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깟 취미가 절실해서 - 퇴근하고 낭만생활
채반석 지음 / 꿈꾸는인생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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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년도 더 된 일이다. 주인집 형이 애써 만든 30센티 정도되는 로보트이었나. 주인집 할아버지가 다 큰 놈이 그런 거 만들고 있냐면서 동생주라고 하던 그날의 기억. 건네받은 건담 로봇과의 첫 조우였다. 

어릴적 학교 앞 문방구에 가면 뽀얗게 먼지 쌓인 다소  색바랜 박스들이 반겨주었다. 한창 유행하던 건담 시리즈를 비롯, *카데미과학 '베레타' 같은 BB탄 장난감 총류나 장갑차, 탱트 등 조립 완구였다. 피규어나 R/C카 등은 그 당시에는 상상도 못할 고가의 가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이 취향을 간직하고 즐기는 성인을 뜻하는 키덜트 문화는 앞서 나의 예처럼 어른이 아이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을 '철이 없다' 식의 부정적인 시선이 컸다. 하지만 이제는 취미이자 놀이 더 나아가 하나의 문화로써 인정받으며 많은 사람들이 낭만을 추억하며 적극적으로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있다. 나 역시도 레트로 감성이 몽글몽글 피어나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플라스틱 조립 로봇을 좋아한 아이가 로봇 프라모델 만들기를 좋아하는 어른이 되었다. 어느 덧 로봇 장난감 수집 생활 7년차라고 하는 저자가 이야기하는 취미생활과 로봇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에세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음과 동시에 자신과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과의 유대감 형성, 그리고 아주 비싼 로봇이 아니면 비교적 적인 가격으로 지속적인 취미 활동을 하고 있는 저자의 모습들을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프라모델에 대한 소개, 구입, 조립, 도색, 장비 관련, 중고거래, 보관 등 브런치에 올렸던 장난감 리뷰 글을 근간으로 저자의 경험, 생각들을 특유의 위트함을 장착한 글들로 페이지를 채워나간다. 브랜드, 명칭 등 생소한 용어들에 대해서도 쉽게 설명해준다. 수요가 한참 부족한 공급성 글이라고 저자는 말하지만 내가 모르는 타인의 세계를 엿볼 수 있게 하는 글은 재미있는 법. 분분명 관심을 가지는 독자들도 많으리라. 


'사회의 눈치를 보는 건 낭만의 고윳값이다. 낭만을 낭만으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용함’이고, 현대 사회에서 무용함의 자리는 무척이나 비좁다. 대체로 낭만이라 지칭되는 것들에선 쓸모라곤 볼 수 없고, 선택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도 찾기 어렵다. 

낭만은 쓸모를 요구하는 사회에선 설 자리가 없는 단어다. 낭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취급도 매한가지다. 하지만 낭만은 이 무용함의 자리에서 빛이 난다. ‘아니어야 하는’ 수많은 이유들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선택하게 만드는 마음의 끌림은, 결국엔 가장 앞에 선다.' p.21


'취미에 오롯하게 몰입하면서 생각을 비우고 일과 거리 두는 시간이 길게 생기니 오히려 일에 대한 몰입도와 집중도가 높아졌다. 조립하는 시간 동안 내 책상은 조립에 수반되는 각종 부산물로 어지러워졌으나 머릿속만은 말끔하게 청소된 책상 같아졌다. 일이 일상생활을 야금야금 잡아먹는 걸 멈추게 하고 일과 적절하게 거리를 두니 일과 조금 더 친해질 수 있게 된 건 덤이다.' p.66


''약간'이 중요하드는 걸 사회생활을 할수록 체감한다. 다들 비슷한 와중에 조금 더 나은 부분을 만들려고 애쓰는 쪽이 조금 더 좋은 성취를 얻어 낸다. 작은 차이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다 된 것 같은데'를 참고 조금 더 디테일을 다듬어보는 것. 성격이 급해 '이 정도면 다 됐지'하고 넘어가는 나를 다잡고 순간의 지루함과 질림들을 눌러 보려고 한다.' p.75~76


'좋아하는 걸 보면 체면도 잊게 되는 것이겠지. 남의 시선이야 아무렴 어때, 가끔 부끄러워지더라도 매사 진심일 때가 좋다. 나이를 먹고도 저렇게 마냥 반짝반짝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p.117


태생적으로 아끼는 물건에 대해서는 한없이 과보호하는 성향이 있다. 닳을까봐 어디 상처날까바 꽁꽁 숨겨 놓는다. 그러다보니 그 물건의 지닌 진짜 효용성은 잊은 채 시간이 흘러 애정이 식어버린 나를 발견한다. 저자 이야기처럼 가까이 두며 자주 사용했던 물건들에 더 애정을 가지듯 잃은 게 무서워서 그저 가지고 있지 말고 활용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취미에 절실함이 아닌 취미에 진심인 저자의 글을 통해 옛 추억과 함께 잠시 잊고 지냈던 나의 취미생활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들 퇴근 후 어떤 취미활동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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