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왜 이러세요? - 욥이 물었다
강정훈 지음 / 두란노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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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메시지가 위로와 능력이 있는 것은 그분이 전지전능함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그렇지 않은가? 모든 것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부러움이 주어질 수는 있으되 위로와 용기는 얻기 어렵다. 오히려 가지지 못함에 대한 상실감만 생길 뿐. 어떤 강의를 들으면서 우스갯소리로 “예수님이 결혼, 출산, 육아는 해보지 않으셨잖아요?!” 라는 말을 들었던 것이 기억난다.

오히려 예수님의 삶이 진정한 위로와 소망이 되는 것은 그분이 참으로 우리의 아픔을 짊어지고,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 53:5)

여기 또 하나의 위로가 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냈다. 그 과정에서 위로 아닌 질책도 받았다. 이유를 알수 없는, 견딜 수 없는 고난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원망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인정하면 할수록, 그 하나님이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런 고난을 주시는지에 대해 이해할수도, 설명할수도 없었다.

그런 저자가 수십년이 지난 지금 담담하게 그 고난에 대해 되짚어본다. 자신의 감정이 아니라 고난의 대명사인 ‘욥’을 다루면서 말이다. 욥기를 읽는 과정은 쉽지 않다. 서사도 길고, 대화의 내용 자체가 논증으로 가득차있는지라 읽다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고통당하는 사람 ‘욥’의 입장에서 저자가 그 대화의 이면에 감추어진 감정들을 잘 표현하여 그가 겪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 그 가운데서 바라보아야 할 하나님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이해를 넘어서서 욥이라는 인간 자체를 더 이해하게 된다.

이런 고난이 내게 닥친다는 생각은 상상하기도 싫다.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믿음이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얼마나 그 마음이 상하고 힘들었을까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절절하면서도 담담한 고백을 읽으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다시금 바라보게 된다. 이런 고통 중에서도, 이 고통을 넘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믿음의 고백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야말로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더불어 위로와 권면이 그 어느때보다 필요한 이 시기에, 어설픈 율법과 질책이 아닌,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람을 살리고 세우는 대화의 자세를 배워야 하겠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고통은 동굴이 아닌 터널이라는 표현이 참으로 위로가 된다. 누구나 겪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은 어려움으로 끝이 아니다. 지금의 고통으로 겪는 눈물이 자양분이 되어 열매를 맺을 것이다. 내 길 가장 잘 아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이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42:5)

#두란노 #두포터11기 #강정훈 #나를복음으로살게한문장 #내게왜이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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