서 피식피식 웃으면서 휑한 내가슴속에 따스한 바람이 살랑거리는것 같았다. 이책을 읽으면서 가장 감동적인건 별에 대한 얘기다. 할머니가 나에게 해준 별 이야기. 정말 어느 별에서 날라와 이곳에서 잠시 머물다 다시 내가 태어난 별로 돌아간다는 그말.. 할머니별은 모든걸 잊어버렸는줄 알았던자신의 모든기억을 하나하나 되찾아 주고 그리고 할머니는 별로 돌아간다. 이책은 영혼을 두드리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한가득 실려있다. 그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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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와 나 1 - 애장판
라가와 마리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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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순정만화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이 만화를 집어드는 것 자체가 모험(?)이었다. 어쩌면 몇년전 그날 내 생애 가장 무료한 느낌이 없었다면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책이다. 그렇게 무료함으로 시작한 이 작품을 전권 독파하고 난 후의 나의 느낌이란...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난 그날 나의 무료함에 감사한다'라고...이 작품은 여성독자만을 위한 순정만화가 아니며, 사랑하는 엄마와 아내를 잃은 삼부자가 거친 세상을 살아가며 울고 웃는 인간드라마이다. 죽이고 죽고 피가 난무하는 액션만화들에서 잠시 눈을 돌려 잔잔한 감동을 느끼고 싶은 만화광들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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