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한 순간들 - 사루비아 다방 티 블렌더 노트 ðiː inspiration 작가노트
김인 지음 / 오후의소묘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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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블렌더'라는 직업은 낯설다. 그러나 무언가에 빠져있는 사람에게서는 익숙한 향기가 난다. 무언가 사랑하는 일이 있다면, 그로인해 나의 삶은 무한히 확장된다. 반대로 나의 모든 순간들은 그 무언가, 한 점으로 한없이 수렴되기도 한다. <고유한 순간들>에는 티블렌더 김인의 '차'로 인해 확장된 삶의 고유한 순간들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의 작업노트를 읽고 또 그의 차를 마시는 순간 나는 알아챘다. 그 모든 고유한 순간들이 '차' 속에 한없이 수렴되었음을.

맑디 맑은 또르르르르르, 차 따르는 소리는 술의 똘똘똘똘과 꼴꼴꼴꼴과는 또다른 매력을 가진다. 수줍게 우러나는 차의 향미를 후우-- 꼴깍 느끼는 순간 나의 삶이 또 한번 확장됨을 직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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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임 - 오은 산문집
오은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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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 시인은 낭독회에서, 북토크에서, 길가다가, 카페에서, 미술관에서 그렇게 우연히 마주쳤다. 그는 나에게 주인공이 아니었지만 여기저기 불쑥 등장하는 조연들처럼 친근했다. 그 친밀함으로 한달에 가까운 시간동안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다. 오은 시인이 던진 질문에 나의 수많은 밤들이 채워졌다. 

지난 몇 개월, 코로나로 인해 마음의 우울감이 쌓여갔다. <다독임>을 읽으며 시인이 내던진 단어 하나하나가 내게 질문이 되어 나의 기억을 불러 일으켰다. 무엇보다 내 마음 속에 켜켜이 쌓아두었던 우울을 하나씩 꺼내주었다. <다독임>을 읽는 건, 과거의 내가 되어보는 일이었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나를 새겨보는 일이었다. 코로나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그 우울의 정체는 실은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은 시인과의 대화는 내 마음에 난 구멍을 채워주기도 했고, 불안과 걱정을 덜어 빈틈을 만들고 여유를 찾아주기도 했다. 그리고 내 안의 부정적 감정을 일상의 반짝임으로 바꾸어 주기도 했다. 

표지의 소년이 애착 인형을 품고 있는 것처럼, 매일 이 책을 품었다. 이 시간들만큼은 나에게 오은 시인은 주인공이었다. 도닥이는 손과 다독이는 마음을 고스란히 전해준 시인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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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자유 - 김인환 산문집
김인환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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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도를 처음 펼쳐들었을 때, 그 웅장함에 반하게 된다. 지도를 들여다 보면 볼 수록 각 나라들의 생김과 위치가 눈에 들어온다. 익숙한 곳부터 낯선 곳까지. <타인의 자유>는 하나의 지도다. 저자 김인환 선생이 어쩌면 평생에 걸쳐 그려놓은 공부의 흔적, 책의 지도가 눈 앞에 펼쳐진다. 

한 권의 책이 가지는 의미는 그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닌, 책들이 다른 책들과 맺는 무수한 관계 안에 있는 것(30p)이다. 그 관계들 속에서 우리는 '맥락'을 파악하게 된다. 맥락은 광장과도 같아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선 방향을 정하고 길을 선택하는 가지치기를 해야한다. 그렇게 그려가는 것이 책의(공부의) 지도다. 

<타인의 자유>는 문학, 인물, 철학, 예술, 정치, 경제까지 광범위한 분야를 다룬다. 책을 처음 접하게 되면 그 웅장함에 당황하거나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한 권의 책이 하나의 지도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즐거워진다. 그리고 김인환 선생이 그려놓은 지도의 맥락을 짐작케 되는 순간 가슴이 뛴다.

모든 사람은 서로 다른 지도를 그릴 것이다. <타인의 자유>는 하나의 견본이다. 모범답안이 아니라 견본이라 말하는 까닭은, 그 어떤 지도에 정답은 없기 때문이다. 김인환 선생은 <타인의 자유>라는 제목은 로자의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유'라는 말에서 따왔다고 밝힌다. 나는 이 책을 '모든 사람들이 서로 다른 지도를 그릴 자유'라 해석해본다. 

나의 책 지도는 어떤 방향으로 그려지고 있을까. <타인의 자유>와 같은 멋진 지도를 만들기 위해 지금 갈 길과 이제 할 일에 집중하며 걸어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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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 - 박연준 산문집
박연준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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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쪼록 잘 사는 일이란 마음이 머물고 싶어하는 것에 대해, 순간의 시간을 온전히 할애해주는 것일지 모른다. 시간을 '보내는 것'이 삶이라면 될 수 있는 한 '잘 대접해서' 보내주고 싶다. (81p)

 

 

쏴아,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고 서있었다. 흐르는 눈물은 감출 수 있었지만, 흠뻑젖은 몸의 흐느낌은 숨길 수 없었다. 속으로만 울어대던 눈물에 마음의 시소가 기울어졌다. 나의 눈물은 무겁고 무거워 기울어진 시소의 한쪽은 다시 올라갈 줄을 몰랐다. 그럴수록 겉으로 보이는 시소의 반대쪽은 가볍게 올라갔다. 

 

 

마음이 자꾸만 한쪽으로만 기울어져 있을 때, 나는 <소란>을 만난다. 마음을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마음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기 위해서가 아니다. 기울어져도 괜찮아, 눈물을 감출 필요는 없어, 라는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다. 

 

 

<소란>만큼 솔직한 글이 있을까. 습하고 어두운, 잔뜩 웅크렸다가 휘청거리는 한 사람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작은 시인을 꼬옥 안아주고 싶어진다. 그러나 어느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시인의 큰 가슴에 안겨 울고 있다. 괜찮다고 위로받고 있다. 그런 책이 <소란>이고, 그런 사람이 '박연준 시인'이다.

 

 

내 소란스러운 마음에 가만히 놓여진 소란,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가!

 

 

무엇보다 나는 눈물이 차올라, 저절로, 쏟아지는 일을 사랑한다. (108p)

 

아무쪼록 잘 사는 일이란 마음이 머물고 싶어하는 것에 대해, 순간의 시간을 온전히 할애해주는 것일지 모른다. 시간을 ‘보내는 것‘이 삶이라면 될 수 있는 한 ‘잘 대접해서‘ 보내주고 싶다. - P81

무엇보다 나는 눈물이 차올라, 저절로, 쏟아지는 일을 사랑한다.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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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일곱 살 때 안 힘들었어요?
정용준 지음, 고지연 그림 / 난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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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때문에 바쁘기만 한 아빠, 밤이면 울어대는 동생 라라, 그런 라라를 돌보느라 지친 엄마 그리고 나나. 라라를 지키기 위해선 그림자 괴물을 물리쳐야 한다. 혼자의 힘으론 부족하다. 아빠의 도움이 필요하다. 아빠를 꿈의 나라로 초대하는 나나. 나나와 치즈 그리고 아빠, 나나 탐험대 출발!!

담다담담다담다다다다담! 담다담!

 

나나를 통해 꿈의 나라를, 나나의 나라를 보게 된 아빠는 그 어느 때보다 나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쓸쓸하고 왠지 모르게 슬픈 아빠의 나라를 본 나나는 아빠를 도와주고 싶다. 아빠와 함께 아빠의 기억 상자가 가라앉아 있는 바다로, 나나 탐험대 다시 출발!! 담다담!

 

p.51 "바다예요. 기억과 소망과 마음이 녹아 있죠."

 

p.77 많은 사람이 어른이 되기 전 나쁜 기억을 바다에 집어넣어요. 하지만 기억을 상자에 넣고 바다에 던지면 꿈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모두 기억할 수 있는 아이의 마음을 점점 잊어버리게 된답니다. 꿈의 세계는 희미해지고 현실 세계만 또렷해지죠. 나중엔 꿈을 꿔도 아침이면 기억할 수도 떠올릴 수도 없는 어른이 된답니다. 바다에 상자를 집어넣었다고 해서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에요. 상자가 부서져 물이 새면 기억이 바다에 스며들거든요. 파도가 치는 바다 앞에 서 있으면 옛날 기억이 희미하게 나는 건 바로 그런 이유지요. 때론 바다가 수증기로 변해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기도하기 때문에 눈이 오거나 비가 내리면 옛날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답니다.

 

p.124 "모든 기억은 소중해. 그러니까 바다에 집어넣지 마. 라라는 이마를 다쳤지만 언니하고 즐겁게 놀았던 좋은 기억으로 갖고 있을 거야. 그리고 아빠도 엄마도 때론 힘들어서 나쁜 말 하고 무섭게 대할 때 있지만 사실은 사랑하니까 그런 거야. 앞으로는 그런 일 없도록 노력할 테니까 아빠와 엄마를 계속 기억해줘."

 

나는 열 살 이전의 기억이 많지 않다. 사실 거의 없다. 수많은 기억들을 상자에 넣어 바다로 던졌던 걸까, 하루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얼마나 단단한 상자길래, 희미하게 떠오르지도 않는 걸까. 상자를, 열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열어본 기억의 상자에는 그동안 기억하지 못했던 아픈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예쁘고 아름다웠던 좋은 기억이 함께 있었다. 슬픔에 눈물을 흘리지만, 그 기억을 계속 붙들고 싶다. 나 역시도 내 기억의 상자를 열어 그동안 놓치고 살았던 좋았던 기억들을 떠올리고 싶어졌다, 비록 눈물나게 슬픈 기억과 함께일지라도. 그래서 조용히 외워본다, 담다담!

 

돌이켜 생각해 보세요, 그 길이 그렇게 어렵기만 했나요? 아름답지는 않았나요? - 헤르만헤세, <데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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