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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서양고대사 - 메소포타미아·이집트 문명부터 서로마제국 멸망까지
정기문 지음 / 책과함께 / 2021년 3월
평점 :

세계사하면 내 기억 속엔 중세사와 비교적 근대사 흥미진진했던 수많은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고대사를 떠올려보면 사실 그다지 인상적이었던 장면들이 별로 없다. 세계사를 처음 접할 때 배웠던 4대문명의 발상지인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문명이 기억나는 정도다.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서양고대사>는 이렇게 나처럼 서양고대사에 문외한이 읽으면 적합한 입문서로 보인다.
로마사 전공자로 삼십여년간을 서양고대사를 연구하신 정기문 교수님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의 방대한 역사로 출발해 서로마 제국의 멸망까지 다루어야 할 서양 고대사가 대개 고대 그리스를 원류로 규정해 대부분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을 소홀히 하는 경향을 지적하면서, 서양문명의 기둥이자 서양 근대 이후까지도 지탱하고 있는 신과 인간에 대한 사고관인 종교관을 기본원리로 철학, 법, 문학 등을 총망라한 필수적인 주제를 모두 담아낸 책을 찾기 힘들다고 하고 판단하여 서양고대사가 다루어야 할 시기 전체를 담으면서도 일반독자나 학생들에게 적합한 서양 고대입문서를 찾지 못해 직접 입문서를 쓰게 되었다며, 이 책의 출간동기를 직접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메소포타미아·이집트 문명', '고대 그리스' 그리고 '고대 로마', 이렇게 총 3부로 크게 나뉘어진다. 4대문명 중 가장 먼저 발전한 메소포타미아의 신석기 혁명을 시작으로, 문화와 교육의 창시자인 수메르인, 최초의 통일자 아카드인, 함부라비 법전의 창시한 바빌로니아인, 지중해를 장악했던 페니키아인과 일신교의 유대인, 광대한 지역을 지배했던 페르시아인들까지 메소포타미아를 지배했던 종족들과 태양과 피라미드의 나라 이집트 문명에 대한 광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또한 그리스문명의 시발점인 동서양을 연결시켜주는 마노스 문명을 시작으로 고대 그리스의 신화와 사상, 문화는 물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같은 대표학자들을 낳은 그리스의 철학과 희극과 비극, 역사저술, 그리스를 상징하는 민주주의와 함께 그리스의 분열까지도 함께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불리한 지리적 조건임에도 이탈리아를 통일하면서 로마제국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시작으로 로마공화정 시대와 개혁, 재정수립, 그리고 유럽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기독교의 탄생과 발전, 서로마제국의 멸망까지를 상세하면서도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사실 다른 세계사 책도 여러권 읽어봤지만 이 책만의 큰 장점 중 하나는 사실과 원론에 충실하게 근거를 두고 있는 딱딱한 다른 책들에 비해 읽기가 쉽고 재미가 있다는 점이다. 역사적 지식이 부족하더라도 시대순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둔 내용을 따라 읽어가다보면 머릿속에 연대기가 대강 그림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읽는 내내 하나도 빠지지 않고 꼼꼼하게 읽을 수 있었으며, 주제별로 묶여있는 내용들 역시도 시대순으로 상세한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문화와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 설명을 해둠으로써 고대사를 이해하는 데 훨씬 더 쉽게 다가왔다.
그리스인 입장에서 해가 뜨는 동쪽을 의미 하는 빛과 오리엔트 문명을 뜻하는 동방의 의미를 나타내는 '빛은 동방에서 왔다'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으며, <길가메쉬 서사시>에서의 대홍수 이야기가 성경이야기에서 각색된 부분을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건축의 천재였던 신바빌로니아인들의 7대불가사의 중 하나였었던 궁중정원이나 1889년 에펠탑 건축이전에 세계에서 최대 높이였다던 피라미드 건설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미라의 상세한 제작과정에 대해 읽으면서 다시 한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하면 떠오르는 올림포스의 12신의 탄생과정이야기는 언제나 다시 읽어도 흥미로웠으며 이오니아학파를 시작으로 아테네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소피스트인 소크라테스를 포함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야기와 함께 그들의 문학과 철학이 현재까지도 인간중심의 문명을 이끈 헬레니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하면 마음 깊은 곳에서 존경의 마음이 우러나오게 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로마하면 떠오르는 수많은 왕들이 실은 제1시민이였다는 사실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었고, 로마가 인류에게 남긴 유산 중 최고로 꼽히는 로마의 12표법이 평민들의 권리신장이 중심이었다는 사실도 읽으면서 놀랍게 느껴졌다. 또한 유럽연합 가입국 전체가 기독교국가라는 사실을 통해 로마시대 기독교가 탄생하고 발전하게 된 사실이 현재까지도 얼마나 우리 삶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지에 대한 사실을 생각하면 인류사에 로마가 남긴 역할이 어땠는지를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서로마제국의 멸망이 로마제국 전체의 멸망으로 둔갑한 이유 역시 서양인들의 자기중심적 시각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서양고대사를 재미있으면서도 체계적으로 읽을 계획인 사람이라면 정기문 교수님의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서양고대사>를 선택한다면 후회하지 않을거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근래 읽은 책들 중 참, 마음에 드는 책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