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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무법자
크리스 휘타커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We always begin no matter what>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 "You only live once."와 같은 문구가 시대를 관통하는 경구처럼 울려 퍼진다. SNS엔 지난 주말 강남 오마카세에 다녀온 친구가 올린 사진이,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호캉스에 호텔 조식에 호텔 수영장까지 풀코스로 다녀온 친구의 포스트가 넘쳐난다. 타인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삶은 어떤 포장으로 감싸보아도 구질구질해 보인다. 하지만 거의 모든 캐릭터가 스스로의 삶이 무너져내릴지언정, 자신 아닌 누군가를 위한 지독한 희생을 택하고야 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2025년 최고의 범죄 드라마라는 수식어를 달기에는 요즘 세상의 '추구미'와는 영 맞지 않는다. 책의 초반 더치스라는 13살의 소녀가 6살 남동생 로빈을 극진히 보살피는 설정에서 '너무 신파 아닌가?' 생각했다. 광고만 믿고 책을 사서 실패한 게 몇 번째인지 머릿속에서 헤아려보다가 이내 책의 뒤표지까지 쉬지 않고 읽었다. 그 어떤 통속적인 신파라 해도 좋으니, 단지 해피엔딩만을 강렬하게 바라며 끝장으로 달려갔던 유일한 책이다.
“버티는 거지 뭐. 그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하는 거잖아.”(342쪽) 이 문장이야말로 책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이다. 등장인물 중에 멀쩡한 사람이 없다. 책 속에 자주 나오는 거친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다 좆같이 꼬이고 병들었다. 결핍과 책임감으로 동심이란 건 일찍이 반납한 주인공 소녀 더치스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동생이 사고로 떠난 후 엄마의 자살로 가정이 산산이 파괴된 스타, 어린아이를 죽게 한 교통사고 가해자로서 15살부터 교도소에 복역한 빈센트, 젊은 나이에 파킨슨병으로 투병하며 스타의 죽음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결국 사람을 죽이게 되는 워크 서장, 어두운 분위기를 시종일관 풍기며 스타를 살해한 것으로 의심받는 다크까지, 어느 누구 하나 안정적이고 평범한 범주의 인생은 못된다. 하지만 그 모두는 공통적으로 사랑하는 이를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의 삶을 내어주고 불행을 짊어진다. 이름부터 암울한 그 남자 다크도 마지막에 가서는 병상에서 기계의 도움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딸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맞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버티는 삶. 사랑은 잔혹하다.
7세 아이를 둔 대한민국 워킹맘 중에 사랑의 잔혹함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직장에서 퇴근하여 집으로 출근하는 사이클을 쳇바퀴처럼 굴려야 겨우 유지되는 일상. 그 와중에 아이가 아프면 직장에 시댁에 아쉬운 소리를 하며 휴가를 쓰고 도움을 청해야 하고. 내가 아프면 회사 점심시간에 밥도 거르고 병원에 가서 30분짜리 링거를 맞고 와서 정신을 차려보는. 일과 가정을 양립한다는 것은 나의 전부를 갈아 넣는 일이라는 걸 그전엔 몰랐다. 미혼 시절 즐겼던 스쿠버다이빙, 일 년에 한두 번 가던 해외여행, 원가족(친정)의 대소사에 망설임 없이 지갑을 열던 여유, 주말에 깨우는 사람 없는 집에서 느지막이 일어나 파스타를 해먹던 소소한 행복. 이 모든 것들의 전생의 일인 양 멀게 느껴진다. 지금의 일상은 조금의 틈과 여유를 허락하지 않을 듯 서슬 퍼렀다. 이 책 한 권을 읽고 리뷰를 쓰고자 나는 남편과 아이가 모두 잠든 새벽에야 고양이처럼 살며시 침대를 빠져나오는 것이다. 책 한 권을 위해 자다 말고 눈 비비고 나오는 내 모습에 이른바 '현타'가 온다.
책 속의 인물들이 이렇듯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미쳐 날뛰는 통에(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나 또한 인생 최고의 사랑을 떠올릴 수 밖에. 책 읽고 노트북 두드리는 지금도 눈만 돌리면 그 아이가 끼적이고 그린 것들이 한 면을 다 차지한 벽이 보이는데. 나 역시도 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고야 말거라는 생각에 이르자 책상에 몸을 끌고 올 때의 현타는 사라진다. 나에게도 사랑의 포악함과 광기가 차고 넘칠 거라는 생각에 한기가 들면서, 문득 강렬하게 바로 옆방에 새근거리며 자고 있는 나의 무법자가 보고 싶다.

"잠든 집. 그 이웃들 지붕을 한번 쳐다본다. 일어나서 일하러 가고 비용을 지불하고. 휴가를 떠나고. 연금과 학부모교사연합회 모임, 다음에 무슨 차를 살지, 크리스마스를 어디서 보낼지 걱정하는 사람들"(387쪽). 재미없고 시시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더치스가 바라던 평범성의 상징이다. 나는 이 시시하고 평범한 것들을 딸에게 주기 위해 기꺼이 삐걱거리며 견딜 것임을 안다. 때로는 쉬고 싶어 죽겠다는 말이 절로 나오고, 나 좀 내버려둬라고 세상에 발악을 하고 싶지만, 나는 언제나 다시 시작한다. 이 책의 영어 원제《We begin at the end》라는 표현을 고쳐보자면 We always begin no matter what. 정도로 바꿀 수 있을까. 지쳐서 주저앉지만 늘 다시 일어나 시작하고 나아가는 것. 더치스처럼 앞뒤 재지 않고, 스타처럼 내 몸을 버려가며, 다크처럼 흉악하게, 마사처럼 치밀하게, 워크처럼 꾸준하게 나는 사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