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두 얼굴 - 사랑하지만 상처도 주고받는 나와 가족의 심리테라피
최광현 지음 / 부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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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아이를 봐야한다는 얘기가 앞부분에 나온다.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에서 항상 들어보던 이야기라 접으려고 한 책이었다.
끝까지 읽길 잘한것 같다.
중요한건 ‘직면‘이었다. 잊어버리려 하거나 왜곡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마주 대하는 것. 모든 출발점이 거기에 있는 것 같았다.

읽는동안 나의 어린시절을 생각해봤다.
지금 나름 평온한 가정생활을 꾸리고 있기에 나는 나의 내면아이를 제대로 직면한 것이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반면 남편은 어떤 내면아이를 가지고 있을 지 궁금했다.
어린시절 에피소드를 많이 들어보긴 했지만 정작 본인이 그때 느낀 점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기회가 되면 들어보고 싶다. 들어준다는 건 남편이 남편의 내면아이를 직면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가지 찔리는 것도 있었다. 남편과의 불화가 있을 때 아이들에게 하소연했던 일. 그건 삼각관계에 아이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삼각관계는 남녀의 삼각관계와는 다른 것이다. 아이는 아이대로 불안하고 부부의 문제도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든다. 앞으로 이런 일은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족은 정말 중요하다. 가족에 속해보지 않고 인간으로 성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 그렇게 성장한 사람이 또하나의 가족을 만들기 때문이다.
불행한 가족에 속했던 사람은 또다른 불행한 가족을 만들 확률이 높다.
반대로 행복한 가족에 속했던 사람은 또다른 행복한 가족을 만들 확률도 높지 않을까? 그러면 이 사회는 행복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무엇보다 행복하고 건강한 가족을 만들 수 있도록, 그속에서 아이가 자랄 수 있도록 사회는 온힘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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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라면 유대인처럼 하브루타로 교육하라 - 질문하고 토론하는 하브루타 교육의 기적
전성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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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질문, 질문, 질문, 대화, 토론, 창의성

내가 귀가 얇은건 인정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유대인의 교육법이 옳다!
나의 학창시절, 30년전에도 주입식 교육이었는데 아직도 여전히 주입식 교육이다. 정말 한숨이 나온다. 책을 읽으며 한국에서 그렇게 교육받은 내가 억울했다. 그래서 이모양, 이꼴이다. 남탓하는거 싫어하지만 내가 이정도밖에 안되는 건 본질을 상실한 한국의 교육법 때문인 것 같다. 무려 15년이상을 그렇게 교육받아왔다.

하브루타를 이해하긴 했지만 우리나라 실정에선 똑같이 실천해보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한도내에서 내자식들에게부터라도 실천해보도록 노력해야겠다.

이책은 부모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사람 모두가 읽어봐야할 책이다.

-이책에서 언급된 유대인-
아인슈타인, 프로이트,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정치학자 헨리 키신저, 정의란 무엇인가 저자 하버드대교수 마이클 샌델, 세계적 투자가이자 헤지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 인텔 회장 앤드루 그로브, 메이어 암셸 로스차일드, 2009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아다 요나트

세계 0.25%인구에서...
노벨상 수상자 30%, 미국영화계 60%, 미국 코미디언의 80%, 미국 명문대 로스쿨 재학생 30%, 미국언론계 30%, 하버드대를 비롯해 아이비리그 입학생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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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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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의 리뷰

리뷰를 쓰려고 하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야할지 막막하다.
처음 읽었을 땐 희미하게 느낌만 있었던 것 같은데
다시 읽으니 모든 부분에서 확실히 선명하게 다가온다.
꼼꼼히 읽은 덕분이기도 할거다.
역사와 정치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그런 시대적 배경에 큰 의미가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숱한 검색들로 체코와 그 시대를 조금 알게 되어 글을 읽었을땐 그런 시대적 배경은 말그대로 배경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런 배경이 있기에 이 소설이 존재하지만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의 수단으로 쓰였을 뿐이었단 생각이 든다.
밀란 쿤데라가 살아본 20세기 체코였기에 그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조선시대를 살았다면 그 배경으로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끌어 냈을 수도 있을 거라는 뜻이다.

많은 이야기들 중에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루드비크와 루치에의 첫만남에서부터 헤어질 때까지의 이야기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그들의 눈빛 하나, 동작하나, 감정하나하나까지 느낄 수 있었다.

직접 겪어보지 않고 이런 통찰과 표현이 가능하다는 걸 어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소설가는 애초에 타고나는 것이며 소설은 그런 소설가가 의해 쓰여지기에 책 하나에 우주를 담을 수도 있을 정도의 방대한 영역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문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소설가가 아니기에 이 책을 읽고 내가 직접 느낀 것조차도 제대로 표현해낼 수 없음이 답답하다.

사건마다 그것들에 대한 깨우침이 중간 중간 나온다. 작가의 통찰력에 한번씩 놀라고 나만의 해석도 해보게 되었지만 세세한 부분까지 얘기하려면 끝이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이 소설 전체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만 책내용을 빌려 얘기해보고자 한다.

p.492 오늘날에도 벌써 역사는 잊힌 것들의 망망대해 위에 떠 있는 가느다란 기억의 밧줄일 따름이지만, 시간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이제 한정된 개개인의 기억 속에 모두 들어올 수조차 없는 또다른 수천 년의 세월이 이미 지나가 버리고 난 후인 시대가 다시 또 올 것이다.
......
이 사회의 모든 잘못과 오류들,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나를 소진시킨, 내가 그토록 고치고 시정하고 다시 바로잡아 보려 애썼으나 소용없었던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 이제 어떻게 돌이킬 도리가 없는 것이므로) 그 모든 잘못과 오류들과 더불어 그렇게 잊힐 것이었다.
그렇다. 갑자기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사람들 대부분은 두 가지 헛된 믿음에 빠져 있다. 기억(사람, 사물, 행위, 민족 등에 대한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행위, 실수, 죄, 잘못 등을) 고쳐 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다. 이것은 둘 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믿음이다. 진실은 오히려 정반대다. 모든 것은 잊히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복수에 의해서 그리고 용서에 의해서) 고친다는 일은 망각이 담당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고치지 못하겠지만 모든 잘못이 잊힐 것이다.

주인공 루드비크는 이것을 뒤늦게 깨우쳤기에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저항하고 원망하고 복수를 결심했던 것일 것이다. 비단 소설 속 루드비크 뿐이겠는가.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모두 그것을 깨우치지 못하고 살고 있을 것이다. 만약 깨우쳐서 안다고 할지라도 막상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되면 그 당시에 초연하게 받아들 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한참이 지나서 깨우친 루드비크처럼 우리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2. 저자 후기

다른 출판사의 저자 후기에 있는 글 참고하시라고 올려봅니다.

˝역사적 상황이 이 소설 본래의 테마는 아니다. 내게 있어 역사적 상황은 복수, 망각,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역사와 인간의 관계, 본래 행위의 소외, 섹스와 사랑의 분열 등 나를 매혹하는 실존의 주제를, 새롭게 극도로 날카로운 빛으로 내리쬘 때만이 의의가 있다. 60년대 후반의 문학 비평에 있어(당시 체코의 문학 비평은, 나중에 내가 국외에서 인정한 것처럼, 세계의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자세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그동안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중요한 문예잡지와 문학에 대한 진지한 에세이를 싣던 잡지가 모두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문화의 권위는 저널리즘이나 대중 매체의 권위에 길을 양보하고, 시사 문제의 위협적 요소는 문예 비평에까지 침투하고 말았다. 《농담》은 어디서나 평가의 대상은 되었으나(다름아닌 러시아의 전차에 짓밟힌 나라의 작가를 어찌 칭찬하지 않으리오!), 유일하게 뛰어난 클로드 루아의 비평을 제외하고는, 당시 《농담》에 대한 모든 비평은 천박한 정치적 코멘트나 서정적 절규에 불과했다.
......
오늘날 시사 문제를 반추하는 사람들은 이미 프라하의 봄과 러시아의 침공을 잊고 있다. 이 망각에 의해, 《농담》은 역설적으로 본연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장편소설이고, 장편소설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3. 다른 사람의 리뷰

공감가는 리뷰가 있어서 퍼왔어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어찌 알고 다 써놨더라구요 ㅎㅎ
http://m.book.naver.com/todaybook/view.nhn?todayBookCond.seq=2478


(사진) 2년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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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건 - 요시모토 바나나의 즐거운 어른 탐구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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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일본 여류 소설가이신 요시모토 바나나의 에세이

요즘 내가 제대로 된 어른이 되고 있나? 그런 의문점이 들어 읽어보게 되었다. 조금은 철학적인 이야기가 있기를 은근히 바랬는데 내가 원하던 내용은 아니었지만 이 언니의 인생조언도 꽤 괜찮았다.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작가인것 같다.
조목조목 차근차근 이야기해주는 작가의 글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
진정한 내가 되고 하고싶은 일을 충분히 하며 재밌는 삶을 살라고 얘기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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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끝 마을 - 레벨 3 익사이팅북스 (Exciting Books)
조성자 지음, 김종도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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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인생책이라고 해서 읽어본 동화책.
주인공 헌자는 어릴적 나와 많이 닮아있었다.
조용하고 표현할 줄 모르고 체육을 좋아하지 않는 것까지도...
하지만 지금의 나보다 더 어른스러운 아이다.
하늘끝마을 아이들과 비교되는 내가 창피스러웠다.
난 어쩌다 이렇게 못난 어른이 되어버린걸까?
순수함 이란 단어의 뜻을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철없고 해맑음, 이런 느낌이었는데 거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선(착하고 따뜻함)을 끝까지 선으로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는 게 순수함 아닐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살다보니 선을 지키는 건 어리석은 일이 되어가고 이제는 내마음속에 선을 지키자는 마음이 사라져버린것 같기 때문이다.
순수함을 잃어가는 게 꼭 어른이 되는 길은 아닐텐데 왜 그러면서 어른이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걸까?
내안의 순수함이 그리워진다. 있긴 있는 걸까?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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