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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 익명 게시판 블라인드 앱을 달구는 핫이슈가 있다. 4시가 되면 일할 사람 다 사라지고 불쌍한 미혼, 늙은이들만 남아서 6시까지 사무실을 지킨다는. 몇 년 전 공공기관을 시작으로 저연령 자녀를 둔 직원들이 3년 한도 내에서 하루 2시간 유상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한 육아시간제도가 확대됐다. 나도 7세 아이를 키우며 육아시간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육아시간을 둘러싼 분쟁이 패싸움을 방불케 하는지라 영 불편하다. 블라인드 앱 올라온 글 몇 개를 추려본다. “애 키우는 걸로 특권의식 가지면서 배려 강요하지 마라.” “육시(육아시간) 빌런들 업무 대행한테 해주는 거 뭐 있냐” “종족 번식하고 공짜 휴가 개꿀.”


  그놈의 꿀. 매일 두 시간씩 보장받는 육아시간 속에 스며있었을 꿀 같은 달콤함을 찾아본다. 회사에선 줄어든 근무시간을 반영하지 않은, 일 인분의 업무를 해낸다. 눈곱 떼고 옷만 입힌 아이를 9시에 어린이집에 내려놓고는 득달같이 달려 10시까지 회사에 출근하고, 오후 5시면 바람처럼 사무실을 뛰쳐나가 원에 제일 늦게까지 남아 나를 기다리는 아이를 데려온다. 육아시간을 쓰고 나갈 때마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먼저 가보겠습니다.” 인사하면서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고, 그들이 뒤에서 내 욕을 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이 모든 행위 속에 꿀로 비견되는 달콤함이 있을 리 만무한데. 블라인드에서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나는 꿀 빠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출산 때도 그랬다. 눈치 볼 줄 아는, 이른바 개념찬 출산휴가 사용자가 되고 싶었다. 휴직 들어가기 전날 아침 회의실에 아메리카노와 카페라떼를 7.5리터 들이 워터저그 두 통에 가득 채워 세팅했다. 그 옆에는 수제 약과 세트를 정갈하게 담아냈다. 내 공석을 메우게 된 직원들에게 고맙고 송구하다는 멘트, 복귀하면 폐가 되지 않도록 빨리 적응하겠다는 각오를 담은 문구를 적어두었다. 이쯤 쓰고 보니 나 역시 예비 휴직자들에겐 무척 불편한 존재였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과 임신, 출산을 계획하던 몇몇 직원들이 이렇게 준비하려면 얼마 들어요?” 쭈뼛쭈뼛 묻던 게 떠오른다. 그날의 커피와 약과가 그들에게는 향기롭고 달지 않았을 것이다.

 

  육아시간, 출산휴가, 자녀돌봄휴가. 이런 제도가 생길 때마다 구걸하듯 엎드려 두 손을 공손히 받쳐 든 나로 인해 이런 세상이 온 것일까. 한 푼 두 푼 동전이 떨어지던 깡통을 차버리고 떨쳐 일어난 사람들이 항상 더 나은 세상을 만들었다. 적선이 아니라 당연하게 누려야 할 것을 달라고 투쟁했던 사람이 만든 오늘에 나는 무임승차 하고 있다. 세상이라는 호수에 조약돌 한번 던져보지 못한, 물결의 파문조차 두려워하는 겁쟁이로서 사십 줄에 접어들고 있으니 오늘 상신한 육아시간 복무 결재는 그들의 피와 땀에 빚을 진 것이랄 수 밖에.

 

  하지만 오늘은 블라인드에 불편한 글 한 줄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남녀노소, 비혼, 기혼 편을 갈라 어느 쪽이 상팔자인지 싸우는 게 누구를 위한 일인지 물어보고 싶다. 출산은 장려하되, 인력과 비용은 유지하면서 똑같은 양과 질의 생산과 서비스를 취하려는 빅브라더가 제일 나쁘다고 외치고 싶다. 우리끼리의 싸움을 지켜보면서 진짜 꿀단지를 끌어안고 있는 게 누구인지 보라고 분노하고 싶다. 그 분노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일침을 놓고 싶다. 바라건대 우리 딸이 누빌 세상은 진짜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 되기를 원한다. 흐뭇한 광경을 바라보며 그 어떤 피해의식과 어깃장도 없이, 축복만을 담아, "세상 좋아졌네."라고 말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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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 2025-10-15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육시(육아시간) 빌런들 업무 대행한테 해주는 거 뭐 있냐” “종족 번식하고 공짜 휴가 개꿀.” 이렇게 빈정대는 직원이야말로 ‘찐 빌런‘입니다.
유아휴직 , 당당하게 쓰세요. 당신의 유아 휴직의 주인공인 차세대들은 육아휴직을 비아냥대는 ‘찐 빌런‘들의 국민연금이 지향(연대 보장)하는 그들의 미래 사회보장의 주인공들이니까요.
육아휴직! 정책적 육아복지, 당당하게 쿨하게 누리자. 당신은 분명 다음 육아 휴직자를 위해 멋지게 배려하고 함께하는 선한 영향력의 가치가 장착되어 있을테니까 아자아자 파이팅!

hido143 2025-10-15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10 to 4 time, 미래 세대에겐 ‘안전애착의 stop과 starting‘이다.

망뫼산옥란 2025-10-15 1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머니의 마음이 전하는 울림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는 당신의 글을 읽고 가슴 깊은 곳에 짠한 울림으로 다가와 가슴에 두근거림이 요동치는 파도처럼 한동안 잠잠해 질것 같지가 않네요
말로만 장려하는 아이 많이 낳기 출산 장려정책이 좀 더 튼튼한 안전망이 되어 직장 여성들이 어깨를 당당하게 펴고 커리어 활동을 자유롭게 하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갯내음을 더없이 좋아하는.......모성
 
먹어 보면 알지 - 호랑수박의 전설 웅진 모두의 그림책 74
이지은 지음 / 웅진주니어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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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팥빙수의 전설』을 읽어줬더니, 한 백 번쯤 더 읽어달라 보채던 3살 아이는 유튜브를 더 사랑하는 미운 7살이 되었다. 새롭게 나온 전설 시리즈를 반가운 마음으로 주문하는 건 책보다 태블릿을 더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서라기보다 엄마인 나의 헛헛한 마음을 채우기 위함일까.


  하지만 몇 번이나 읽었던 기억이 나는 걸까. 아이는 눈 호랑이를 보며 갸웃거리더니, 할머니가 나오는 장면에서 대번에 "팥 할머니!" 하며 환호한다. 웬일로 선선히 내 옆에 붙어앉아 처음부터 끝까지 책 읽는 소리를 집중해서 듣는다. 


  이제 한글을 읽는 아이는 동물들이 홀린 듯 수박을 찾는 장면에서부터 깔깔댄다. 먹지 말라는 수박을 먹은 호랑이를 보며, "너는 먹을 거야?" 하니 절대 안 먹겠단다. 더욱이 호랑이로 변한 수박이라니 입에도 대지 않겠다나. 『먹어보면 알지』의 과감한 정서와는 안 맞게 조심스런 아이를 보며 '그래, 너도 이제 컸구나.' 싶다. 짜식.


  전설 시리즈와 함께 훌쩍 성장한 아이들을 위해서일까? 작가의 이번 책 후반부에서는 7-8살쯤 어린이들이 볼만한 여덟 칸 만화 네 페이지로 마무리된다. 한 번도 먹어본 적 없지만 수박을 먹어보고 싶었다는 뱀, 수박이 먹고 싶지 않았지만 남들이 뛰니까 따라 뛰었다는 곰, 갑자기 나타난 팥 할멈에 의심을 제기하는 너구리, 토끼 조상들이 호랑이에게 너무 많이 잡아먹힌 까닭에 호랑이 수박을 한 입 먹고 싶었다는 토끼, 끝까지 존재를 감춘 재 미스터리한 존재로 나오는 둘 머리 용! 세상 다양한 사람들을 닮은 캐릭터들의 모습에서 다소 철학적인 느낌마저 든다.


  책의 끝 표지가 나올 때까지 샅샅이 읽다 보면 '둘 머리 용'의 존재에 강한 호기심이 든다. 아이와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으며 '둘 머리 용' 그림을 찾았지만, 결국 실패했다. 네이버에 읽어본 사람들의 후기를 찾거나, 챗GPT를 써본다면 용이 몇 페이지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찾을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전설 시리즈를 기다리고, 구태여 종이책으로 사보는 사람은 응당 그러지 말아야 할 것만 같다. 마블 유니버스, DC 유니버스, 엑스맨 유니버스 별별 유니버스를 다 기다려본 사람으로서 아이와 함께 기다릴 동화책 유니버스가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전설 시리즈를 보는 아이들처럼 성장하면서 유니버스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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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무법자
크리스 휘타커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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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We always begin no matter what>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 "You only live once."와 같은 문구가 시대를 관통하는 경구처럼 울려 퍼진다. SNS엔 지난 주말 강남 오마카세에 다녀온 친구가 올린 사진이,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호캉스에 호텔 조식에 호텔 수영장까지 풀코스로 다녀온 친구의 포스트가 넘쳐난다. 타인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삶은 어떤 포장으로 감싸보아도 구질구질해 보인다. 하지만 거의 모든 캐릭터가 스스로의 삶이 무너져내릴지언정, 자신 아닌 누군가를 위한 지독한 희생을 택하고야 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2025년 최고의 범죄 드라마라는 수식어를 달기에는 요즘 세상의 '추구미'와는 영 맞지 않는다. 책의 초반 더치스라는 13살의 소녀가 6살 남동생 로빈을 극진히 보살피는 설정에서 '너무 신파 아닌가?' 생각했다. 광고만 믿고 책을 사서 실패한 게 몇 번째인지 머릿속에서 헤아려보다가 이내 책의 뒤표지까지 쉬지 않고 읽었다. 그 어떤 통속적인 신파라 해도 좋으니, 단지 해피엔딩만을 강렬하게 바라며 끝장으로 달려갔던 유일한 책이다.

 

“버티는 거지 뭐. 그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하는 거잖아.”(342쪽) 이 문장이야말로 책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이다. 등장인물 중에 멀쩡한 사람이 없다. 책 속에 자주 나오는 거친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다 좆같이 꼬이고 병들었다. 결핍과 책임감으로 동심이란 건 일찍이 반납한 주인공 소녀 더치스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동생이 사고로 떠난 후 엄마의 자살로 가정이 산산이 파괴된 스타, 어린아이를 죽게 한 교통사고 가해자로서 15살부터 교도소에 복역한 빈센트, 젊은 나이에 파킨슨병으로 투병하며 스타의 죽음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결국 사람을 죽이게 되는 워크 서장, 어두운 분위기를 시종일관 풍기며 스타를 살해한 것으로 의심받는 다크까지, 어느 누구 하나 안정적이고 평범한 범주의 인생은 못된다. 하지만 그 모두는 공통적으로 사랑하는 이를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의 삶을 내어주고 불행을 짊어진다. 이름부터 암울한 그 남자 다크도 마지막에 가서는 병상에서 기계의 도움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딸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맞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버티는 삶. 사랑은 잔혹하다.


7세 아이를 둔 대한민국 워킹맘 중에 사랑의 잔혹함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직장에서 퇴근하여 집으로 출근하는 사이클을 쳇바퀴처럼 굴려야 겨우 유지되는 일상. 그 와중에 아이가 아프면 직장에 시댁에 아쉬운 소리를 하며 휴가를 쓰고 도움을 청해야 하고. 내가 아프면 회사 점심시간에 밥도 거르고 병원에 가서 30분짜리 링거를 맞고 와서 정신을 차려보는. 일과 가정을 양립한다는 것은 나의 전부를 갈아 넣는 일이라는 걸 그전엔 몰랐다. 미혼 시절 즐겼던 스쿠버다이빙, 일 년에 한두 번 가던 해외여행, 원가족(친정)의 대소사에 망설임 없이 지갑을 열던 여유, 주말에 깨우는 사람 없는 집에서 느지막이 일어나 파스타를 해먹던 소소한 행복. 이 모든 것들의 전생의 일인 양 멀게 느껴진다. 지금의 일상은 조금의 틈과 여유를 허락하지 않을 듯 서슬 퍼렀다. 이 책 한 권을 읽고 리뷰를 쓰고자 나는 남편과 아이가 모두 잠든 새벽에야 고양이처럼 살며시 침대를 빠져나오는 것이다. 책 한 권을 위해 자다 말고 눈 비비고 나오는 내 모습에 이른바 '현타'가 온다.


책 속의 인물들이 이렇듯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미쳐 날뛰는 통에(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나 또한 인생 최고의 사랑을 떠올릴 수 밖에. 책 읽고 노트북 두드리는 지금도 눈만 돌리면 그 아이가 끼적이고 그린 것들이 한 면을 다 차지한 벽이 보이는데. 나 역시도 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고야 말거라는 생각에 이르자 책상에 몸을 끌고 올 때의 현타는 사라진다. 나에게도 사랑의 포악함과 광기가 차고 넘칠 거라는 생각에 한기가 들면서, 문득 강렬하게 바로 옆방에 새근거리며 자고 있는 나의 무법자가 보고 싶다.


 

"잠든 집. 그 이웃들 지붕을 한번 쳐다본다. 일어나서 일하러 가고 비용을 지불하고. 휴가를 떠나고. 연금과 학부모교사연합회 모임, 다음에 무슨 차를 살지, 크리스마스를 어디서 보낼지 걱정하는 사람들"(387쪽). 재미없고 시시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더치스가 바라던 평범성의 상징이다. 나는 이 시시하고 평범한 것들을 딸에게 주기 위해 기꺼이 삐걱거리며 견딜 것임을 안다. 때로는 쉬고 싶어 죽겠다는 말이 절로 나오고, 나 좀 내버려둬라고 세상에 발악을 하고 싶지만, 나는 언제나 다시 시작한다. 이 책의 영어 원제《We begin at the end》라는 표현을 고쳐보자면 We always begin no matter what. 정도로 바꿀 수 있을까. 지쳐서 주저앉지만 늘 다시 일어나 시작하고 나아가는 것. 더치스처럼 앞뒤 재지 않고, 스타처럼 내 몸을 버려가며, 다크처럼 흉악하게, 마사처럼 치밀하게, 워크처럼 꾸준하게 나는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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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레슨 인 케미스트리 1~2 - 전2권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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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과 땅이 딱 붙어 죄다 망하길 바라던 숱한 순간을 떠올리며 책을 읽었다. 


  고등 학교 시절 문과와 이과 사이에서 진로를 정할 때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는가. 점을 봤다.

나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가운을 입고 고글을 쓰고 실험을 하고 연구를 하고 세상의 미지를 밝히고 싶었다. 재능도 있었던 편이다. 나중에 문과로 진학하고 나서 치른 전교 과학경시대회에서 문이과 통틀어 1등을 했으니까. 흠, '재능이 있었던 편'이라는 표현은 아무래도 내숭같다. 나의 과학적 사고 능력은 빛이 났다. 그런데 이과를 안 갔다. 문과를 갔다.


  누가 봐도 비합리적인 선택에 대한 변명을 해보겠다. 탁월한 과학 성적에 반해 수학 성적이 모자랐다. 그 시절 여고의 문과와 이과 비율은 8:2 정도 됐고(2022년의 여고도 그런지 모르겠다), 문이과 사이에서 고민하는 여학생에겐 문과를 권하는 분위기였다. 여자는 문과적 성향이 강하므로, 그곳에서 더 두각을 보일 거라는 조언이 따라왔다. 갈팡질팡하는 맘에 점집에 갔고, '너는 사주에 물()이 없다. 사주에 물(水)은 돈, 숫자를 의미하는데, 너는 그게 없으니 문과를 가야겠다.'는 말에 안전한 선택을 하기로 했다.


  그 후의 삶은 대체로 그런 식이었다. 유순한 아이, 평범함 선택. 틀을 박차고 나가길 응원하는 목소리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형아 지금이라도 이과로 변경해야지, 과학경시대회에서 대상을 받았잖아.

지형아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목표를 정해봐, 너 전교 1등이잖아.

지형아 고시를 준비해 봐, 외교관이 되고 싶어 했잖아.

지형아 대학원을 가봐, 학부시절 너의 리포트는 최고였어.

지형아 로스쿨을 가봐, 너의 성향과 잘 맞을 거야.

지형아, 젠장 듣고 있어? 시도라도 해보라니까!

수많은 가능성으로부터의 호출을 뒤로하고 쉬운 길을 갔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자 이런 소리를 들었다.

지형아, 정민이가 문창과를 가서 시나리오를 쓴대.

지형아, 순철이가 삼수를 하더니 의대를 갔대.

지형아, 수현이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영국에 취업했대.

지형아, 너는 공공기관에 다닌다고 했지? 하하하, 거기도 훌륭하지.

나는 그만 타인의 눈부신 성공에 눈멀고 말았다. 그리고 종종 생각한다. 세상이 끝났으면 좋겠다. 엘리자베스가 물이 가득 찬 채석장에 뛰어들고, 바닥에 발이 닿는 순간을 상상한다. 그래, 엘리자베스. 나라면 그 바닥에서 안 나올 거야.


  다른 사람이나 환경을 탓할 순 없다. 나는 거친 60년대에 사는 게 아니니까. 엘리자베스같은 선구자들이 일궈낸 투쟁의 역사를 거쳐 이름도 눈부신 뉴밀레니엄 시대를 살았으니까. 내 앞을 막는 사람은 없었다. 굳이 방해물을 찾아내자면 통계라는 이름을 뒤집어쓴 통념이 있었다. 여자는 문과에 많이 가잖아. 여자에게 어울리는 직종이 있지. 환영해, 여기는 여자가 근무하기 좋은 직장이야. (엄밀히 따지면 그 직장에 다니는 아내를 둔 남자에게 이득이 더 많은 직장이라고 생각한다. 정시퇴근, 육아휴직 등으로 가정에 전념할 시간이 많아진 아내 덕에, 남편은 사회생활을 하기 좋으니까.) 안정적인 중산층이 되었다. 그리고 딸을 낳았다. 나는 딸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생각한다. 

'한지형의 삶을 이 아이가 이어가길 바라는가?'

틀렸다. 소름 끼치게 아니다. 내 딸이 안전한 선택만을 하다 세상 다 끝장나라는 저주를 품게 되기를 결코 바라지 않는다. 나는 이제부터라도 엘리자베스 조트가 되기로 한다.


  "니 왜 디비 쪼냐?(=너 뒤늦게 왜그러냐?)"

우리 엄마가 그랬다. 회사 다니며, 아이를 돌보며, 기어이 시간을 쪼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나를 보고. 그 시간에 육아에 집중하거나 체력 회복을 위해 쉬라고 했다. 읽고 쓰는 거 학생 때 다 해본거 아니냐고. 그 와중에 문학 공모에 간간이 당선이 되기도 했다. 어라 이게 되네. 내안의 엘리자베스는 말한다. "될 줄 몰랐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은 속이지 마. 네가 할 수 있다는 걸 단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어." 나는 더 열심히 "디비 쪼아" 보기로 한다. 나는 현재진행형의 promising young woman이다. 내가 그렇게 정했다.


  오늘도 8시쯤 회사에 와서 책을 펼친다. 9시 업무 시작 전 한 시간. 내가 오롯이 나를 위해 바치는 시간이다. 신문과 책을 읽고 원고를 정리하고 커피를 내린다. 많은 양을 내린 날은 사무실 직원들에게 나눠준다. 베이킹을 취미로 둔 역자를 보고 사람들이 품는 오해를 나도 받는다. "한 대리는 참 가정적이지. 여기까지 와서 살림을 다하고."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또는 길거리에서 부동산 광고 홍보물로 수시로 나눠주는 공짜 수세미를 아주 대단한 적선인 양 나에게 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때마다 허허실실 웃었는데, 이제 이렇게 말하기를 벼르고 있다.

  "집에서 설거지 안 하는데요. 과장님이나 그 수세미 집에 가서 써보세요."


  나의 영어 이름은 크리스티나. 미국 의학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의 진취적인 동양 여성 캐릭터에서 따왔다. 내가 좋아하는 그녀의 대사로는 "나는 똑똑하다고. 예쁘다고 하지 말고 내 뇌를 칭찬해란 말이야."가 있다. 크리스티나라는 평범한 이름은 사실 그 어마어마한 멋짐을 추앙하며 지은 이름이다.

출처 : 그레이 아나토미 시즌7 11화


  요새는 유치원만 가도 영어 수업에서 쓸 영어 이름을 지어와라고 한다는데, 내 딸에게도 영어 이름을 지어줘야 한다면 엘리자베스라고 하겠다. 크리스티나처럼 평범한 이름이지만, 그 안에는 만 가지 열망과 힘이 들어있을지어다. "엄마는 내 이름 왜 이렇게 평범하게 지었어?"라고 물어보면 폼 나게 <레슨인케미스트리>를 줄 것이다. 그리고 이 기울어진 세상에서도 자신의 길을 찾아내는 딸의 발걸음을 북돋아줄 것이다. 엘리자베스가 의대생이 된 마저리 필리스에게 그랬듯이 말이다.

"우리는 당신의 성공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2권 236쪽)


#레슨인케미스트리

#리뷰 

#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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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16
구병모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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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트레스 안 받는 빵 좀 주이소.

  몇 년 전 빵집에서 빵을 고르는데, 문득 나타난 할머니가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스트레스 안 받는 빵을 달라고. 나와 눈이 마주친 사장은 비슷한 생각을 했으리라. 뭐 이런 진상이 다 있어. 사장은 기지를 발휘하여 "카스텔라 드세요. 부드러워서 씹기 편하니까 스트레스도 안 받을 거예요."라고 했다. 할머니는 구시렁거리며 카스텔라를 집어 들어 값을 치르고 사라졌다. 그 할머니에게 위저드 베이커리를 알려주고 싶다. '스트레스 프리 마카롱' 정도는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마법의 힘이 스트레스를 확실히 날려줄 텐데. 대신 마법을 이용한 데에 따르는 책임도 분명히 져야겠지. 하지만 삶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파는 빵을 사용했을 때와는 달리, 현실에서는 선택과 책임이 명확한 짝을 이루지 않을 때가 많다. 그냥 거기 있기만 했다는 주인공의 반복되는 고백처럼(32쪽, 36쪽, 107쪽), 상당수의 사건은, 특히 불행은 그저 내가 그 상황에 놓여있었기 때문에 뺑소니 사고처럼 덮쳐왔을 것이다. 선택이란 말은 그래서 너무 가혹하다. 더욱이 이 책의 주요 독자인 청소년들은 흔한 법적 행위조차 제한받는다. 그 아이들에게 선택지라고 할만한 게 있나. 어른이라고 해서 다를까. 나도 맨날 내 선택에 발이 걸린다. 당장 좋은 선택으로 보이는 것이 반드시 선한 결과를 낳지 않으며, 나쁜 선택이라고 모두가 말렸던 길 끝에 행복이 숨어있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선택 너머에 대한 이야기로 보았다. 옳은 선택을 했음에도, 잘못된 선택을 했음에도, 선택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음에도, 그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뛰어넘어, 박차를 가하는 삶. 그 태도를 응원하는 이야기로 다가왔다. 소설의 말미에 주인공은 파스타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충분히 불행한 인생이었다. 친어머니는 주인공을 청량리역에 버리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새어머니는 주인공의 피를 말리며 편히 숨 쉴 여지를 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동 성범죄자로 밝혀졌고, 그 피해자는 새어머니의 딸이었다. 이쯤 되면 삶에서 선택할 만한 것이 없었던 주인공이 폐인이 되어 방구석에 뒹구는 것을 선택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주인공은 말더듬증을 고치고 무려 일을 한다. 선택하지 않았지만 감내해야했던 불행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이제 겨우 32개월의 세월을 살아낸 나의 여린 딸아이에게 해줄 필요가 없기를 바라지만, 그럼에도 해주고 싶은 말이 그런 것이다.

  "인생에는 네가 선택하지 않았는데도 닥치는 불행이 있어. 그때 삶을 놓아버리는 게 아니라, "다시 한 번 더!"를 외치며 일어나는 아이가 되기를 바란단다."


  지금은 <아기곰의 봄나들이>, <개굴개굴 약오르지> 같은 책들을 읽어주지만, 언젠가는 이 거친 책을 권하는 날이 올 것이다. 내 아이가 이 책을 읽고 소화할 정도가 되려면 십 년은 더 있어야 할 것이다. 초판 작가의 말과 개정판 작가의 말 사이에도 십여 년의 틈이 있다. 책으로는 불과 한쪽 차이지만, 두 가지 버전의 작가의 말에서 묻어나는 온도차는 제법 크다. 2009년의 작가보다, 2022년의 작가에게서 훨씬 따뜻함을 느꼈다면 나의 착각일까. 십여 년을 지나 아이와 함께 이 책을 볼 때쯤에는 내가 책에서 오늘 뽑아올린 교훈인 '척박한 삶과 그것을 이겨내는 삶의 강인한 자세'에서 한걸음 나아간 따뜻한 감상을 아이와 나누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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