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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종교, 그 위험한 관계에 대하여 - 다원주의 사회와 시민교양
오스 기니스 지음, 홍병룡 옮김 / 아바서원 / 2026년 5월
평점 :
[도서협찬]
보통의 사람들은 선택지가 3개를 넘어가면 선택을 하기 어려워한다. 아이들을 데리고 편의점에 가서 "원하는 것을 골라 보렴!"이라고 말하면 대부분 좋아하지만 선뜻 무엇 하나를 고르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행복한 고민이다. 그러나 만약에 편의점에 가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하나 고른 다음, 나머지 물건들을 다 버려야 한다면? 그리고 그 선택을 다른 사람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면? 이것은 단순히 선택의 문제를 넘어선 생존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명>이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오스 기니스의 정치와 종교의 관계에 대한 논쟁적인 책이다. 다원주의 사회에 필요한 '시민교양'(civility)을 미국 수정헌법 제1조의 정신을 회복하고 재정립하기 위한 '윌리엄스버그 헌장'의 정신을 기초로 설명한다. 아바서원에서 책을 역간하며 선거 시즌에 맞게 표지를 디자인해서인지 선거에 대한 이야기로 추측을 했는데, 일단 원저는 2008년 출간이어서 놀랐고, 그 내용이 지금 우리나라에 너무 적절해서 두 번 놀랐다.
서두에서 편의점 비유를 들었는데, 저자가 말하는 오늘의(책의 의도에서는 21세기 초반 미국의) 위기는 다양성 자체가 아니라 다양성을 다루는 능력의 위기라고 진단한다. 강영안 교수의 한국어판 서문에서와 같이 '진짜 문제는 차이를 다루는 방식이 붕괴'한 것이다. 테제와 안티테제의 갈등 상황을 통해 새로운 테제가 창출되는 변증법의 기본 법칙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토론다운 토론을 본 적이 언제인가 싶을 정도다. 대화를 이야기하지만 귀를 닫고 입만 열려 있는 꼴이다. 21세기 초반에도 이미 이러한 흐름이 미국에서는 진행되어왔던 모양이다. 1984년부터 미국에서 생활한 '이방인' 기니스의 시선에서 제시한 해결책은 바로 '시민교양'(civility)이다.
그의 주장에서 몇 가지 충격적이고 신선했던 것은 다음 두 가지이다.
첫째, 민주주의보다 공화주의를 앞세웠다는 것이다. 공화정이 민주정보다 상위 개념임에는 분명하지만, 우리나라 헌법 제1조 제1항의 내용과 같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언급에서도 '민주'가 '공화'에 우선하기에 사실 이런 류의 생각은 너무도 신선하다못해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한편, 민주주의가 실현되기 위한 국가의 형태가 공화국(왕이 없는 정부를 채택하는 국가)임을 생각해 볼 때, 공화국이라는 틀이 가지고 있는 중요성을 다소 간과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우리나라도 피로도 높은 선거를 몇 번 치른 뒤에 1987년 6월 이후 수정되지 않은 헌법에 대한 논의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 것은 이러한 주장과 같은 맥락에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둘째, '언약적 다원주의'(Covenant Pluralism)이다.
일단 용어도 생소할 뿐더러, 언약이라는 종교적 개념을 일반 정치에 접목시킨 것이 신선했다. 여기서 핵심은 정치적 논의가 이루어지는 광장의 성격인데, 종교가 국가를 지배하는 '신성한 공적 광장'과 종교를 완전히 사적 영역으로 밀어낸 세속주의의 '벌거벗은 공적 광장' 모두를 양극단의 처사로 비판하고, 모든 사람이 자신의 신앙와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참여하되, 동일한 자유를 타인에게도 보장하는 공적 광장으로서의 '언약적 다원주의'를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정치와 종교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공식적인 기관으로서의 행위 주체인 '국가와 교회(또는 타 종교단체)'의 유착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치와 종교'의 관계를 '국가와 교회'의 관계로 해석하는 문제는 오늘 우리 사회에도 깊이 반성해 보아야할 문제라 생각한다.
물론 공동선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현 시점에서 '언약적'인 언급이 가능한지는 미지수다. 미국 건국의 역사를 깊이 있게 다루긴 했지만, 미국이라는 '세속' 국가의 과오에 대한 시각은 배제하고, 미국의 상징성을 지나치게 다루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어쩌면 여전히 미국이 기독교를 역사적, 문화적 중심으로 삼고 있는 나라이기에 가능한 접근이며, 우리나라의 상황과는 맞지 않는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주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자신이 가진 생각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평화롭게'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저자는 두 가지 길이 있다고 제시한다. 하나는 나사렛 예수의 길, 다른 하나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길이다. 다른 길은 없다. 회색지대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베드로처럼 물어야 한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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