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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예쁜 것 - 그리운 작가의 마지막 산문집
박완서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9월
평점 :
2011년 향년 80세로 별세하신 박완서 작가님이 주로 2000년 이후에 쓰신 (출간되지 않았던) 글들을 모아 엮은 마지막 산문집이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유신 시대를 살아오신 박완서님의 가족, 유년기, 20대, 이야기의 힘에 대한 신념을 담백하게 쓰셨는데 잘 읽히고 좋았다.
후반부에는 지인들과의 일화, 편지 형식의 글이 많았는데 박경리, 피천득, 이해인, 법정 스님 등 이름만으로도 대단하신 분들과의 교류가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박완서님의 글을 더 읽고 싶어졌다.
<나목>, <그 남자네 집>, <모독>
세상이 바뀔 때마다 빨갱이로 몰렸다가 반동으로 몰렸다가 하면서 나는 내 눈엔 도저히 인간 같지 않은 자들로부터 온갖 수모와 박해를 당하면서 그들 앞에서 벌레처럼 기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때 내 마음에 섬광처럼 번득이는 게 없었다면 아마도 그 시절을 제 정신으로 버텨내긴 어려웠을 것이다. 번득이는 섬광은 언젠가는 저자들을 등장시켜 이 상황을 소설로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 ...... 한때 나를 불같은 욕망으로 달구고 고개를 세우게 했던 소설을 쓰리라는 예감은 그 후 이십 년이 지나서야 실현되었다. 그때 나는 문학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복수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를 달구었던 것은 창작욕이 아니라 증오였다. 복수심과 증오는 세월의 다둑거림으로 위무받을 수 있을 뿐, 섣불리 표현되어선 안 된다는 걸 차차 알게 되었다. 상상력은 사랑이지 증오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때의 치 떨리는 경험이 원경으로 물러나면서 증오가 연민으로, 복수심이 참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바뀌면서 비로소 소설을 쓸 수 있었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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