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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ㅣ 창비청소년문학 16
구병모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평점 :
스트레스 안 받는 빵 좀 주이소.
몇 년 전 빵집에서 빵을 고르는데, 문득 나타난 할머니가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스트레스 안 받는 빵을 달라고. 나와 눈이 마주친 사장은 비슷한 생각을 했으리라. 뭐 이런 진상이 다 있어. 사장은 기지를 발휘하여 "카스텔라 드세요. 부드러워서 씹기 편하니까 스트레스도 안 받을 거예요."라고 했다. 할머니는 구시렁거리며 카스텔라를 집어 들어 값을 치르고 사라졌다. 그 할머니에게 위저드 베이커리를 알려주고 싶다. '스트레스 프리 마카롱' 정도는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마법의 힘이 스트레스를 확실히 날려줄 텐데. 대신 마법을 이용한 데에 따르는 책임도 분명히 져야겠지. 하지만 삶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파는 빵을 사용했을 때와는 달리, 현실에서는 선택과 책임이 명확한 짝을 이루지 않을 때가 많다. 그냥 거기 있기만 했다는 주인공의 반복되는 고백처럼(32쪽, 36쪽, 107쪽), 상당수의 사건은, 특히 불행은 그저 내가 그 상황에 놓여있었기 때문에 뺑소니 사고처럼 덮쳐왔을 것이다. 선택이란 말은 그래서 너무 가혹하다. 더욱이 이 책의 주요 독자인 청소년들은 흔한 법적 행위조차 제한받는다. 그 아이들에게 선택지라고 할만한 게 있나. 어른이라고 해서 다를까. 나도 맨날 내 선택에 발이 걸린다. 당장 좋은 선택으로 보이는 것이 반드시 선한 결과를 낳지 않으며, 나쁜 선택이라고 모두가 말렸던 길 끝에 행복이 숨어있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선택 너머에 대한 이야기로 보았다. 옳은 선택을 했음에도, 잘못된 선택을 했음에도, 선택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음에도, 그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뛰어넘어, 박차를 가하는 삶. 그 태도를 응원하는 이야기로 다가왔다. 소설의 말미에 주인공은 파스타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충분히 불행한 인생이었다. 친어머니는 주인공을 청량리역에 버리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새어머니는 주인공의 피를 말리며 편히 숨 쉴 여지를 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동 성범죄자로 밝혀졌고, 그 피해자는 새어머니의 딸이었다. 이쯤 되면 삶에서 선택할 만한 것이 없었던 주인공이 폐인이 되어 방구석에 뒹구는 것을 선택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주인공은 말더듬증을 고치고 무려 일을 한다. 선택하지 않았지만 감내해야했던 불행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이제 겨우 32개월의 세월을 살아낸 나의 여린 딸아이에게 해줄 필요가 없기를 바라지만, 그럼에도 해주고 싶은 말이 그런 것이다.
"인생에는 네가 선택하지 않았는데도 닥치는 불행이 있어. 그때 삶을 놓아버리는 게 아니라, "다시 한 번 더!"를 외치며 일어나는 아이가 되기를 바란단다."
지금은 <아기곰의 봄나들이>, <개굴개굴 약오르지> 같은 책들을 읽어주지만, 언젠가는 이 거친 책을 권하는 날이 올 것이다. 내 아이가 이 책을 읽고 소화할 정도가 되려면 십 년은 더 있어야 할 것이다. 초판 작가의 말과 개정판 작가의 말 사이에도 십여 년의 틈이 있다. 책으로는 불과 한쪽 차이지만, 두 가지 버전의 작가의 말에서 묻어나는 온도차는 제법 크다. 2009년의 작가보다, 2022년의 작가에게서 훨씬 따뜻함을 느꼈다면 나의 착각일까. 십여 년을 지나 아이와 함께 이 책을 볼 때쯤에는 내가 책에서 오늘 뽑아올린 교훈인 '척박한 삶과 그것을 이겨내는 삶의 강인한 자세'에서 한걸음 나아간 따뜻한 감상을 아이와 나누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