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모든 순간이 화학으로 빛난다면 - 원자 단위로 보는 과학과 예술의 결
데보라 가르시아 베요 지음, 강민지 옮김 / 미래의창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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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이자 예술 기획자인 데보라 가르시아 베요가 쓴 책으로, 우리 삶에 스며든 과학의 언어와 감성을 섬세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책의 부제인 “원자 단위로 보는 과학과 예술의 길”처럼, 이 책은 과학과 예술, 일상과 감성, 사실과 기억의 경계에서 태어난 독특한 산문집이다.

책의 구성은 총 25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장은 일상적인 물건이나 풍경, 추억 속 장면을 중심으로 시작해 그 안에 숨은 과학 원리와 아름다움을 탐색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푸른 벨벳’으로 시작해 ‘붉은 벨벳’으로 끝나는 구조는 일종의 화학적 스펙트럼을 닮아 있으며, 독자는 색, 감촉, 향기, 기억, 그리고 원소의 언어를 따라가며 과학이 곧 삶이고 감정일 수 있다는 작가의 메시지를 천천히 받아들이게 된다.

가장 인상 깊은 챕터 중 하나는 첫 번째 이야기인 「푸른 벨벳」이다. 저자는 이 장에서 울트라마린 블루라는 안료의 역사와 그것이 지닌 문화적 상징성을 이야기하며, 개인적 기억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인다. 그녀가 어릴 적 할머니에게 선물 받은 파란 목걸이가 청금석으로 만들어졌고, 이 보석이 수세기 동안 화가들과 과학자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설명한다. 예술품에 사용된 색의 화학적 기원부터 바다 건너 전해진 안료의 이동까지, 단순한 색채 묘사 너머로 시야를 확장시킨다. 과학 지식과 감성이 이처럼 조화를 이루는 문장은 매우 드물다.

『일상의 모든 순간이 화학으로 빛난다면』은 과학 교양서이자 동시에 한 편의 아름다운 에세이다. 작가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닌, “사물의 원자를 상상하는 능력”을 독자에게 선물하고자 한다. 예컨대, 「바다에 맞서는 피난처」에서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다루며 환경 문제를 논하지만, 그 방식은 통계와 경고가 아니라 공감과 관찰이다. 바다를 바라보는 시선, 해양 생물의 입장이 되어보는 문장은 독자에게 책임감을 조용히 일깨운다.

또한 「립스틱을 바르는 엄마」, 「할머니와 순무 씻기」 같은 장에서는 물리적 세계와 정서적 기억이 맞닿는다. 화학 물질 하나하나가 특정한 향과 촉감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이 어린 시절의 감정과 연결되는 순간은 과학이 단지 사실에 머물지 않고 삶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저자는 라코루냐대학교의 첨단 과학 연구 센터에서 예술과 과학을 융합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해왔으며, TV 프로그램과 전시, 공공 교육 활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실천하고 있다. 이 책 역시 단순한 글쓰기를 넘어, 그간의 실험적 사유와 활동의 정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과학자들의 인용뿐 아니라 예술 작품의 삽화와 조각, 역사적 사례가 곳곳에 인용되며, 책을 읽는 내내 지적 여정과 정서적 탐색이 병행된다.

한국어 번역은 강민지 번역가가 맡았으며, 문체의 섬세함과 원문의 감성을 잘 살려 전달했다. 전문 용어가 자연스럽게 문맥에 녹아들고, 번역투 없이 흐르는 문장은 이 책의 미덕 중 하나다. 과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만큼 유려하며, 동시에 과학적 깊이를 놓치지 않는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일상 속에서 작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싶은 이들, 과학을 어렵게 느끼지만 알고 싶은 욕구가 있는 이들, 예술과 이성과 감성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유하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은 이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조금 더 섬세하게 이해하고 싶은 모든 이들이다.

『일상의 모든 순간이 화학으로 빛난다면』은 우리 삶을 구성하는 미시적인 요소—빛, 색, 입자, 향기—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해주는 책이다. 과학은 지루하고 멀게 느껴졌던 이들에게, 이 책은 조용하지만 깊이 있는 전환점을 제공한다. 과학은 세상의 진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든 감정과 기억을 비추는 거울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말없이 증명하고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당신은 아마도 립스틱의 색을 볼 때마다 그 안의 원소를 떠올리고, 벨벳 천의 결을 만질 때마다 과거의 어느 순간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단지 한 권의 과학책이 아닌, 삶을 다시 조명해주는 새로운 감각의 렌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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