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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비극 - 차라리 공감하지 마라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3월
평점 :
공감의 비극
차라리 공감하지 마라
강준만 (지은이) 인물과사상사 2023-03-24
강준만 선생은 거의 두세달에 한권씩 책이 나옵니다. 책의 많은 부분이 신문기사나 SNS의 말을 인용합니다. 어찌보면 쉽게 책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인용의 내용이 보통 수백편이라 관련 내용을 찾아보고 싶지만 엄두가 안납니다. 게다가 요즘 언론들이 서로서로 붙여넣는 기사글을 써서 하나씩 확인하기가 힘듭니다. 그런 수없는 기사들을 정리하여 핵심을 잡고 비평과 설명을 해줍니다. 정말 편리한 세상의 해설가라 할 수 있겠습니다.
공감의 비극도 정치에 있어 자기 편에 대해서는 무한한 공감을 하고 상대편은 무시하거나 증오하는 세상에 분명한 견해를 밝힙니다.
저것들은 도대체 왜 저럴까, 저 사람은 왜 진실하지 못할까, 왜 거짓을 강요하고 억지를 부리는 걸까… 이렇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해석합니다. 이런 방식을 뭐라고 불러야 하나요? 하여튼 정확하게 파악하고 분석해줍니다.
어쩌면 저도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선생의 논리에 따라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될 정도로 시원하게 이야기합니다. 니편 내편이 따로 없습니다.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거침없이 지적합니다. 그런 통쾌한 맛에 책을 계속 읽게 되는 거죠.
공감이 왜 나쁜 것일까. 이 책에서 선택적 과잉 공감은 자기 성찰의 의지와 능력이 없는 상태라고 말합니다. 자신들은 천사로 여기면서 상대편을 악마로 여깁니다. 이들은 증오와 혐오를 먹고 사는 종족입니다.
관련 분야의 공무원들이 부당하거나 미심쩍은 명령을 거부했더라면 그게 바로 문재인 정권을 살리는 길이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 거부는 극소수 ‘영웅’에게나 가능한 것이지 보통의 공무원에겐 기대하기 어렵다는 걸 말이다.
그게 우리의 현실이요 문화임을 인정하는 게 좋겠다. 이걸 인정하고 들어가야 올바른 해법을 모색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사실 복종보다 무서운 건 순응이다. 형식적인 권위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 복종이라면, 순응은 집단 내의 분위기만으로도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순응은 반복되면 체질로 굳어져 무조건적이고 자발적으로 작동한다. 순응을 할수록 요구하는 순응의 강도는 높아지게 되어 있다.
32-33p
순응할수록 강도가 높아진다! 맞습니다. 이정도까지는 인정해주자고 하면 다음에는 거기서부터 시작합니다. 답답할 노릇이죠.
강성 유권자들은 자기 정당이 잘되기를 바라긴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자신의 분노와 증오를 발산하는 것이다. 그들은 성찰을 혐오한다. 성찰은 분노와 증오의 발산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기들 때문에 자기 정당이 실패하는 일이 벌어져도 그걸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63p.
실패를 해도, 거짓말을 해도 절대 물러나지 않는다. 물러나면 진다고 생각하나보죠. 왜 저리 극단으로 가는걸까 궁금했는데 그래야 행복한가 봅니다.
2017년 조선일보가 소개한 "베테랑 공무원이 말하는 국감 편하게 치르는 법"은 바로 그 점을 잘 지적하고 있어 흥미롭다. …
첫째, 의원이 최대한 길게 발언할 수 있도록 들어주는 게 기본이다. …
둘째, 정부 행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의원에겐 고개를 연신 끄덕여주어야 한다. …
셋째, 지적하신 문제점을 반드시 시정하겠다"는 마무리 멘트도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
75p.
짜고 서로 위해주는 시스템인가요. 안타까우면서도 재미있습니다.
증오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적이 단지 다른 사람의 집단쯤으로 보여서는 안 된다. 적은 사악해야 하며 우리의 안녕에 위협이 되어야 한다. 적을 다룰 때에는 정상을 벗어난 행동을 정당화할 어떤 명분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적은 악마나 악의 대리자가 되며, 일반 사람을 대하듯이 해서는 안 되는 비인간적인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윌러드 게일린, 증오: 테러리스트의 탄생(2003)
110p
증오하는 자에게는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한다. 한 점의 회의도 있어선 안 된다. 그 앞에서 의심하는 자는 증오할 수 없다. 회의한다면 그렇게 이성을 잃을 리 없다. 증오에는 절대적 확신이 필요하다. 모든 ‘어쩌면'은 걸리적거리며 방해만 한다. 모든 '혹시'는 증오 속으로 침투해 어딘가로 분출했어야 할 그 힘이 새나가게 한다.
카롤린 엠케, 혐오 사회: 증오는 어떻게 전염되고 확산되는가(2016)
110p.
너무 맞는 이야기인데 일부러 찾아 읽고 싶지 않은 통찰입니다.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핵심을 잘 짚어주어 다행입니다.
읽고 난 후에 뒤의 참고신문을 들춰보니 앗! 대부분이 서적이었습니다. 역시 이번에 공감과 증오에 대해 쓰려니 서적들이 많이 필요했나봅니다. 어쨌든 제가 궁금해하고 생각해보고 싶은 것을 미리 정리해줘서 배울 점이 많은 책입니다.
읽으면서 세상살면서 궁금한 부분을 강준만선생GPT로 만들어져서 대답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떠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