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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이야기 - 생물학적 기능에서 사회적 상징까지 목에 대한 모든 것
켄트 던랩 지음, 이은정 옮김 / 시공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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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원]

나의 목뼈는 원래 가져야 할 곡선을 잃어버렸다. 일자목과 거북목을 지나 이제는 버섯목이라 부르게 된 이 뒤틀린 구조는, 내 몸에서 가장 취약한 부위가 되었다. 목에서 시작된 통증은 머리로, 어깨로 번져 결국 신체의 균형감각을 무너뜨린다.

켄트 던랩의 『목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이 통증의 원인을 찾아가듯 책장을 넘겼다. 생물학자의 시선으로 쓴 이 책은, 단순히 목의 구조를 설명하는 과학서가 아니다. 던랩은 목을 ‘머리와 몸을 잇는 짧은 길목이자, 인간의 존재가 드러나는 상징적 기관’으로 바라본다. 그는 기린의 길어진 목에서 생명의 진화를 읽어내고, 인간의 목에서 언어와 권력, 사랑과 폭력의 역사를 찾아낸다.

<목 이야기>를 통해 목이라는 부위가 얼마나 많은 감정의 흔적을 품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분노를 삼킬 때, 울음을 참을 때, 사랑을 속삭일 때 우리는 모두 목을 통과한다. 나는 내 목의 통증이 단지 자세의 문제만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누적된 긴장, 억눌린 말, 삼켜버린 감정들이 그 안에 고여 있는 듯했다. 던랩이 말하듯, “목은 생물학적 관절이자 감정의 경첩”이다.

책의 후반부에서 그는 ‘목을 조르는 권력’을 언급한다. 목은 칼날이 닿는 자리이자, 왕관이 얹히는 자리다. 보호받아야 할 부위이면서 동시에 사회가 통제하고자 한 지점이다. 나에게 그 문장은 신체적 은유로 다가왔다. 과로와 긴장이 목을 짓누륵고, 스스로의 기대가 내 어깨를 누를 때, 나는 내 안의 권력이 나 자신을 통제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되묻게 된다.

『목 이야기』는 결국 한 개인의 목이 얼마나 많은 세계를 품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나에게 이 책은 통증의 해부학이자, 인간에 대한 조용한 성찰로 남았다. 나는 여전히 버섯목을 안고 살아가지만, 이제 그 목을 조금은 다르게 바라본다. 나의 가장 연약한 부분이자, 나를 세상과 연결하는 가장 단단한 부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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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초록 천막 2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11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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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스탈린 사망 이후 어지럽고 혼란한 러시아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세 친구(일리야, 미하, 사냐)를 중심으로 촘촘하게 엮인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다.

1950년대 스탈린의 죽음에서1990년대 시인 브로드스키의 죽음까지. 40여년의 세월동안 많은 죽음이 등장한다. 제목인 ‘커다란 초록 천막’의 천막 역시 죽음을 뜻한다. 우리는 많은 죽음 사이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인생을 본다. 같은 시대, 다른 환경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

인물 하나하나가 촘촘하게 엮이며 거대한 숲을 이룬다. 그 숲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어느새 한 명 한명이 마음 속에 남게 된다. 오래도록.

오랜만에 정말 푹 빠져 읽을 소설이다. 문학부터 음악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보여주는 폭넓은 역량에 감탄하며, 어느 인물 하나 동떨어지지않은 세심함에 놀라며 읽었다. 무엇보다 러시아 역사 속 인물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격동의 역사 속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선택들이 지극히 이성적이게 보이지만 무엇보다 본능적이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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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초록 천막 1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10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승주연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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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처럼 얽힌 인물들의 삶을 따라가다보면 모두가 인생의 주인공이고, 그냥 일어나는 일은 없다. 책장을 넘길수록 촘촘해진 그물 속에서 헤어나오기 힘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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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 이야기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4
엘리자베스 개스켈 지음, 박찬원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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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서 고딕은 초자연적 현상과 같은 경이로움, 떠도는 유령의 두려움, 현재를 엄습하는 과거의 공포를 이야기한다.

앨리자베스 개스켕의 <고딕이야기>에는 7편의 고딕단편소설이 실려있다. 마치, 너 이 이야기 들어봤어?로 시작되는 괴담들을 전해듣는 기분이다. 우리가 아는 괴담을 또올려보자. 어딘지 모르게 음산하고 두려운 느낌은 '이야기의 진실'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실종>은, 어느날 갑자기 실종된 남자들에 대한 괴담이다. 여행도중 흔적도 없이 사라진 남자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하지만 이야기의 진실을 들여다보면, 여행 중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처자식을 버리고 도망가 다른 여자와 결혼해 살아가는 파렴치한 남자가 존재할 뿐이다. 우리가 진짜 두려워해야하는 건 무엇일까.

앨리자베스 개스켈이 전하는 고딕소설 속 진짜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는 그 이야기들 속에서 19세기 당시 여성들과 마주한다. 이야기 속 인물들, 이야기를 읽고 있는 우리들. 과연, 누구에게 무서운 이야기일까?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두려움은 물러날까, 다가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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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하여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3
율리 체 지음, 권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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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팬데믹에 집중하는 2-3년 사이, 우리 사회에 혐오가 얼마나 더 짙어졌는지 이번 대통령 선거를 치르며 숨막히게 깨달았다. 분명 코로나 이전부터 수많은 약자에 대한 혐오는 존재했고 팬데믹 시대에도 마친가지로 우리는 혐오에 노출되었지만, 계속 확산되는 바이러스의 공포, 끝이 없을 것 같은 불안과 더불어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빼앗긴 채 살아가다보니 세상에 존재하는 혐오는 무감각해졌다.

율리 체의 <인간에 대하여>는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며 팬데믹의 상황보다 더 눈에 밟히는 건 독일 사회에 존재하는 인종차별 무감증이었다. 시리아 전쟁과 난민에 대한 독일 정부의 입장과 그에 반하는 극우세력들의 폭력적 시위까지. 주인공 도라를 둘러싼 사회와 인물들간의 관계를 통해 율리 체는 우리가 이러한 감각을 잃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 소설은 비극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마법 같은 단어가 있기 때문이다. 봉쇄령이 내려진 도시와 연인 로베르트로부터 떠나 브라켄으로 간 도라는 극우세력 이웃들과 마주하고, 그들과의 관계를 만들어간다. 특히 앞집남자 고테와의 공존은 한국드라마와 같은 전개와 결말이 이어진다(재미지단 이야기😜).

팬데믹 시대에도 불구하고, 각종 혐오와 폭력에도 불구하고 도라는 또다시 일상을 살아갈 것이고, 계속 나아갈 것이다. 그렇게 삶은 지속될 것이다. 우리의 삶이 어떤 상황에서든 지속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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