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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게 흐르는 ㅣ Dear 그림책
변영근 지음 / 사계절 / 2026년 1월
평점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매일 아침 만원 버스와 지하철에 몸을 싣고, 하루 종일 모니터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사는 게 우리의 일상입니다.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으신가요. 오늘은 글자 하나 없이 오직 그림만으로 꽉 막힌 가슴을 뻥 뚫어주고, 동시에 서늘한 질문 하나를 던지는 책, 변영근 작가의 낮게 흐르는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사계절 출판사에서 나온 이 책은 표지에서부터 압도적인 초록빛을 뿜어냅니다. 우거진 숲과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 그 한가운데 서 있는 한 남자의 뒷모습. 표지만 봐도 벌써 숲 냄새와 물비린내가 훅 끼쳐 오는 것만 같습니다. 만화와 그림책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래픽 노블 형식으로, 대사가 거의 없어서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보다는 그림을 응시하는 시간이 더 긴 책입니다.
책장을 넘기면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꽉 막힌 도로를 지나, 차를 타고 굽이굽이 산길을 들어서는 모습. 도시의 회색빛이 점차 짙은 녹음으로 바뀌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저도 모르게 깊은 숨을 내쉬게 됩니다. 마치 제가 차 뒷좌석에 타고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작가님의 수채화 톤은 맑고 투명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축축한 습기까지 느껴질 정도로 사실적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단순히 아름다운 자연을 찬양하는 책이 아닙니다. 계곡에 도착한 사람들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대나무 숲을 지나고, 바위를 밟고 물가로 나아가는 사람들. 그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스마트폰과 카메라가 들려 있습니다.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충격을 받았던, 그리고 한참을 머물렀던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한 남자가 스마트폰으로 폭포를 찍는 장면입니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풍경을 담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 화면이라는 사각 프레임을 통해서만 자연을 바라봅니다. 심지어 어떤 컷에서는 스마트폰이 남자의 얼굴을 완전히 가려버립니다. 마치 그 사람의 머리가 스마트폰으로 대체된 것처럼 말이죠.
눈앞에 장엄한 폭포가 쏟아지고, 차가운 계곡물이 흐르는데 우리는 그것을 온몸으로 느끼기보다 인증샷을 남기는 데 더 열중하고 있지는 않은지. 네모난 액정 속에 갇혀 정작 진짜 세상과는 단절된 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작가는 아무런 훈계도 없이, 그저 스마트폰을 든 우리의 모습을 건조하게 보여줌으로써 묵직한 반성을 이끌어냅니다.
물놀이하는 장면들은 참 인상적입니다. 사람들은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지만, 여전히 시선은 엇갈립니다. 튜브를 타고 떠다니는 사람, 바위에 앉아 멍하니 있는 사람, 그리고 끊임없이 셔터를 누르는 사람. 물은 그저 낮게, 끊임없이 흐르며 그 모든 소란스러움을 조용히 감싸 안습니다. 책의 제목인 낮게 흐르는은 계곡물일 수도 있고, 우리 삶의 저변에 흐르는 시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버스 안의 풍경은 묘한 쓸쓸함과 안도감을 동시에 줍니다. 어둑어둑해진 창밖으로 나무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고, 지쳐서 잠든 사람들의 모습. 화려한 휴가가 끝난 뒤 밀려오는 공허함 같기도 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해야 하는 우리네 현실 같아서 마음이 짠해지기도 합니다.
변영근 작가의 낮게 흐르는은 소란스러운 말로 설명하는 대신, 고요한 그림으로 말을 거는 책입니다. 글자가 없기에 독자는 자신의 경험을 투영해 이야기를 완성하게 됩니다. 책을 덮고 나면 마치 짧은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개운하면서도, 지금 내 손에 들린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싶어집니다.
휴식이 필요하신 분, 진짜 자연의 소리가 그리우신 분, 그리고 무엇보다 스마트폰 중독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진짜 본다는 것'의 의미를 찾고 싶은 모든 어른에게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올여름, 혹은 마음이 시끄러운 어느 날, 이 책을 펼쳐 그 서늘한 초록색 물결 속에 푹 잠겨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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