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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의 죽음 (러시아어 원전 번역본) - 죽음 관련 톨스토이 명단편 3편 모음집 ㅣ 현대지성 클래식 49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윤우섭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3월
평점 :
이반 일리치의 죽음 (러시아어 원전 번역본)
죽음 관련 톨스토이 명단편 3편 모음집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은이), 윤우섭 (옮긴이) 현대지성 2023-03-24
두번째 단편 주인과 일꾼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70년대 어느 해 성 니콜라우스 겨울 축일 다음날이었다. 교구에선 축제가 열렸다.
95p.
70년대라, 뭐 50여년 전이군. 그당시에 우리나라는 새우깡, 바나나맛우유이 나왔던가. 그쪽나라는 후루시쵸프인가 브레즈네프인가. 어라, 톨스토이는 러시아 사람 아닌가. 하고 보니 1870년이었습니다.
150년전의 이야기였습니다. 옛날 이야기인데 전혀 어색하지 않고 글이 흘러갑니다. 인간들의 마음과 죽음을 설명하는 거라 그럴까요.
중얼중얼 이야기를 끌고가는데 묘사력이 대단합니다. 마치 영화를 보듯이 장면이 눈앞에서 보이는 것같이 느껴집니다. 마지막에 죽어가는 인간을 앞에 두고 생명을 살리려는 간절함이 안타깝습니다.
그에게는 자기가 니키타고 니키타가 자기이며, 자기생명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니키타 안에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는 청각을 집중하고 니키타의 숨소리를, 심지어 코 고는 소리까지 듣는다. ‘살아 있구나, 니키타. 그것은 나도 살아 있다는 뜻이야.‘ 그는 환희에 젖어 속으로 말한다.
…
이미 그를 소리 내어 부르던 사람의 부름을 다시 듣는다. ‘가요, 가!‘ 그의 전 존재가 기쁨에 차서 상냥하게 말한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자유롭고, 그 무엇도 자기를 더 이상 붙들지 못한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이미 바실리 안드레이치는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다.
162p.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해주는 것이 결국 삶을 이어간다는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어떤 죽음이 값진 희생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톨스토이는 1828년 귀족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1828~1910) 두 살 때 어머니를, 아홉 살에 아버지를, 14세에 후견인인 큰고모를 여읩니다. 27세에 셋째 형이, 31세 때는 맏형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항상 죽음이 근처에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1886년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씁니다. 59세에 저술한 것입니다. 러시아의 평균연령이 어떤지 몰라도 그정도면 인생의 마지막 자락에서 죽음을 정리하는 기분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20여년을 더 살았습니다)
처음은 이반 일리치의 부고 기사에서 시작합니다. 장례식에 참가하고 위로를 건네고 미망인의 고충을 들어줍니다. 그리고는 게임을 하러 갑니다. (이 대목이 참 인상적입니다. 죽은 사람은 죽은거고, 산 사람은 삶을 살아가는 거죠. 그것이 비록 게임이라도...)
장면은 다시 이반 일리치의 인생이 펼쳐집니다. 결헌을 하고 계속 성공하여 고위직 판사까지 올라간 이반 일리치는 더이상 권력을 구가하지 못하고 병상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얼마나 억울할까요. 이제 모든 것을 누릴 시점에서 눈앞에 죽음이 다가왔습니다.
‘신장의 문제가 아니고, 맹장의 문제도 아니고, 삶 그리고 … 죽음의 문제야. 그래, 삶이었어. 그리고 떠나는구나, 내게서 떠나는구나. 그런데 난 그걸 막을 수 없고. 그래, 날 속일 필요가 있을까? 내가 죽어가는 것이 나 빼고 모두에게 분명한걸. 문제는 몇 주, 며칠이 남았느냐는 거잖아. 어쩌면 지금 당장일 수도 있고, 한때는 빛이 있었지만, 지금은 온통 어둠뿐이구나. 한때 나는 여기 있었는데 지금은 그리로 가겠지! 어디로 가는 걸까?‘ 한기가 엄습했고, 호흡이 멈췄다. 오로지 심장 고동치는 소리만 들렸다.
‘내가 없어진다면, 무엇이 있을까? 아무것도 없겠지. 내가 없다면, 나는 어디 있을 것인가? 이것은 정말로 죽음인가? 아냐, 나는 싫어.‘ 그는 벌떡 일어나 양초에 불을 붙이려고 떨리는 손으로 더듬다가 초와 촛대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는 다시 베개 위로 쓰러졌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아무 상관 없어.‘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어둠을 바라보며 속으로 말했다. ‘죽음? 그래, 죽음이야. 그런데 그들은 아무도 몰라.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안타까워하지도 않아.‘
54p.
대단한 흡입력아닙니까. 다른 이의 죽음의 순간에 같이 빠져들어갑니다.
죽음에 대한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마지막의 주인공처럼 체념하고 인정하는 기분도 들고, 어떻게든 안아프게 조금이라도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죽지 않고 죽음에 대한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이 행복한 독서였습니다.
뒷부분에 번역하신 윤우섭 교수님의 해제가 훌륭합니다. 작품들의 뒷이야기와 평가들을 깔끔하게 정리해줘서 충분한 정보로 만족감을 줍니다. 게다가 해설, 요약, 정리를 해서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덤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뭔가 번역가의 자신감이 느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