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풍상 - 성서의 새 연대기를 찾아 떠난 고대 이집트 탐험
데이비드 롤 외 지음 / 해냄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구약성서의 사건들은 역사적 사실일까? 아니면 이스라엘민족의 신앙이 만들어낸 허구의 드라마일까? 나폴레옹의 이집트원정으로 촉발된 고대 이집트의 역사와 유물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과 연구는 구약성서의 사건들을 고대 이집트의 역사적 문헌과 유물 속에서 그 흔적을 찾음으로써 성서의 역사성을 증명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고대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이웃한 나라일 뿐 아니라 구약성서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많은 관계를 맺어왔으므로 고대 이집트의 역사적 유물 속에는 반드시 동시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적 흔적이 남아 있으리라는 생각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당초 고고학자들의 기대와 달리 구약성서가 전하는 이스라엘의 역사적 사건들은 역사적 사실로 입증할만한 유물이나 문헌이 동시대 이집트의 역사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이것은 성서의 역사성을 증명하고자 하는 고고학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이었고 애초 그들의 의도와는 반대로 도리어 성서의 역사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저자 데이비드 롤은 여기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 문제는 곧 시간표의 문제였다. 구약성서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난 시대와 동일한 시대는 이집트 역사에서 언제에 해당하는가? 이스라엘의 역사적 시간표와 고대 이집트의 역사적 시간표(이집트연표)가 만약 서로 동시대끼리 맞물리지 않고 어긋나 있다면? 그러면 결과는 뻔하다. A시점에서 일어난 구약성서의 사건을 엉뚱하게도 B시점의 이집트 역사에서 찾는 셈이 된다. 이렇게 되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시대착오적인 결과들이 나오게 된다.
예를 들면 여리고성의 발굴이 대표적이다. 그동안의 전통적인 견해에 따르면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가나안땅을 정복해 들어가기 시작한 때는 이집트 19왕조 말엽 즉 후기 청동기시대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여리고 유적을 발굴해 보니 과연 무너진 성벽은 나왔으나 그 축성 시기가 여호수아 시대보다 1천년이나 앞선 초기 청동기 시대의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후기 청동기 시대의 지층에선 성벽의 존재 자체가 아예 발견되지 않았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정복하였다는 이집트 19왕조 말엽 즉 후기 청동기시대에는 여리고성은 이미 폐허가 된 채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미 오래전에 무너져 폐허가 된 성을 여호수아는 무슨 재주로 무너뜨리고 정복하였다는 것일까?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저자는 이런 시대착오적인 결과가 나오는 것은 근본적으로 고대 이집트의 연표와 성서의 역사적 시간표를 잘못 짝맞추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여리고성 유적을 자세히 발굴해 본 결과 중기 청동기시대의 지층에서 성벽이 무너져 비탈을 메운 흔적을 발견하였고 성안 주택과 건물들이 모두 화재에 불탄 듯 검게 그을러져 있었다. 이것은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점령한 뒤 성안 모든 것을 불로 태워 소각해 버렸다는 성서의 증언과 일치한다. 즉 성서의 여리고성 점령사건을 후기 청동기시대에 일어난 일로 보면 시간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되지만 중기청동기시대에 일어난 일로 보면 성서의 증언과 일치하는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여리고 유적이 보여준다는 것이다.

문제는 잘못된 시간표다. 저자는 구약성서의 사건을 증명할 유적을 찾는 고고학자들의 노력이 장소는 제대로 찾았지만 시대를 잘못 헛집었다고 말한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여기엔 고대 이집트역사연구와 유물발굴의 선구자들이 이집트연표를 작성할 때 중대한 착오가 있었음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역사의 접점을 찾던 그들은 성서에서 두 군데 구절을 주목하였다. 하나는 이집트의 파라오의 학대 아래서 이스라엘이 라암셋을 건설하였다는 것이고(출1:7-11) 다른 하나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 이집트의 왕 시삭이 예루살렘을 쳐들어와 솔로몬 궁정의 온갖 보화를 다 쓸어갔다는 대목이다(역대하 12:9) 고고학자들은 여기에서 이스라엘이 노예로 라암셋(람세스의 영지)를 건설할 때의 이집트 왕을 람세스2세로 보고 그 시기를 기원전 13세기로 보았다. 또한 르호보암시대 예루살렘을 점령한 시삭은 가나안북부지방을 점령한 것으로 알려진 쇼셍크1세로 보았다. 쇼셍크1세의 점령지를 기록한 부조에 새겨진 유다왕국이라는 기록이 이를 강력히 뒷받침하였다. 그 결과 시삭왕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시기는 기원전 10세기(BC925) 쇼셍크1세 치세기간으로 확정되었다. 이 두 가지 접점을 축으로 이스라엘과 고대 이집트의 역사적 시간표가 짜 맞추어졌다.
  저자는 여기에서 문제가 비롯되었다고 보았다. 저자의 연구에 의하면 이스라엘이 노예로서 라암셋을 건설 할 때의 이집트 파라오는 람세스2세가 아니라 아멘호테프1세이고 예루살렘을 약탈한 시삭은 다름 아닌 람세스2세이다. 줄잡아 300년 정도의 시차가 생긴다. 저자는 이렇듯 솔로몬 시대의 유적도 BC 1000년 이후 철기시대에서 찾으면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지만 그 보다 앞선 BC 1300년 경 후기 청동기시대의 지층을 발굴하면 당대의 화려하고 국제적인 성격의 유물을 발견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집트주변의 도시국가들의 통치자들과 이집트의 파라오간에 오간 공식 서간을 기록한 아마르나의 점토판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이 실존인물이었으며 그의 생전 이름은 위대한 사자(Great Lion)라는 뜻의 라바유였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공개된다. <다윗은 시편 57:4에서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의 부하들을 가리켜 ‘사람을 잡아먹는 사자들’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사울이 파라오에게 보낸 서신에서 우리는 떠돌이 하비루(히브리)의 우두머리 다윗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고 아들이 하비루와 어울리는 것을 심히 걱정하는 사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성서에서 사울은 아들 요나단이 다윗과 우정을 나누는 것에 대해 격분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전해준다.(삼상20:30-31)
모세시대는 그동안 알려져왔듯 이집트19왕조의 세티1세-람세스2세-메렌프타 시기(BC 1294 ~ 1203)가 아니라 이보다 훨씬 앞선 13왕조의 소베크호테프4세~투티모세3세에 이르는 시기(BC 1529 ~ 1425)이며 출애굽시 이스라엘이 집단거주하였던 성서의 고센지역을 발굴한 결과 발견유골의 65%가 생후 18개월 미만의 어린애유골이었으며 성인남성의 유골이 성인여성보다 압도적으로 매장된 사실이 밝혀졌다. 이것은 모세 당시 히브리인의 증가를 막기 위해 파라오가 남아살해를 지시했다는 성서의 증언이 역사적 사실이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구약 창세기의 드라마틱한 인물 요셉을 이집트의 역사 속에서 찾아 보았다. 요셉이 꿈을 해몽해 준 파라오는 아마넴하트3세(BC 1682 ~ 1635)이었고 파라오가 꾼 7년 흉년의 불길한 꿈은 당시 나일강의 수위를 기록한 셈나의 명판에 의하면 나일강의 대홍수로 인한 기근이 당시에 실제상황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요셉의 무덤을 소개하고 있다. 1987년 고센지역에서 요셉의 무덤이 발굴되었다. 그 속에선 유골은 찾아볼 수 없었고 파괴된 요셉의 석상 중 두상부분이 남아있었다. 두상은 누군가가 돌로 쪼개어 부수려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성서에 보면 요셉은 죽기 전에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날 자신의 유골을 가져갈 것을 유언했다.(창50:24-25) 요셉의 무덤에 유골이 없는 것은 모세의 영도 아래 이스라엘민족이 출애굽할 때 그들의 위대한 족장의 유해를 유언대로 무덤에서 가져갔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출애굽의 과정에서 이집트가 당한 재앙과 노예를 잃은 허탈함으로 인한 분노에 휩싸인 이집트인들이 주인 없는 요셉의 무덤을 마구잡이로 파헤치고 요셉의 석상을 파괴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요셉의 빈 무덤과 파괴된 석상은 요셉이 실존인물이었음을 웅변해 주고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고대 이집트 역사의 연표 수정이라는 다소 생소하고 어려워보이는 주제를 제시한다. 주제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고대 이집트인들의 이름과 지명등이 낯설어 처음엔 읽기가 다소 지루하고 힘든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559페이지 짜리 책이다. 판형도 일반책보다 크다! 그러나 수천년 시간의 베일 속에 숨겨진 역사적 진실의 꼬투리를 하나씩 발견해 나갈 때 이 책이 주는 감동과 기쁨, 유익은 말할 수 없이 크다. 특히 성서속 인물이 실존의 인물로, 성서의 역사가 실재하였던 역사로 새롭고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성서의 내용이면 뭐든 무조건 성서의 기록 그대로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는 맹목적 신앙인 에게나 혹은 성서의 내용이면 뭐든 무조건 허무맹랑한 허구요 신화요 각색이라고 외면해 버리고 마는 사람에게나 이 책은 모두에게 귀중한 깨달음을 안겨주리라 생각한다.
진리는 맹목으로도 무지로도 알 수 없다는 것을.

관심 있는 분들의 필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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