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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뒤흔든 발굴
이종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헤리슨 포드의 직업은 무엇일까? 고고학자다. 하지만 영화속 헤리슨 포드의 모습은 학자라기 보다는 용감하고 싸움 잘하는 탐험가의 모습으로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다. 고고학자는 우리에게 학자의 이미지 보다는 신비에 싸인 미지의 고대세계를 탐험하는 모험심 강한 탐험가의 이미지로 더 친숙하다. 그러나 고고학자의 그런 와일드한 모습 뒤에는 고대언어와 역사에 대한 학자로서의 치열한 연구가 감추어져 있다. <세계사를 뒤흔든 발굴>은 학문적 지식과 낭만적 열정을 함께 갖춘 고고학자들이 한 때 신화나 전설로만 여겨지던 이야기들의 실재를 밝히기 위해 고대 미지의 세계에 던진 과감한 도전과 그 성과, 그 과정에서 그들이 맛본 희열에 관한 책이다. 프랑스에서 유학하며 고대 유물과 유적의 발굴에 깊이 매료된 저자는 나름의 판단으로 세계의 주목을 고고학적 발굴로 다음 10가지를 들고 있다.
1. 터키 할리카르나소스에 있는 마우솔로스왕의 무덤. 마우솔레움
카리아 왕국의 왕 마우솔로스가 자신의 무덤으로 만든 것으로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제외하면 고대 무덤건축물로서는 최대규모의 것으로 마우솔레움이라는 말이 무덤건축물을 가리키는 일반명사로 쓰일 만큼 웅장한 건축물이었으나 중세 십자군전쟁과 오스만터키제국에 의해 비잔틴제국이 함락되면서 철저하게 파괴되고 해체되어 버렸다. 1857년 영국공사 찰스 뉴턴 공에 의해 발굴되어 그 흔적이나마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2. 터키 에페수스에 있는 아르테미스신전
아르테미스는 그리스신화에서 달의 여신이다. 에페수스에 있는 아르테미스여신의 전은 그리스 아테네에 있는 파르테논신전의 네 배가 넘는 규모의 어마 어마한 규모였다. 성서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사도바울이 에베소(에페수스)에서 복음을 전할 때 아데미(아르테미스)신상을 깎아 팔아 큰돈을 벌던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이 바울이 손으로 만든 것은 신이 아니라고 하니 바울을 그냥 두어서는 자신들의 영업에 지장에 있고 여신의 신전도 업신여김을 당할 우려가 있다고 선동하니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분노하여 아르테미스여신을 연호 하는 장면이 나온다.(사도행전 19:23-41) 에페수스인들의 자존심이었던 이 신전은 그러나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정한 로마제국의 황제 테오도시우스에 의해 서기 401년 파괴되었다. 1863년 영국의 건축가 존 터틀 우드가 신전의 터를 발굴하여 그 웅장한 규모를 알 수 있게 되었다.
3. 터키 히사를리크에 있는 트로이 유적
브레드 피트가 멋진 갈색머리를 휘날리며 나왔던 영화 트로이의 무대는 어디였을까? 트로이목마로 유명한 그리스와 트로이와의 전쟁 무대를 찾아내어 트로이의 목마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은 모든 고고학자들의 꿈이었다. 이 꿈을 이룬 사람은 독일의 하인리히 슐리만이라는 거상(巨商)이다. 일곱 살 때 크리스마스선물로 받은 책에서 트로이목마 이야기를 읽고 훗날 그 역사적 실재여부를 확인해보겠노라는 꿈을 가졌던 소년은 훗날 거상이 되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다음 어린 시절의 꿈을 현실로 옮기게 되었다. 1873년 터키의 히사클리크언덕에서 그는 마침내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궁전으로 추정되는 유적을 발굴하는데 성공하였고 8750개에 달하는 유물을 발굴하였다. 하지만 그가 발굴한 유적과 유물은 시기적으로 트로이전쟁보다 천년이나 앞선 시대의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긴 하지만 트로이의 무대를 정확히 짚어냄으로써 트로이전쟁이 역사상 실재하였던 사실(史實)이라는 것을 입증한 것은 슐리만의 공로임에 분명하다.
4. 지중해에 있는 크레타 섬의 크노소스궁전
<9천년전 고도의 발달한 문명을 자랑하던 도시국가가 있었는데 어느 날, 엄청난 지진과 해일로 인해 하루아침에 바다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 국가를 아틀란티스라고 부른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그의 책 <대화록>에서 동시대 정치인 솔론이 이집트사제에게서 전해들은 말이다.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고문명의 도시국가! 아틀란티스!! 수많은 탐험가와 고고학자들이 아틀란티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애를 썼다. 영국인 에번스는 <일리아드>에 나오는 크레타 섬에 대한 묘사가 고도로 발달한 문명에 대한 묘사임을 주목하고 지중해의 섬 크레타 섬의 발굴에 나섰다. 그의 예상은 적중하여 크레타 섬에서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고대 미노스문명의 중심인 크레타왕국의 크노소스궁전을 발굴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 왕궁이 거대한 화산폭발과 그로 인한 지진과 해일로 일순간에 멸망해버린 사실도 밝혀 내었다. 논란의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크레타 섬과 혹은 그 옆의 화산섬 산토리니섬 어딘가에 아틀란티스가 묻혀있다고 믿고 있다.
5. 이라크 니네베에서 발굴한 수메르점토판
1852년 영국인 오스틴 헨리 레어드는 고대 아시리아제국의 강력한 왕이었던 센나케리브왕의 왕궁이 있던 니네베에서 도서관을 발굴하였고 그 속에서 쐐기문자가 새겨진 수천 점의 점토판이 발견되었다. 이 점토판을 통해서 성서의 노아 홍수 이야기의 원형에 해당하는 길가메쉬서사시가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메소포타미아문명의 시원(始原)이 수메르문명이었다는 것도 밝혀지게 되었다. 대홍수로 인한 전지구적 멸망이라는 성서의 기록이 단순한 신화나 허구로 가득찬 전설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실재하였던 엄청난 사건이었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놀라운 발굴이었다.
6. 터키의 보가즈쾨이에서 발굴한 이집트와 히타이트의 평화조약기록점토판
기원전 1259년 이집트 람세스2세와 히타이트제국의 하투실리3세가 맺은 평화조약이 점토판에 기록되어 1906년 독일인 휴고 벤클러에 의해 터키의 보가즈쾨이에서 발굴되었다. 그리고 동일한 내용이 이집트의 카르나크신전 벽에서도 발견되었다. 한 때 이집트와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겨룰 정도로 막강한 제국을 이루어 700년 동안 영화를 누렸지만 그 흔적을 찾을 길이 없던 히타이트제국이 이집트와의 평화협정조약문이 발견됨으로써 비로소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된 것이다.
7. 이스라엘의 쿰란에서 발굴한 사해문서
1947년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의 사해근처 쿰란의 동굴에서 어느 양치기 소년에 의해 우연히 두루마리 뭉치가 항아리에 담긴 채 대량 발견되었다. 훗날 사해문서라고 불리게 된 이 두루마리는 학자들의 연구 결과 최소 기원전 100년 이전의 것으로 유대교의 한 종파였던 에쎄네파가 성서를 필사한 것임을 밝혀냈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성서가 발견된 것이다. 종래 전해져 오는 구약성서의 어떤 필사본보다 최소 천년을 앞서는 것으로 구약성서의 원본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받으면서 이 두루마리는 학계의 깊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이들 문서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구세주는 성서의 예수처럼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고 다시 부활하여 세계를 구원하는 인물로 나오는데 문제는 이들 두루마리 성서의 작성시기가 시기적으로 성서의 예수보다 최소 150년은 앞선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예수가 세상에 나기도 훨씬 전에 십자가죽음을 당하고 부활한 그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사해문서가 기록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구세주는 과연 누구였는가? 사해문서의 발굴로 이 골치 아픈 문제를 성서학계는 떠 안게 되었다.
8. 우크라이나에 있는 스키타이유적
흑해 위쪽 지금의 우크라이나 초원지대를 지배했던 스키타이민족은 유목기마민족이다. 빠른 기동력을 무기로 삼은 그들은 기원전 513년 당시 최고의 강국이었던 페르시아와 전쟁을 할 만큼 무시 못할 존재였다. 스키타이의 유적과 유물은 주로 쿠르간(봉분)의 발굴을 통해 빛을 보게 되었다. 왕의 무덤은 순장(殉葬)의 풍습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고 장신구를 비롯 온갖 무기와 제기(祭器), 심지어 일상용품과 마구(馬具)까지도 황금으로 장식한 것으로 보아 황금이 풍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9. 중국 시안의 진시황 병마총
1974년 중국의 산시성 시안에서 발굴된 진시황제의 능은 고대 권력의 힘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황제의 능에서 1km 떨어진 곳에서 병마용릉이 발굴되었는데 6천명이 넘는 군사들과 말 500필, 전차 130대가 실물크기의 인형으로 제작되어 지하의 시황제를 보위하고 있는 것이다. 바깥 성곽의 길이만 12km에 달하고 묘역 자체넓이만 60만평이나 되는 진시황릉은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무덤건축물이다.
10.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대짐바브웨
아프리카 동남부의 로디지아라는 곳에 아프리카인이 만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거대한 석탑과 신전, 그리고 거주지의 흔적이 있다는 소문은 그곳이 어쩌면 성경에 나오는 황금의 나라,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 금을 가져왔다는 오빌 일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호기심으로 고고학자와 고고학자를 가장한 도적 떼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독일의 지질학자 칼 마우크가 결국 아프리카 남부 잠베지강과 오렌지강 사이에서 그 유적을 발굴하였는데 학자들의 연구 결과 이 유적은 15세기 아프리카의 모노모타파제국이 건설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백인이 흑인을 지배하는 짐바브웨(짐바브웨유적을 발견해서 나라이름이 짐바브웨)의 현실정치는 대짐바브웨유적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정치적으로 부정하고 유럽인에 의한 건설임을 내세워 흑인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하려고 했지만 역사적 사실을 왜곡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책은 고고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하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깊은 학문적 천착을 해 들어가는 책은 아니지만 각 유적의 발굴에 대한 간략한 약사(略史)와 함께 유적의 배경이 되는 역사를 소개해 줌으로써 유적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저자가 서양에서 유학하다가 서양의 박물관을 통해서 고대유물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까닭에 10가지 유적지 선정이 서양에 치우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겠다. 게다가 아직까지는 고대사에 대한 고고학적 관심과 연구가 서양이 앞서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관심 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