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씨 - 부마민주항쟁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다드래기 지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 / 창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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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을 쓰기가 쉽지 않다.
역사의 수많은 장면이 그렇지만 우리의 현대사는 특히 피와 눈물 없이는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부분이다. 불과 40여년 전의 일상이 그러했으리라고는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상상이나 하겠는가. 이 책을 보고 “우와! 만화책이네. 재미있겠다.”라고 말하는 일곱살 짜리 첫째에게 나는 아직 아무 말도 해 줄 수 없었다. 해야 할 말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아니,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이 책은 부마민주항쟁의 며칠간을 여러 소시민들의 관점에서 담아낸 이야기이다. 만화라는 장르가 가진 매력은 이런 암울하고 어두운 이야기들을 찬찬히 드러내면서도 한편으로는 따뜻함과 희망을 숨기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아, 물론 이 주제가 5.18이 아니라 10.16이라서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시대 의식이란 참으로 특별한 것이다. 영웅은 시련의 시기에 만들어지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그들이 살아내고 싶었던 삶이란 그런 영웅적인 것도, 시련에 시련을 넘어야 하는 굴곡진 인생도 아니었으리라. 그들이 시련을 넘어서야 했던 이유는 단 하나,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누리는 자유라는 것이 별 대단한게 아닌 것 같지만, 그것이 얻어지기까지는 참으로 대단한 일들을 많이 겪어야만 했던 이유다.

역사를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내가 참 비겁하게 여겨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나는 얼마나 지금 세대의 눈물과 피흘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말이다. ‘회복’이라는 용어는 아직 우리 사회에서 그다지 통용되고 있지 못하는 단어 같아서 참으로 마음 아프다. 책 후반부에 “그래 한다 해서 내 40년 세월이... 달라지겠나?”라고 말하는 회고 부분에서는 어떠한 말도 해 줄 자격이 내게는 없음을 깨닫게 된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잘못한 것을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관계 회복의 기본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그러한 부분들을 잘 짚어내고, 문제를 제기하고, 회복을 추구할 수 있는 의식이 있는, 힘이 있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그러한 의식과 힘을 굳이 보이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는 것 아닐까. 그런 날이 오긴 올까 싶다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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