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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0km를 날아온 로아
추민지 지음 / 어텀브리즈 / 2025년 12월
평점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는 국제 연애를 다룬 에세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몇 장을 넘기자 곧 알게 됐다. 『7,300km를 날아온 로아』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가족의 시선과 걱정, 문화의 차이,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당하며 관계를 선택하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이야기는 남동생의 연인 로아를 처음 알게 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쿠르드스탄이라는 낯선 지역명, 중동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 그리고 지참금 같은 문화적 차이. 화자는 그 모든 불안을 숨기지 않는다. 괜찮은 척 포장하지 않고,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래서 이 책은 시작부터 솔직하다.
남동생은 미래 계획이 뚜렷한 인물이 아니다. 그렇기에 화자의 걱정은 더 커진다. 사랑만으로 충분할까, 현실은 감당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책 전반에 걸쳐 반복된다. 로맨틱한 감정보다 앞서는 것은 늘 생활과 책임, 그리고 가족이라는 현실이다.
로아가 한국에 오는 장면은 책의 분위기를 바꾸는 중요한 지점이다. 대구의 여름, 처음 만나는 가족 앞에서 화자는 결국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지 몰라 “하이”라고 말하기로 마음먹는다. 이 소소한 장면이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완벽하지 않아도, 서툴러도 관계는 그렇게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후 로아는 점점 한 사람으로 다가온다. 말투와 표정, 행동 하나하나가 글 속에서 살아난다. 특히 돌잔치 선물로 커다란 인형을 준비한 에피소드는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다. 실용을 중시하는 한국적 시선에서는 의아할 수 있지만, 로아는 말한다. 아기는 현금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인형은 기억할 거라고.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사랑의 방식은 다를 수 있어도 마음의 깊이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는 더 단단해진다. 문화도 언어도 다른 두 사람이 서툴게 부딪히며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결코 동화 같지 않다. 오히려 불안하고, 느리고, 자주 흔들린다. 작가는 말한다. 사랑을 시작하는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고. 때로는 꽃밭이 아니라 황무지에서 시작되기도 한다고.
이 문장은 이 책을 관통하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완벽한 출발이 아니라, 함께 버티는 시간이 관계를 만든다는 메시지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은 결국 다름을 인정하고, 기다리고, 설명하고, 다시 이해하려 애쓰는 일이라는 사실을 이 책은 담담하게 보여준다.
책을 덮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것은 로아의 사랑스러움보다는 화자의 변화였다. 처음에는 걱정과 의심으로 가득했던 시선이, 끝에 가서는 조심스러운 이해로 바뀌어 있다.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함께 가보겠다는 태도. 그 현실적인 선택이 이 책을 더 진짜처럼 만든다.
『7,300km를 날아온 로아』는 국제 연애의 성공담이 아니다. 오히려 다름을 견디는 연습에 대한 기록이다. 사랑 앞에서 한 번쯤 겁을 먹어본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가 조용히 마음에 닿을 것이다. 거리보다 먼 것은 편견이고, 그보다 더 긴 것은 이해의 시간이라는 것을 이 책은 분명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