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 어느 지방 방송작가가 바라본 노동과 연대에 관한 작은 이야기
권지현 지음 / 책과이음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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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한다는 것은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어디 말할 곳도 기댈 곳도 없어 외면받던 삶에서 공감과 이해가 있는 삶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어느 지방 방송작가가 바라본 노동과 연대에 관한 작은 이야기가 에세이 형식의 글로 풀어가고 있다. 

'노동' 과 '연대' 라는 단어에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닐 까 생각했지만, 20년차가 방송작가가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방송으로 전하면서 느끼는 뿌듯함과 즐거움 그리고 공동체적 연대와 희망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을 담담하게 적어내려가고 있다.


예전에 읽은 매일 오프닝을 쓰는 20년 차 라디오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에 관한 에세이는 라디오 작가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 생각, 추억들을 담으며 라디오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면, 이 책에서는 일하면서 느끼는 감정들과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소신있게 일하는 현장의 모습들을 그려내고 있다. 

방송국이라는 공간이 주는 화려함 뒤에는 가혹한 노동환경과 열악한 처우가 있었다는 것을 글을 통해 마주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과 제일 큰 고용불안이라는 그늘이 숨어있음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었다. 노동자로서 보호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방패막인 계약서 작성없이 방송국의 말 한마디에 해고되는 작가들이 존재하고, 특히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 방송작가들은 더더욱 본인들의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울 듯 싶었다. 


'누군가는 1등만 바라보고 좀 더 화려하고 큰 무대와 세상을 만들어길 바랄지 모르지만, 나는 묵묵히 세상의 저변을 지키는 많은 이들의 힘을 믿는다. 지방방송의 역할이란 그런 믿음을 지켜가는 것이고, 그런 방송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글을 쓰는 나는 비록 지방 방송작가이지만, 그래서 참 즐겁다.' p.41


'시간이 쌓이고 쌓여 결정이 되기까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아 많이 흔들리고 의심하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시간 속을 걸어가다 보면 우리 모두는 먼지가 모이고 모여 별이 되듯 각자의 자리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되어 있지 않을까. (중략) 오늘을 살아가는 모두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다.' p.69~70


'진짜 중요한 건 눈에 끼는 안경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마음의 안경일지도 모른다. (중략) 모두가 같은 안경을 끼고 한곳을 바라보며 갈 필요는 없는 것 아닐까. 각자의 삶이 다르듯 저마다 바라보는 풍경도 다른데, 굳이 남의 것까지 보려 애쓰면서 살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자신에게 맞는 안경으로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가끔씩 내 마음을 돌아보며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한 일 아닐까. 그렇게 나는 지금 이 순간 끼고 있는 안경을 다시 고쳐 쓰고 제대로 삶을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p.114~115


'나는 어디서 누구와 일하건 더 많은 사람들이 노동의 고단함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엮이길 바란다.' p.242


방송을 통해서 내가 누군가를 도와줬을 때의 보람과 열악하지만 가장 익숙한 구조라는 양날의 검을 안고 살아가는 방송작가들이 관행이란 이름으로 기본도 지키지 않는 업계에서의 고군분투를 책을 통해 여실히 느낄 수가 있었다.  

불안한정한 자리 때문에 고민하지 않고, 더 좋은 원고와 방송을 먼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뒤에 오는 작가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제법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는 중인 저자의 바램처럼 프리랜서와 근로자라는 사이에서 편견과 차별을 받지 않길 바라며 처우 역시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연락이 소원해진 서울 소재 대학 국문과를 나와 방송작가로 일하던 후배가 있다. 라디오 작가로 밤낮이 바뀌어 일하고, 봄, 가을 개편이면 프로그램이 갑자기 없어질 까봐 노심초사하며 청취율을 신경쓰던 모습들이 생각났다.

글에 대한 애정과 더불어 방송이 재미있다고 말하던 그 후배가 아직도 이 일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맡은 자리에서 본인의 목소리를 내고 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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