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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민주주의를 경험한 나라 - 분열의 정치를 넘어 새로운 질서를 설계하는 시간 ㅣ 서가명강 시리즈 41
강원택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8월
평점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강원택 교수의 『벼랑 끝 민주주의를 경험한 나라』는 단순히 정치사를 기록한 책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민주주의의 현재와 미래를 성찰하게 만드는 정치적 경고장과도 같다. 책장을 펼치자마자 느껴지는 긴장감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닥친 현실을 되돌아보라는 강렬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저자는 한국 민주주의가 겪어온 지난한 여정을 돌아보면서, 그것이 얼마나 쉽게 위기에 놓일 수 있는지, 또 얼마나 치열하게 지켜져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읽는 내내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민주주의가 결코 완성형의 제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1987년의 체제 전환을 통해 마치 새로운 민주주의가 굳건히 자리를 잡은 것처럼 여겨왔지만, 실제로는 언제든 균열이 생기고 무너질 수 있는 불안정한 기반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책은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특히 최근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읽다 보면, 민주주의가 단순히 과거의 성취가 아니라 지금도 끊임없이 관리되고 보완되어야 할 과제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지점은 분열과 양극화의 정치가 민주주의를 얼마나 위태롭게 만드는가이다. 오늘날의 정치 현실을 돌아보면, 상대를 설득하고 협력하는 정치는 점점 사라지고, 대신 상대를 적대시하고 혐오를 부추기는 언어가 넘쳐난다. 저자는 이러한 정치적 양극화가 결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시민들을 냉소와 무력감에 빠뜨린다고 진단한다. 단순히 이념의 차이나 정당 간의 경쟁을 넘어서, 사회 전체를 두 갈래로 갈라놓는 적대적 구도가 굳어질 때, 민주주의는 더 이상 시민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책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힘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저자는 정치 제도의 개혁이나 헌법적 장치 못지않게, 정치 문화와 시민들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법과 제도가 아무리 잘 설계되어 있어도, 그 제도를 운용하는 정치인과 그것을 지켜보는 시민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공허한 껍데기에 불과하다. 결국 민주주의의 건강성은 제도와 문화, 그리고 시민의식이 맞물려 돌아갈 때 유지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또한 이 책은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졌을 때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질적 고민을 제시한다. 위기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그것을 개혁의 계기로 삼아야만 민주주의가 다시 제 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과거의 잘못을 탓하거나 상대의 책임으로 돌리는 방식으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으며, 냉정하게 문제의 근본을 바라보고 새로운 합의와 상상력을 통해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인상 깊었다.
개인적으로 읽으며 가장 크게 다가온 점은 ‘민주주의의 주인은 시민’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흔히 민주주의를 선거라는 절차와 동일시하거나, 정치인들이 다루는 전문적 영역으로만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저자는 시민이 참여하지 않는 민주주의는 껍데기에 불과하며, 민주주의의 생명력은 결국 시민이 끊임없이 감시하고 요구하며 토론하는 과정에서 살아난다고 말한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실제 우리의 일상 속에서 얼마나 민주주의적 태도를 실천하고 있는지 되묻게 되었다.
책을 덮고 나니,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것이 거창한 정치적 사건이나 대규모 개혁의 순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남았다. 서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타협과 협력을 통해 공동의 길을 찾아가는 작은 습관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여전히 깊은 갈등과 분열의 그늘 아래 있지만, 동시에 그 속에서 새로운 민주주의를 다시 설계할 기회도 함께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 책의 메시지는 무겁지만 희망적이다.
『벼랑 끝 민주주의를 경험한 나라』는 한국 현대정치의 굴곡진 역사와 민주주의의 성취를 되돌아보게 하는 동시에,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제시한다. 민주주의는 언제나 위기에 직면할 수 있으며, 그것을 지켜내는 일은 결국 우리 모두의 몫이라는 사실. 이 책은 그 단순하면서도 본질적인 진실을 다시금 환기시키며, 독자로 하여금 민주주의의 주인으로서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