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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베른하르트 슐링크, 김재혁 옮김, <다른 남자>, 이레, 2009
다른 남자, 참 자극적인 제목이다. 문득 영화 ‘아는 여자’의 타이틀이 생각났다. 존재감은 없었지만 그냥 아는 여자에서,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와 같이 이 책 또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통하여 사랑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렇지만 이 책은 사랑으로부터 떠나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 책은 2004년에 <사랑의 도피>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 사랑의 도피. 이 책 <다른 남자>는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를 통하여 거기에서 형성되는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 아니라, 하나같이 사랑으로부터 벗어나고 떠나는 이야기를 다루었기 때문에 사랑의 도피라는 제목이 이해가 된다.
이 책은 6개의 중단편이 합쳐진 단편집인데, 단순히 남녀간의 사랑 문제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사랑이라고 하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남녀간의 사랑만을 떠올릴 수 밖에 없지만, 이 작품에서는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 한 부부와 그의 친구, 가족 등 사랑을 기반으로 하는 관계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특이성을 보인다. 이들 관계들은 상황이나 시대적 배경 등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지만 사랑을 다룬다는 점과 이 사랑으로부터 떠나는 사랑의 도피 문제를 고민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사랑의 도피, 즉 슬프고 안타까운 이야기라는 뜻이다. 본문에 실린 작품들은 나름 흡입력이 있었다.
표제작인 ‘다른 남자’와 더불어 ‘소녀와 도마뱀’, ‘외도’, ‘주유소의 여인’ 등의 작품이 괜찮았다. 오랜 결혼생활을 아내와의 사별로 끝낸 남편에게 의문의 편지 한통이 오는 것으로, 아내에게 또 다른 남자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다른 남자’. 동독과 서독이 하나가 되는 과정에서 이념이나 생활면에서 차이를 보이던 한 부부와 한 남자, 그리고 그들의 딸.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갈등의 골은 깊지는 않지만 스토리 전개는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그 중에서 ‘소녀와 도마뱀’이라는 작품이 제일 좋았다. 판사였던 아버지(베른하르트 슐링크도 법대 교수이자 판사이다)가 몰락한 와중에서도 한 그림을 끝까지 지켰고, 그것을 나에게 준 단순한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왜 그 그림을 소중하게 생각했고, 그 그림에는 어떠한 비밀이 있는지를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찾아내고 알아내는 과정이 제법 흥미로웠다. 어쩌면 허무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 결말로 글을 맺지만, 그것이 이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뜨린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소설의 여운을 조성함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독자로 하여금 문제의식을 갖게 하고, 그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을 구구절절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친절한 작품에 비해 선호한다. 요즘 이슈인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의 작가의 작품이어서가 아니라, 이 자체만으로도 의미있고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