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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외로움이 다른 외로움에게 ㅣ 보통날의 그림책 5
나탈리 비스 지음, 쥘리에트 라그랑주 그림, 김윤진 옮김 / 책읽는곰 / 2023년 7월
평점 :
경험이란 것을 우리는 간접으로도 겪고, 직접적으로도 겪는다.
그런데, 이 간접과 직접이라는 단어(는 잘못이 없지만) 아니 언어가 가지는 한계라고 할까...
어릴 때 노상 독서를 간접경험이라고 배웠는데, 이제와 생각하면 몸이 아는 경험이라기 보다 머리로 대처하는 플랜 B가 생기는 게 아닐까 싶다. 눈으로 읽고 단지 머리 속에서 상상해보는 경험이라니... 지식으로써 상황에 대한 유추는 가능하겠지만, 겪어본 자와 겪어보지 않은 자의 간극을 과연 눈으로 읽는다고 메꿀 수 있을까.. 메꾼다한들 그게 과연 같을까...
홈리스로 대표된 일종의 상실을 가진 모든 자들을 위한 책이면서, 가장 잔인한 책일 수 있다. 그림책이니까 가능한 결말일 수도 있고(작가가 만든 결말을 보고 나도 흐뭇하게 웃고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나이가 들어선지 자꾸 그 다음 생각을 하며 고개를 빼닥하게 뉘게 된다)...
상실의 고통으로 모든 감각을 닫고 사는(과연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는가마는) 어떤 사람이 있고,
그도 이제쯤엔 그 장소에 적응을 마쳤고, 서서히 자신만의 평온할 수 있는 지점들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사람이란 건 참 뭔가 일상적인 일정이 없이는 대체 살 수 없는 것일까하는 의문이 든다. 홈리스에게도 일상적인 일정이 필요하다니... 어찌 생각하면 어불성설같고, 어찌 생각하면 너무 당연하고, 어쩌면 다행이고...
도로시의 회오리바람처럼 바람이 불던 날 무언가가 떡하니 나타났다. 새로운 존재를 한참을 조심스럽게 관찰한 결과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거라는 안도감이 들었을 때,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을까. 그리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겠지, 내게 무해할 존재니까.
어두운 도시 속 반사되는 신호등 불빛과 얇은 지붕 아래 두 존재. 좋아하는 장면이다.
언어가 필요치 않은 이런 장면, 이런 순간.
언어가 더이상 필요하지 않던 그가 내가 아닌 존재를 위해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는 장면들이
독자에게 건네는 여파가 크다.
시도 자체에도 박수를 가득 받을 일인데, 박수는 커녕,
거절과 거절을 얹은 채로 당사자의 거절까지 받아들고서 홈리스는 정류장으로 돌아왔다.
(집이란 건 뭘까. 집이란 건 어떤 형태이어야하는가. 돌아올 곳이면 다 집일까...)
다른 방법이 없는 이제야 서로가 서로뿐인 존재들이 등을 기댄다.
무릎을 빌려주고 눈을 맞추고 마음을 나누고.
인간에게 외로움은 숙명이라지만,
이렇게 가끔 내게 꽃을 건네주는 존재가 있어 또 하루를 살 수 있다.
(물론 항상 꽃만 주는 건 아니지만;;;)
오늘은 너의 꽃으로 살고,
내일은 나의 힘으로 살고,
모레는 또 누군가의 손을 붙잡을 수 있어 살 수 있겠지.
이야기가 여기서 끝은 아니다.
인생은 그저 흘러가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인지, 존재에 대한 책임은 그런 거라는 뜻인지,
회오리바람같은 바람이 또 분다.
소외된 이들에 대한 연대가 더 세심하게 단단해지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최근 교사들의 집회에 대한 여론이 어떤지 나는 정확하게 모른다.
그렇지만, 그들이 월급을 올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단지, 자신의 일들을, 사명감을 가지고 해가는 일들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인데,
이게 이런 냉대를 받을 일인가 싶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조금씩 다 소외된 존재들이니,
서로 좀 귀기울이고 들여다보고 도울 수 있다면
선뜻 손 내밀어 줄 수 있다면 좋겠다.
바람이 선선해진 요즘 읽기에 눈으로 감상하기에 매우 적절한 책이군.
한 번 다 보셨다면, 마지막 장면과 첫 장면을 비교해보는 것도 권한다.
서평단 모집에 손들고 당첨되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