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민주화운동이후 절필을 선언하신 후 현재도 투병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 196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 김승옥의 <무진기행>은 해마다 읽고 싶은 나의 도서목록리스트에 어김없이 적혀있긴 했으나, 개인적인 취향이 단편보다는 장편에 눈이 더 가는 터라 몇 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매번 지나치곤 했었다. 이번에 출판사 '더클래식'에서 한국문학 컬렉션시리즈를 출간하는데 그 첫번째 책으로 <무진기행>이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했고, 올해 탄생 80주년을 맞은 그의 기념 출간이기도 한 이 책을 드디어 읽을 기회를 얻어 감개무량함 마저 들게 했다.
20여편이 조금 넘는 작품만으로도 한국 작가들의 스승이자 한국문단의 거목으로 불리워지고 있는 김승옥 작가님의 이 책 <무진기행>은 그의 모든 중단편 작품 중에서 가장 중요한 단편 12편을 수록해두었다. 전후시대를 살아온 작가가 근대화를 이뤄내는 과정에서 그려낸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은 과거소설에서 흔히 보였던 인물들과는 조금은 다른 모습들을 지니고 있었다. <무진기행>, <생명연습>, <역사>, <서울, 1964년 겨울>에서도 고향을 떠나 도시로 이주해 살고 있지만 기존 소설에서 흔히 보였던 고향에 대한 향수나 그리움을 그려내기 보다는 부끄럽고 어려웠던 고향에서의 과거를 회상하고 벗어나 도시에서 정착하게 된 자신의 내면을 제대로 들여다보며 자각하는 모습들을 그려나가고 있다는 점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수많은 주제들 중에서 이 책의 대부분의 소설 역시 '사랑'이라는 주제가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휴가차 내려온 무진에서 한 여인을 만나지만 인사도 없이 서울로 향하게 되는 <무진기행>, 자신이 사랑하는 윤희누나를 형이 겁탈하는 계획에 동참하게 되는 <건>,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겁탈하고 떠나게 되는 교수님의 사랑방식을 얘기하는 <생명연습>, 하숙집 주인 딸 숙이에 대한 감정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다산성>, 그리고 유명탤런트와의 사랑와 이별을 이야기한 <서울의 달빛 0장> 등 대부분이 사랑에 대한 비틀린 상실감이 그려져있었다. 근대화과정에서의 유교적인 우리 문화의 전반적인 삶의 방식이 현재와는 상당히 많이 변화되고 달라져 있음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