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익명 게시판 블라인드 앱을 달구는 핫이슈가 있다. 4시가 되면 일할 사람 다 사라지고 불쌍한 미혼, 늙은이들만 남아서 6시까지 사무실을 지킨다는. 몇 년 전 공공기관을 시작으로 저연령 자녀를 둔 직원들이 3년 한도 내에서 하루 2시간 유상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한 “육아시간” 제도가 확대됐다. 나도 7세 아이를 키우며 육아시간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육아시간을 둘러싼 분쟁이 패싸움을 방불케 하는지라 영 불편하다. 블라인드 앱 올라온 글 몇 개를 추려본다. “애 키우는 걸로 특권의식 가지면서 배려 강요하지 마라.” “육시(육아시간) 빌런들 업무 대행한테 해주는 거 뭐 있냐” “종족 번식하고 공짜 휴가 개꿀.”
그놈의 꿀. 매일 두 시간씩 보장받는 육아시간 속에 스며있었을 꿀 같은 달콤함을 찾아본다. 회사에선 줄어든 근무시간을 반영하지 않은, 일 인분의 업무를 해낸다. 눈곱 떼고 옷만 입힌 아이를 9시에 어린이집에 내려놓고는 득달같이 달려 10시까지 회사에 출근하고, 오후 5시면 바람처럼 사무실을 뛰쳐나가 원에 제일 늦게까지 남아 나를 기다리는 아이를 데려온다. 육아시간을 쓰고 나갈 때마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먼저 가보겠습니다.” 인사하면서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고, 그들이 뒤에서 내 욕을 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이 모든 행위 속에 꿀로 비견되는 달콤함이 있을 리 만무한데. 블라인드에서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나는 꿀 빠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출산 때도 그랬다. 눈치 볼 줄 아는, 이른바 개념찬 출산휴가 사용자가 되고 싶었다. 휴직 들어가기 전날 아침 회의실에 아메리카노와 카페라떼를 7.5리터 들이 워터저그 두 통에 가득 채워 세팅했다. 그 옆에는 수제 약과 세트를 정갈하게 담아냈다. 내 공석을 메우게 된 직원들에게 고맙고 송구하다는 멘트, 복귀하면 폐가 되지 않도록 빨리 적응하겠다는 각오를 담은 문구를 적어두었다. 이쯤 쓰고 보니 나 역시 예비 휴직자들에겐 무척 불편한 존재였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과 임신, 출산을 계획하던 몇몇 직원들이 “이렇게 준비하려면 얼마 들어요?” 쭈뼛쭈뼛 묻던 게 떠오른다. 그날의 커피와 약과가 그들에게는 향기롭고 달지 않았을 것이다.
육아시간, 출산휴가, 자녀돌봄휴가. 이런 제도가 생길 때마다 구걸하듯 엎드려 두 손을 공손히 받쳐 든 나로 인해 이런 세상이 온 것일까. 한 푼 두 푼 동전이 떨어지던 깡통을 차버리고 떨쳐 일어난 사람들이 항상 더 나은 세상을 만들었다. 적선이 아니라 당연하게 누려야 할 것을 달라고 투쟁했던 사람이 만든 오늘에 나는 무임승차 하고 있다. 세상이라는 호수에 조약돌 한번 던져보지 못한, 물결의 파문조차 두려워하는 겁쟁이로서 사십 줄에 접어들고 있으니 오늘 상신한 육아시간 복무 결재는 그들의 피와 땀에 빚을 진 것이랄 수 밖에.
하지만 오늘은 블라인드에 불편한 글 한 줄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남녀노소, 비혼, 기혼 편을 갈라 어느 쪽이 상팔자인지 싸우는 게 누구를 위한 일인지 물어보고 싶다. 출산은 장려하되, 인력과 비용은 유지하면서 똑같은 양과 질의 생산과 서비스를 취하려는 빅브라더가 제일 나쁘다고 외치고 싶다. 우리끼리의 싸움을 지켜보면서 진짜 꿀단지를 끌어안고 있는 게 누구인지 보라고 분노하고 싶다. 그 분노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일침을 놓고 싶다. 바라건대 우리 딸이 누빌 세상은 진짜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 되기를 원한다. 흐뭇한 광경을 바라보며 그 어떤 피해의식과 어깃장도 없이, 축복만을 담아, "세상 좋아졌네."라고 말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