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
한승원 지음 / 작가정신 / 2001년 1월
평점 :
절판


세월이 새록새록하다. 계절마다 속도가 제각기 다르다면 가장 빠른 것은 봄이 될 것이고, 가장 느린 것은 겨울이 될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그만큼 봄은 더디게 와서 빠르게 지나간다. 지척에 당도한 것인가 싶으면 그새 앞지른다. 바람이 실어 나른 대륙의 먼지만 뒤집어 쓴채 저기 앞서가는 봄을 목도할 뿐, 계절은 여름인 것이다.

한승원의『화사』는 불길도 같고 물줄기도 같은 마음의 상태를 서툴지않게 그린 작품이다. 화사,사전을 찾아보니 산무애뱀이라는 어여쁜 우리 이름으로 불리운다. 어린시절 같은 학년의 덩치 큰 아이들은 산에 올라 알록달록 아름다운 뱀을 잡으면 그 껍질을 손수 벗겨,자신에게 휘둘러질 가능성이 농후한 회초리에 곱게 입혀서는 선생께 진상하고는 했다.그 때의 마음 상태가 소설처럼 홧홧했을려나. 하지만 갈색 바탕에 네 개의 검은 줄무늬가 있는 뱀이 화사, 또는 산무애뱀이라고 하니 우리네 어린 시절의 그 뱀이 화사는 아닌가보다.

한승원의『화사』는 매우 역동적이다. 사건의 전개나 인물의 움직임이 역동적인 것은 아니다. 그저 주인공 송해란의 가슴앓이,앓이가 역동적이다. 인물들 스스로가 시간의 은혜를 입고, 제 태생으로부터 성격을 부여받아 역동적이다. 소설가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저자거리에 나와 길잃은 모양으로 우왕좌왕하는 역동이 아니라, 나름의 역할을 하고 마중나온 독자에게는 아랑곳하지 않는, 꿋꿋하게 제 집을 찾는 폼이 역동적이다.

송천억의 딸이자 송방울의 손녀인 송해란이 주인공. 커다랗게 양돈업을 하는 부모를 만난 덕에 잘 먹고 잘 입고 잘 마시며 사는 그녀인데 알 수 없는 가슴의 응어리로 처녀를 버리지 못한 채 끙끙 앓고 있다. 그런 그녀는 실은 어머니 오혜숙의 여동생과 종돈장 관리사인 임종훈의 남동생 사이의(실은 조금 헷갈린다, 누구와 누구의 자식이며 그들 부모의 혈연관계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자식이다. 그들 형제 자매의 애증의 다각 관계를 제 태생의 연원으로 삼는 그녀는 시쓰는 교수 기현을 사모하고, 그 기현은 옛 스승 성미희를 사모한다.송해란은 유한마담인 이혼녀 장이 부를 거간꾼으로 하여 사람잡는 또는 사람살리는 선무당을 알게 되고,그 선무당은 해란의 처녀 상실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등장인물이 무어 대수랴 싶다. 그저 봄밤 가슴 헛헛한 상태,그 사방에서 들려오는 수런거림,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꽃잎마냥 한 마리 화사로 승화하는 온전치 못한 마음의 상태만 전달받을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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