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선생님, 항우울제 대신 시를 처방해 주세요 - 오늘도 잘 살아 낸 당신의 마음을 토닥이는 다정한 심리학 편지
성유미 지음 / 서삼독 / 2023년 6월
평점 :
꽤 오래전 미술심리상담사로 활동하는 지인에게 미술심리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정서가 불안한 아이들 혹은 성인들에게 간단한 그림을 그리고 전문가가 그 그림을 해석해 주는 모습을 TV를 통해 본 적이 있었는데 방법은 유사했다. 도화지에 사람과 나무, 집 등을 그리고 나서 나의 성격이나 인간관계 등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참고로 내 심리상태가 불안했던 것은 아니다.)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통해 드러나는 나의 현 상태와 느끼는 감정을 다독이면서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게 만든다는 것이 꽤나 흥미로웠다. 그렇다면 심리학과 시가 결합된 치료는 어떠할까. 오늘도 잘 살아 낸 당신의 마음을 토닥이는 다정한 심리학 편지라는 부제로 ‘시’ 처방전을 만날 수 있었다.
국제 정신분석가이자 정신분석 클리닉 원장인 저자가 진료실을 방문하는 환자들이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 19가지에 대한 답을 상담 경험과 진단 그리고 그에 맞는 ‘시’를 소개하면서 위로와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우울 증세 치료 약물인 항우울제 대신 ‘시’라는 매개체로 불안정한 마음이 치료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속에 떠오르는 느낌을 운율이 있는 언어로 압축하여 표현한 글들이 지친 관계를 회복하고, 서로를 신뢰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책은 총 19개의 장과 별도의 2개장으로 되어 있다. 'Letter'라고 명명한 것이 마치 라디오 프로그램 속 고민상담을 해주는 코너처럼 느껴졌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엽서에 손글씨로 꾹꾹 눌러쓰고 빨간 우체통을 통해 방송국으로 보냈는데 말이다.
여하튼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끝까지 해낸 일이 하나도 없는 끈기의 문제부터 낯선 사람과 어울리기 어렵다, 번아웃, 외로움, 꿈에 관한 사연 등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을 서두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처방을 내려준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개인 노트와 폴더에 기록되어 있던 시들을 바탕으로 부합할 만한 시를 소개해 준다. 시험문제처럼 함축적 의미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 아닌 고민과 어울리는 내용들이라 어렵지 않았고, 책 내용 또한 딱딱하지 않게 살짝 힘을 뺀 듯하게 다가왔다.
'당신 자신의 길잡이는 부모도, 상사도, 그 누구도 아닌 당신 자신이어야 해요. 당신의 생각과 느낌이 아무리 보잘것없게 여겨져도 그것이 당신의 내면 세계에서는 '정중앙'에 위치해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그럴 만한 자격이 충분합니다.' p.98
'나의 연약함, 부족했던 부분, 결핍을 알아주게 된다면 그 자체가 당신이 이전보다 성장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부끄럼 없이 나를 안아 줄 수 있다면, 나의 부족하고 못난 부분까지 품어줄 수 있다면, 다 큰 거예요. 그러면 한 번 더 말해주세요. "이야, 많이 컸네!" 그리고 한 번 더 자신을 꼭 안아 주세요.' p.126
책 내용 중에 '그냥 이유 없이 싫은 사람이 있어요'를 읽으면서 유독 공감이 많이 되었다. 회사 생활하면서 업무로 부딪히면서 이상하게 불편하게 느껴지고 더 나아가 싫어지게 된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사람도 내가 마음에 안 들겠지만..)
저자는 이를 일종의 '인간 알레르기' 반응으로 문제를 살펴보고 있다. 내 마음대로 제거하거나 통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반응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방법을 찾으라고 제안한다. 아름다운 것, 귀여운 것, 웃음이 나오게 하는 것을 찾아 마음을 달래주라고 하니 나의 예민함을 완화하고 시선을 돌릴 수 있는 소소한 것을 찾도록 해봐야겠다.
책 후반부에는 '추신'이라는 내용으로 '당신에게 조금 더 전하고 싶은 이야기', '항우울제 대신 힘이 되어 줄 시 처방전 다시 읽기'가 이어진다. 일부 발췌였던 본문의 시를 전문으로 다시 읽어보면서 곱씹어 볼 수 있는 코너가 되겠다. 평소 '시'에 대해 다소 난해하고 어렵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책을 통해 치유로서의 시를 마주하고 처방받은 기분이 들었다.
많은 분들이 심리학에 따스한 시 한편 같이 드시면서 저자의 바램과 같이 잠시나마 괴롭고 지친 마음을 털어 내고 삶의 생기를 얻어 가시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