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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태스킹은 없다 -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멀티태스킹
데이비드 크렌쇼 지음, 이경아 옮김 / 아롬미디어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Dave Crenshaw, 이경아 역, <멀티태스킹은 없다>, 아롬미디어, 2009.
사회에 나온 지 2년차가 되었다. 어리버리대던 1년차때와는 다르게 일을 제법 한다는 소리도 듣는다. 내가 몸담고 있는 직장은 소위 짬이 될 수록 대접을 받고 일이 적어지지만 보수는 높아지는 그런 공간이다. 겉으로는 동등한 지위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위계질서가 확실한 공간이다. 그래서 막내들이 일을 하는데, 그 양이 만만치가 않다.
오늘은 수요일. 수요일에는 아침에 전체 회의가 있고 오전 중으로 A에 전자문서로 보고를 해야 하고, 오전에 처리해야할 일이 2개, 오후에 3개. 아침에 오면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내나 고민하다가 일단 업무부터 하고 보자는 식으로 죄다 꺼내어놓는다. 그래서 지금도 왼쪽에 파란색 공문철이 2개, 컴퓨터 키보드 옆에 결재판 하나, 그 옆에 책 몇 권이 널부러져 있다. 모두 오늘 중으로 처리해야 할 것들이다. 그와중에 읽은 이 책. 넉놓고 읽은 이 책이 엄청난 효과를 불러왔다. 난 조용히, 그러면서도 신속하게 공문과 책들을 저쪽으로 밀어놓고야 말았다.
사실 나도 멀티태스킹에 능한 줄 알았다.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고, 메신저로 쪽지도 보내고 핸드폰도 확인하고, 앞사람에게 복사를 부탁하면서 전화도 받아내고, 내전화건 옆전화를 끌어받건 내 일이 있더라도 전화가 오면 그것을 먼저 처리하고는 한다. 후다닥. 잔뜩 쌓여있던 일거리들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짜릿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남자들은? 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을까? 와이셔츠를 걷어붙힌채 여러 일거리를 왔다갔다하며 처리할 때 왠지 내가 유능하다고 느끼며, 그 일들을 처리하고 나서는 제법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내가 멀티태스킹이라고 착각했던 스위치태스킹을 재빠르게(결과적으로는 비효율적이었지만) 한 결과이지만 말이다.
로마의 철학자인 푸블릴리우스 시루스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139쪽) 라고 말했다. 정말 맞는 말이다. 주로 행정업무를 처리할 때 옆에 누가 서있을 때가 많다. 나를 그냥 보러온 사람부터, 결재를 맡기 위해, 일의 진행 과정을 물어보기 위해서 등 각각의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온다. 물론 스위치태스킹을 재빠르게 하면서도 이네들의 말을 들어주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바뀌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실제로 조금전에도 나를 찾아온 한 사람을 위해 이어폰을 빼고, 내가 보고 있던 책을 과감히 덮었다. 그런 후에 그에게만 나의 시간과 관심을 온전히 주었다. 그것이 긴 시간은 아니다. 단 1~2분일지언정, 상대가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면 어설픈 스위치태스킹을 하면서 일도 제대로 못하고, 시간도 뺐기고 그러면서도 상대와의 인간적인 관계가 약간은 비틀려버리는(지금 생각해보면 상대나 나나 진심이 아니라고 느끼게되면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동료의 말을 소위 귓등으로 들어버리는 매너없는 행동이었다. 정말 반성하고 있는 중이다.) 전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걱정 따위는 안해도 될 것이다. 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고 협력함으로써 임무를 수행해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일의 결과물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진행되는 과정이 얼마나 효율적인가도 중요하고 특히 그 과정에서 구성원들간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는가의 결과 또한 중요하다. 이 책에는 문장과 숫자를 위,아래에 적는 실험이 있다. 한줄씩 쓰느냐, 한글자씩 위아래를 번갈아가며 쓰느냐. 전자는 일을 하나씩 처리하는 것이고, 후자는 멀티태스킹_엄밀히 말하면 스위치태스킹의 일 처리 방식이다. 과연 어떤것이 효율적일까? 답은 간단하다. 지금 즉시 펜을 들어보자. 지금까지의 자신의 일 처리 방식이 얼마나 비효율적이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