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롭, 드롭, 드롭
설재인 지음 / 슬로우리드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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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요즘은 책조차 빠르게 읽히길 요구받는 시대입니다. 정보의 바다 속에서 빠른 이해, 효율적인 요약, 핵심만 남기기가 미덕처럼 여겨지죠. 그러나 책 한 권이 우리의 감각을 천천히 깨우고, 시간을 느리게 흐르게 만든다면 어떨까요? 슬로우리드 출판사의 그림책 『드롭, 드롭, 드롭』은 바로 그런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말 그대로 ‘슬로우하게 읽는’ 이 책은 물방울 하나가 떨어지듯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우리의 마음속에 여운을 남깁니다.

책의 제목은 단 세 단어, “드롭, 드롭, 드롭”입니다. 영어 단어 하나의 반복이 주는 리듬은 단순하면서도 강렬합니다. 이 단어는 곧 책 전체의 톤과 흐름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물방울 하나가 조용히 떨어지고, 다시 또 하나가 뒤따르고, 그 사이 고요함이 이어지는 이 리듬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자극합니다. 책은 어떤 이야기나 사건을 서술하지 않습니다. 대신 한 장면, 한 감각을 길게 끌어안고 그것이 완전히 스며들도록 독자를 이끕니다.

『드롭, 드롭, 드롭』은 이야기가 아닌 ‘경험’을 담은 책입니다. 아이들은 이 책을 보며 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상상하고, 그 모습을 따라 눈으로 그려보며 오감을 열게 됩니다. 반복되는 “드롭”이라는 단어는 흡사 동요처럼 느껴지며 언어에 대한 흥미를 유도하고, 말의 리듬과 소리를 감각적으로 이해하게 합니다. 어른들에게는 이 책이 훨씬 더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일상 속에서 무심코 지나친 감각, 느림, 침묵에 다시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이죠.

이 책이 돋보이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여백’의 미학입니다. 슬로우리드라는 출판사명이 무색하지 않게, 이 책은 페이지마다 여백을 충분히 남겨둡니다. 어떤 장면에서는 단 하나의 단어만이, 또 어떤 장면에서는 한 방울의 색채만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시끄러운 장면 하나 없는 이 책은 오히려 그 고요함 덕분에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독서라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이처럼 시각적인 디자인과 리듬의 설계가 유기적으로 어우러져 한 편의 시 같은 그림책을 완성해 냈습니다.

이 책의 감동은 짧지 않습니다. 처음엔 단순한 반복처럼 보였던 “드롭”이라는 단어가,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물리적인 ‘물방울’에서 감정의 ‘울음’ 혹은 삶의 ‘흐름’처럼 다층적인 의미로 확장됩니다. 아이가 읽는다면 소리와 감각을 통해 놀라움을 경험하고, 어른이 읽는다면 그 안에서 쓸쓸함과 위로를 함께 발견하게 됩니다. 결국 이 책은 세대와 경험을 초월해 ‘느림’이라는 감정의 파동을 공유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습니다.

슬로우리드 출판사는 이번 작품을 통해 ‘빠른 정보 소비’에 익숙한 독서 방식에 작지만 확실한 이의를 제기합니다. 책은 꼭 많은 문장을 담아야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말없이 더 많은 것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이는 단지 유아용 그림책의 경계를 넘어선, 현대적 감각의 시적 오브젝트이자 하나의 예술 작품입니다.

이 책은 독립출판이 갖는 미감, 즉 대중성과는 다른 깊이와 결을 고스란히 담아냅니다.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지 않음”으로써 더 큰 울림을 주고, 단순한 반복과 시각적 리듬으로도 충분히 감정에 다다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이 책을 읽고 난 뒤, 많은 독자들이 “말이 적은데도 이상하게 뭉클하다”, “마음이 조용히 정돈된다”, “밤에 조용히 넘기기에 좋은 책”이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우리는 무언가 특별한 이야기를 읽었다기보다는 ‘조용한 시간을 통과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드롭, 드롭, 드롭』은 바쁜 일상 속에서 잠깐 멈춰 서게 만드는 책입니다. 물방울이 떨어지며 남긴 동그란 흔적처럼, 그 여운은 짧지 않고 천천히, 조용히 우리 안에 번져갑니다.

삶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고 느껴질 때, 생각이 너무 복잡해 어지럽다고 느껴질 때, 이 책은 그 어떤 설명도 없이 우리를 감각의 세계로 데려다줍니다. 『드롭, 드롭, 드롭』은 어쩌면 질문보다는 쉼을, 해답보다는 여백을 건네는 책입니다. 그리고 그 여백 속에서 우리는 가장 나다운 마음의 결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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