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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미래 - 예수의 시대에서 미래의 종교를 보다
하비 콕스 지음, 김창락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예수에 대한 신앙에서 예수의 신앙으로 눈길을 돌리게 하는 책
20세기 가장 위대한 신학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하비 콕스가 2009년 하버드대학 신학교수직을 정년은퇴하면서 내놓은 <The Future of Faith>가 한신대학교 신약학교수를 정년은퇴한 김창락 박사에 의해 번역되어 <종교의 미래>란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하비콕스는 이 책에서 기독교 2,000년의 역사를 신앙(faith)의 시대, 믿음(belief)의 시대, 성령(Spirit)의 시대로 삼분하였습니다. 예수 사후 AD 300년에 이르기까지를 ‘신앙의 시대’로 분류한 하비 콕스는 이 때의 기독교는 예수의 길(Way)을 가고자 했던 순수한 신앙인들이 제국의 위협아래서도 새로운 세상의 질서를 꿈꾸며 자유로운 정신과 협동심, 생명력으로 충만한 역동성을 가졌던 기독교였음에도 4세기에 이르러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종교가 되면서 스스로 권력화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후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예수의 길(Way)과는 전혀 무관한 변질된 기독교의 길을 걸어왔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비콕스가 ‘믿음(belief)의 시대’라고 이름을 붙인 이 시대의 특징은 통일된 하나의 교회라는 이름아래 교회가 철저하게 제도화되었으며 이를 위해 성직자계급이 출현하였고, 또한 하나의 교회를 위한 하나의 신앙고백으로 신조(信條)라는 교의가 확립되었고, 그 하나의 교의를 잣대로 무수한 다양한 신학적 견해들을 이단으로 정죄하여 잔인하게 처단하였습니다. ‘신앙의 시대’에 가졌던 기독교의 역동성과 생명력은 사라지고 대신 교회 자체가 거대한 권력기구가 되어 권력을 놓고 치열한 교권투쟁을 일삼는 한편 다양성, 자유, 평등에 기초한 교회의 모습 대신 제국의 군대와 같은 엄격한 계급적 질서가 교회의 생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20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기독교는 4세기 로마제국주의자들에 의해 부러진 다리를 질질 끌고 1500년의 세월을 절룩거리며 걸어 왔습니다. 기독교가 지배자의 종교로 둔갑하면서 부러진 다리는 다름 아닌 ‘예수의 신앙’입니다. 예수는 무엇을 신앙했는가? 예수는 무엇을 희망했는가? 예수가 가고자 했던 길은 어떤 길이었나? 기독교가 제국의 종교가 되면서 ‘예수의 신앙’은 ‘예수에 대한 신앙’으로 대체되어 버렸습니다. 하비콕스는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교의 신학과 설교가 예수에 대한 신앙의 필요성에 너무 매달려온 결과로 예수의 신앙이 무시되어 왔다>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선포하고 그 나라가 이 땅위에 임하도록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는데 제국종교가 된 이래 기독교는 더 이상 예수가 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선 입을 닫고 예수가 누구인가, 예수를 누구로 믿을 것인가를 놓고 형이상학적인 입씨름에나 매달렸습니다. 삼위일체논쟁이나 예수의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에 관한 논쟁 등이 예수의 신앙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예수에 대한 논쟁이란 점이 바로 그 점을 말해줍니다.
‘예수의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가 공생애를 시작하며 내뱉은 일성(一聲)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의 신앙의 핵심이고 선포한 메시지의 정수(精髓)입니다. 로마제국의 통치이념과 질서, 가치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가치와 질서가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희망과 그 나라를 이 땅위에 세워나가는데 대한 헌신을 요구한 예수의 삶과 목소리는 지난 1500년의 세월동안 예수에 대한 신앙고백의 중얼거림 속에서 잊혀졌습니다. 하비콕스는 그 결과를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나라 없이 하나님을 가지려고 하는 동안에, 세속주의자들은 하나님 없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려고 했다. … 정의에 대한 하나님 나라의 요구를 무시하면서 예수를 가슴에 모시는 것은 불가피하게 결국 하나의 개인주의적 경건으로 흘러가 버린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신앙 없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 예수에 대한 신앙만 가지고 스스로 자족하고 있을 때 수많은 세속주의자들이 지상에 낙원(하나님 나라)건설을 약속하면서 숱한 혁명과 개혁의 횃불을 높이 들었지만 결국엔 낙원대신 재앙만 남기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속주의자들이 건설하고자 한 낙원은 하나님 없는 낙원이었기 때문입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시금 예수의 ‘하나님 나라 신앙’에 눈을 떠야 합니다. 기독교는 지난 1500년 동안 ‘예수에 대한 신앙’에 눈멀어 왔습니다. 태양을 직접 바라보다 보면 눈이 멀듯이 ‘믿음의 시대’로 일컬어지는 4세기~20세기 말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만 바라보다가 눈이 멀었습니다. 정작 예수가 바라보았던 하나님 나라는 미처 바라보지 못하고 이 땅위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길 기도하라는 예수의 당부대로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새질서가 오면 낡은 제국의 질서는 사라져야 하는데 지배자의 종교가 된 이래 기독교 스스로가 권력과 특권이 가득히 쌓여있는 자기만의 아늑한 방안에서 깊은 잠을 자왔습니다. 하비콕스는 21세기를 맞아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예수의 신앙’으로 돌아가는 거대한 영적회복이 일어나고 있음을 반기면서 새로운 이 시대를 성령의 시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탈권위주의, 다양성, 자유와 평등, 평화에 대한 갈구가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예수가 살았던 그 시대처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새로운 소망을 갈구하게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